이제는 물건을 살 때마다 이것이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더 이상 물건을 늘리거나 바꿀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오랫동안 썼던 식기와 냄비를 바꾸었다. 새로 바꾼 냄비와 프라이팬의 재질이 스텐이라 다소 무게감 있는 것이 걸리긴 하지만 일단 마음이 가는 대로 질렀다.
젊어서는 예쁜 것에 눈이 꽂혔다면 점차 무덤덤하고 깔끔한 것에 더 이끌린다. 예전에는 그저 빤질거리는 쇳덩어리 같은 스테인리스 냄비에 전혀 눈이 가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그 자체의 깨끗한 매력에 빠져 무게는 운동 삼아 들면 되지 하며 바꾸었다.
© awkwardhuman, 출처 Unsplash
몇 년 전에 스테인리스 프라이팬 세트를 선물 받았지만 그때는 스텐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프라이팬이 거기서 거기지 하며 코팅 팬처럼 썼다가 계란 프라이가 심하게 눌어붙는 바람에 팬이 반은 뺏어 가고 겨우 반만 내 차지였다. 다음에는 괜찮겠지 했지만 번번이 눌어붙어서 '뭐, 이딴 게 다 있어?' 하며 냉큼 갖다 버린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모든 조리기구를 스테인리스로 바꾸면서 그 성질에 대해 알아보았다. 코팅이 되어 있지 않아서 사전에 예열을 충분히 해야 하는 것을 알았다. 그걸 모르고 코팅 팬처럼 뜨거운 온도에서 바로 조리를 하였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 rickysinghy, 출처 Unsplash
여기저기 검색해서 알아보고 공부를 해서 시도하지만 아직 스텐팬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떤 날은 눌어붙기도 하고, 어떤 날은 계란 프라이가 팬 위에서 미끄러지듯 춤을 춘다. 그럴 때는 쾌재를 부른다. 프라이를 할 때마다 마음을 졸이며 조심스럽다. 그래서 일부러 하나 할 걸, 두 개 부치고, 두 개 해도 되는데 연습 삼아 세 개를 하기도 한다.
근래 들어 내가 무언가를 하면서 이렇듯 마음 졸이고 설레어 본 적이 있나 싶다. 가끔 눌어붙는 바람에 여전히 나를 좌절(?) 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도전 의식을 자극하기도 한다. 계란 프라이가 성공했을 때는 어이없게도 짜릿한 성취감마저 든다. 그 맛에 아들에게 자꾸 계란 프라이를 먹인다.
씻어 놓으면 얼굴이 비칠 듯 반짝거리는 팬을 보면 괜히 기분까지 맑아진다. 그게 좋아서 열심히 닦는다. 스텐 팬을 오래오래 쓸 수 있기를 바라며 한 치의 얼룩도 남기지 않으려고 온갖 세제와 수세미를 사서 정성 들여 닦는다. 한참을 공들여 닦다가 피식 웃었다. 이 작은 쇳덩어리도 제대로 쓰기 위해 성질을 공부하고 열과 성을 다 해 닦는데, 내 소중한 인연을 위해 나는 이만큼 노력하고 닦으며 살고 있을까?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만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쉽게 뒤로 밀쳐 두지는 않았을까? 스테인리스 팬을 닦다 보니 그것처럼 닦아야 할 것들이 내 주위에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내 안에도, 내 옆에도......
더 이상 그것들이 녹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