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어"
"잘할 수 있을 거야"
"여태 잘해 왔잖아"
"괜찮아. 차츰 나아질 거야"
아침에 부엌일을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힘을 잃고 흘러내렸다. 그게 신호였을까? 속 울음이 터져 나왔다. 망망대해에 혼자 내동댕이 쳐진 두려움이 몰려왔다. 지금 이것이 잘하고 있는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 지조차 판단이 잘 서질 않았다. 처음으로 후회가 넘실거렸다. 넘칠락 말락 그 경계에서 냉소를 머금고 나를 쏘아 보는 것 같았다. 모른 척하고 일부러 벅벅 바닥을 문질러 닦았다.
이사 당일 날, 의례적인 전화 한 통 이후로 큰 아들 녀석은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다. 3일 서울 출장이라더니 바빠서 그러려니 하고 삐져나오는 서운함을 애써 눌렀다. 숨 쉬는 전봇대 같은 녀석인데 내가 무얼 바라겠나 싶었다. 이제 독립하였으니 각자 위치에서 잘 살아가는 것이 서로에 대한 최대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대구에서 최종적으로 신부 드레스를 선택하고 부산으로 가는 길에 마침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에게 청첩장을 전해 주러 왔다가 가는 길에 아들과 여자친구가 집에 들렀다. 일주일 만에 본 아들이 갑자기 서먹하다. 매일같이 드나들며 보았던 녀석이었는데 며칠 만에 본 녀석이 손님 같다.
"막상 어머니와 짐이 다 빠져나가고 나니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자려고 누웠는데 오빠가 한동안 잠을 못 들고 계속 훌쩍훌쩍하더라고요"
"그건 녀석이 비염이 있어서 그래"
"비염 때문에 그러는 것과는 좀 달랐어요. 그러더니 잠이 안 온다며 거실로 나가면서 나중에 들어와서 잘게 하더니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실에 누워 있는 거예요"
"옷장을 열면 윗 칸에는 제 옷, 아랫 칸에는 어머니 옷이 늘 있었는데 그게 몽땅 없어지고 나니 아! 이젠 더 이상 어머니와 어머니 옷을 여기서 볼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짐이 나가고 나서 좀 울컥했어요'
벽에 기대어 선 아들 녀석의 눈이 빨갛게 젖어 있었다.
"어머, 아들 그런 것도 느낄 줄 알았어? 그냥 숨 쉬는 전봇대 하나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아들이 그런 사람인 줄 엄마가 그동안 잘 몰랐네. 미안해."
두 팔을 벌려 녀석을 안아 주었다. 내 등을 토닥이던 녀석의 눈에도 뜨거운 것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녀석도 용을 쓰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의 빈자리에 적응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그런 것처럼 녀석도 제 속의 빈 구멍을 조금씩 조금씩 메우고 있었다.
둘 다 인생의 조금 더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