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어귀를 벗어나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내 속 어딘가 꼭꼭 여며 두었던 보퉁이가 툭 하고 끊어진 것 같았다.
수 십 년 간 출퇴근 하던 길,
늦은 밤 수영을 마치고 기분 좋은 피로를 한 짐 짊어지고 오던 길,
하루를 열고, 하루를 마무리하던 길,
해마다 아이들의 그림자가 자랐던 길,
아들 녀석이 돌아올 때마다 내 커피를 사 들고 오던 길,
내가 늙어가던 길......
짐 정리를 하느라 아픈 허리도 그 기억을 막지 못했다. 천 근 만 근 같은 피곤도 자꾸 고개를 쳐드는 옛 생각을 누르지 못했다.
"언니, 내 동네 잘 있어?"
"내가 없어도 내 동네 괜찮아?"
바로 앞 집에 사는 친정 언니가 전화를 할 때마다 물어보았다.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던 짱짱한 기백은 오뉴월에 시들어 빠진 배춧잎처럼 한 순간에 숨이 죽었다.
새벽녘, 방 안으로 들어온 달빛에 잠이 깨면 그동안 살아온 노고에 누군가 쳐 준 고리 이자쯤으로 여기며 혼자 실실거려야지......, 문 앞에 잔뜩 쌓인 택배 상자 같은 외로움도 달콤한 사과 파이처럼 한 겹, 두 겹 벗겨 먹어야지 했다.
그러나 낯선 달빛에 눈이 뜨이면 어느새 떠오르는 옛 골목 언저리가 저만치 잠을 달아나게 한다. 오늘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내일은 괜찮겠지..... 하면서도 나의 선택이 무모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새벽에 돌아다니던 고양이가 옆에 다가와 빤히 얼굴을 내려다보았다가 머리를 비빈다. 아마 녀석도 내가 유일하게 익숙한 존재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낮에는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늘어지게 잔다. 나보다 빨리 적응을 하는 것 같다.
예전에 무심하게 옮겨 심었던 화분도 새로운 흙을 밀고 뿌리를 내리기까지 나 같았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고운 명주실 같은 뿌리가 나보다 더 강인했을까? 고양이 녀석의 발자국을 따라 내가 자은 실오라기를 조금씩 조금씩 내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