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쯤인 것 같다. 친구와 터키에 갔을 때다. 유난히 금슬이 좋아 보이는 노부부 한 쌍이 여행을 왔다. 지금 내 나이에서 겨우 서너 살 정도 더 많을까 싶은데 그때 내 눈에 비친 그들은 인생의 대소사를 다 마무리하고 나들이를 나선 것처럼 홀가분해 보였다.
두 분 다 교직에 있다가 남편이 먼저 명퇴를 하고, 아내는 2년 뒤 정년퇴직을 해서 모처럼 함께 여행을 왔다고 했다. 틈만 나면 남편은 그동안 아내가 한 수고에 대한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직장에서 젊은 후배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가물거리는 시력에도 불구하고 집에 와서까지 공부를 놓지 않으며 안간힘을 쓴 아내의 노고를 무척이나 안쓰러워했다.
평생을 살아도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런 말을 노부부는 시간만 나면 서로에게 품앗이를 하듯 상대의 공을 치켜세웠다. 어쨌든 배우자의 소중함을 진하게 느끼는 노부부가 참 보기 좋았다.
어느 자리에서건 그들은 서로를 깍듯이 챙겨주었다. 맛나거나 특별한 먹을거리가 있으면 먹어보라고 권하고, 경치 좋은 자리에서는 빠짐없이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을 사진으로 남겼다. 나이만 좀 들었다 뿐이지 여느 젊은 연인 못지않게 달콤하고 살가웠다.
젊으면 젊은 대로, 나이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연인들은 보기 좋다. 알콩달콩 사랑놀이는 나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날이 갈수록 노부부의 표정이 굳어 있을 때가 많았다. 초반에 워낙 활기차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일관하던 커플이라 별일 아니려니 하고 크게 눈치채지 못했는데 가끔 투닥투닥하는 일도 있었다. 그 정도쯤이야 어느 부부에게나 있는 일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는 테이블에서 언성을 높인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 내가 알아서 먹는다니까?"
"이것도 좀 먹어보라고 그러는 거지"
"글쎄, 내가 알아서 먹는다고"
"왜 화를 내고 그래요? 당신 생각해서 그러는 건데"
"됐다니까"
그 말을 끝으로 노부부의 얼굴에는 금세 살얼음이 덮였다. 부드러운 지중해의 햇살도 그들을 어쩌지 못했다. 어딜 가나 한동안 노부부는 상하좌우로 30센티 정도의 간격이 유지됐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살뜰히 남편을 챙겼다. 맛나 보이거나 특별한 음식이 있으면 기어이 남편 앞접시에 놓아주며 먹어보길 권했다. 한두 번 시키는 대로 먹던 남편도 입에 맞지 않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아내가 권하는 음식을 먹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조차 아내는 기어이 남편에게 자신이 권하는 음식을 재차 먹이려고 했다. 마지못해 입으로 가져가는 남편은 더러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아내의 권유에 못 이겨 안 먹고 싶지만 노력하려는 걸로 보였다. 마주 앉은 나는 남편의 표정이 잘 보이는데 옆에 앉은 아내는 미처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사정을 아내는 모르고 남편이 그저 주는 대로 맛있게 잘 먹는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사진을 그다지 과하게 찍는 편이 아니라서 일찌감치 몇 커트 찍어놓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저만치 그 노부부가 눈에 띄었다. 어느새 풀어졌는지 그들은 마치 소풍 나온 초등학생 짝꿍처럼 사이좋게 이런저런 포즈를 취해가며 재미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노부부의 사진 놀이가 예뻐서 나도 빙그레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의 얼굴이 처음과 달리 점점 굳어갔다. 남편의 포즈에 대해 세세한 것까지 아내가 일일이 시정할 것을 요구하자 어느 정도 맞추는 듯 보였으나, 그래도 아내의 요구가 멈추지 않자 결국 또 터지고 말았다.
"아, 그냥 찍어"
"요렇게 좀 해 봐요. 그래야 더 잘 나오지"
"아, 됐어"
결국 남편은 사진을 찍지도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어쩌면 오랜 시간 교직에 있다 보니 학생을 가르치고, 지시하던 언행이 은연중 생활 속에 번져 그런 걸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남편을 좀 더 멋지게 찍어주려고 했을 뿐인데 아내도 억울함을 잔뜩 뒤집어쓴 표정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노부부가 떠난 빈자리에 서운함이 소소소 떨어져 있다.
아내는 남편을 좀 더 멋지게 남겨주고 싶어 했고, 특별하고 맛나 보이는 음식을 먹이고 싶어 했다. 남편도 아내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 권하는 음식을 기꺼이 먹었고, 아내의 요구에 충실하려고 했다. 노부부는 서로를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려고 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그럼에도 그들은 번번이 틀어지고 서운해하고 화를 냈다. 그들 인생에서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가끔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조차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원인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그 후로도 노부부는 뜨거웠다, 식었다, 얼었다, 끓었다를 반복하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듯했다. 한국에 가서도 누군가 크게 포기하거나 달라지지 않으면 어쩌면 똑같은 상황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손수건 한 장 정도의 거리와 무관심이 아쉽다.
그래서 부부는 가끔 딱 그만큼 헤어져(?) 있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