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2.
사람은 사는 동안 몇 번이나 태어날까? 사람이 한 번 태어나지 난데없이 무슨 소리야? 할지 모르겠으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지금까지 네 번의 커다란 탄생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물학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당연히 첫 번째라면, 내 의식의 눈을 틔운 사춘기를 두 번째로 들 수 있다. 쓰나미처럼 들이닥친 결혼이 더한층 인생의 깊이를 일깨워준 의미 있는 세 번째 탄생이라면, 그동안 부여받은 많은 책임과 의무로부터 벗어나는 황혼기가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오롯이 나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는 네 번째 탄생을 맞게 되었다.
한 번 더 그 의미가 남아있다면 언젠가 맞이할 나의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다섯 번째 번호를 부여하고 싶다. 아마도 그때는 지금껏 알고 있는 것과는 엄청나게 다른 새로운 의식이 휘몰아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섯 번째는 잠시 접어두고 지금 맞닥뜨린 나의 네 번째 탄생에 집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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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기 때는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그들이 원하는 딸로 자랐고, 사춘기 때도 울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안에서 자아를 키웠다. 결혼, 그 복잡 미묘한 상황은 가히 역동적이긴 해도 여러 사람들과 얽히고설킨 관계에 있었던 것에 반해, 지금 맞이하는 네 번째 탄생은 애오라지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지나온 셋과 가장 다른 점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떨리고 긴장된다. 이 역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자 혼자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정년퇴직을 한 어느 선배 가족이 퇴직 기념 파티에 걸어둔 "어서 와! 백수는 처음이지"라는 플래카드에서 말하는 그 처음이라는 의미가 무겁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올봄에 명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 외로 쉽게 가시지 않는 코로나의 여파로 꼼짝할 수 없는 지경이라 1년을 더 지켜보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 자궁으로 들어가 네 번째 탄생을 위한 태동을 하려고 한다.
뒤돌아보면 60여 년 동안 오로지 나 자신으로 살 수 있었던 때가 과연 얼마나 있었던가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누구의 자식, 누구 아내, 엄마, 며느리와 사회 조직의 구성원으로 부여받은 역할에 나를 쪼개어 맞추느라 오롯이 나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볼 시간과 여건을 누려보지 못했다.
한정된 시간에서 일과 결혼, 나, 그 어느 것도 쉬이 포기하지 못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자투리 시간마저 아까워 늘 동동거리면서 전쟁 같은 몇십 년을 보냈다. 그래서 물리적인 시간의 여유를 가진 자에게 얼마나 대놓고 시샘을 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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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또래 아이를 둔 사람끼리 누구 엄마, 아무개 엄마 하며 느긋하게 어울리는 그들만의 리그에 나는 제대로 끼어보지 못했다. 선뜻 거기에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내 성격도 한몫했지만, 다음날 출근 때문에 오늘 기어코 해내야 하는 숙제 같은 중압감에 언제나 5분 대기조 같은 긴장을 이고 살았다. 신나게 이어지는 그들의 리그는 결국 누려보지 못한 로망으로 그치고 말았다.
바쁜 아침을 정리하고 나선 출근길에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목욕탕을 향하는 어느 동네 아낙의 발뒤꿈치에 걸린 아침 햇살조차 시기했다. 남들 출근하는 시각에 나도 뾰족구두와 스타킹을 벗어던지고 아무렇게 꿰어 찬 슬리퍼 앞으로 삐져나온 발가락 사이사이에 그 부신 햇살을 받아보고 싶었다.
노란 은행잎이 뚝뚝 떨어지던 가을날, 신호 대기 중인 차 안에서 삼삼오오 아침 등산을 위해 아파트를 빠져나오는 부지런한 등산객들을 보고 있을 때, 그들이 입은 원색의 찬란한 등산복은 가을빛에 또 얼마나 눈부시게 빛났던가?
자정 넘어 온몸에 뽀얗게 뒤집어쓴 톱밥을 털며 쫓기듯 가구 공방을 나설 때, 언제쯤 시간에 매이지 않고 벌건 대낮에조차 나무 냄새에 취해 실컷 사포질을 할 수 있을지......, 누군가 한 턱 낸 막걸리 한 잔도 마다하고 작업대를 떠나지 못하는 분주함과 아쉬움을 다친 다리처럼 언제나 질질 끌고 다녀야 했다.
주어진 시간이 많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고, 할 일이 끝났다고 해서 그 앞에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제는 더 이상 시간에 내몰리지 않고, 하기 싫은 일에 휘둘리지 않으며,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그냥 "나"로 살아보고 싶어 이제는 욕심을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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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탄생이 단순히 일과 가족으로부터 다소 여유로워지는 것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지만, 오롯이 혼자 가는 길이라 두렵고 떨리면서 한편으로는 기대도 된다. 그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던 울타리는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것들이 책임과 제약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명함이기도 했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나는 네 번째 탄생을 위한 출발선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처음 혼자 여행하는 것과 흡사하다. 두려움을 안고 떠난 혼행에서 느낀 형언할 수 없는 짜릿한 희열을 이번에도 똑같이 느낄 수 있을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1년 후에 태어날 나를 위해 긴 태동에 들어간다.
이제는 누구의 딸도 없고, 누구의 아내, 엄마의 무게도 많이 내려놓았다. 속해 있던 직장이 준 든든한 담장마저 조금씩 걷어내고, 모든 타이틀과 아무런 장식 없이 오로지 내 삶을 시작해볼까 한다. 기꺼이 늙음과 바꾼 이 소중한 기회 앞에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붓을 쥐고 새로운 나를 맞을 준비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