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50을 넘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명퇴를 선언했다. 사전에 내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최후통첩이었다. 아이들도 대학 졸업 전이고,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좀 더 직장을 다닐 것을 권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25년 가까이 열심히 직장을 다녔으니 이젠 편히 쉬고 싶다는 것이다. 근무 기간으로 치면 남편과 나는 겨우 1년 차이밖에 없으니, 퇴직의 이유가 그것이라면 나도 예외일 수 없는데 본인에게만 일방적인 혜택을 적용하며 선수를 쳤다.
시어머니에게는 퇴직 후 나와 여행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빈 공약(?)을 공표한 채 남편은 기어이 퇴직을 했다. 그는 그다지 여행에 열광하지도 않고, 나와 여행 코드도 맞지 않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아마도 말하기 좋은 그럴싸한 이유가 필요했던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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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지 한 달쯤 지났을까? 남편은 골프를 배워보겠다고 했다. 퇴직도 소신껏(?) 밀어붙인 사람인데 무엇을 한들 내 의견은 그저 들러리일 것 같아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골프를 시작한 그날부터 그는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되었다.
꼭두새벽부터 자정이 넘도록 하루 종일 골프채를 놓지 않았다. 골프 하는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남편을 보기 어려웠다. 어쩌다 집에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밤늦도록 골프 채널을 끌어안고 있어서 나는 영락없이 TV 애첩에 남편을 빼앗긴 본처 꼴이었다.
업무 실적 때문에 온종일 머리를 처박고 서류와 씨름하는 날이 몇 달째 이어졌다. 목도 돌아가지 않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병원에 CT 촬영을 예약해 놓고 오던 날도, 그는 필드에 나갔다가 모처럼 줄어든 타수를 자랑하느라 내 머리는 깨져도 그만인 장식용 아그리파 석고상 정도로 아는 것 같았다.
부부라고 반드시 합집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적당한 만큼 서로 맞대어 있는 건강한 교집합이 가장 바람직한 부부의 관계라고 여겼다. 너무 많이 남편을 당기려고도, 내가 너무 다가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나의 영역을 원하듯, 그의 영역도 인정하며 살았다.
그럼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공통의 원소인데 남편이 퇴직하고 몇 년이 지나는 사이 우리는 더 이상 나눌 수 있는 공통분모가 사라지고 없었다. 두 눈을 마주치고 얘기할 거리가 없었다.
갱년기에 걸터앉아 내가 올려다본 하늘이 서글프도록 푸를 때, 그에게는 하얀 포물선을 길게 그리며 공치기 딱 좋은 청명한 하늘일 테고, 업무 압박으로 고심하느라 생각에 빠져있으면, 그에게는 아무런 방해 않는 편한 마누라로 비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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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구심점을 점점 잃어가던 어느 일요일 오후, 그날도 이른 아침부터 골프 연습 중인 그를 찾아가 잠시 근처 공원을 걷자고 했다.
"지금 이게 우리가 제대로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해?"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잖아?"
"부부로서 아무것도 함께 느끼고, 나누는 게 없잖아"
"부부가 뭐 특별한 거야? 이렇게 살면 되는 거지"
"우리가 언제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없어"
"그냥 당신은 당신 하고 싶은 것 해, 나는 나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면 되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감당할 자신 있어?"
"응"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이 자꾸 힘이 없어져. 당신을 놓을 것 같아. 그래도 돼?"
"그렇게 해"
"놓으면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몰라"
"응. 알았어"
부부로서 공유하는 최소한의 몫은 모질게 쥐려고 했다. 다 헤진 낡은 전선으로 어쩌다 한두 번 깜빡깜빡하는 희미한 불빛이라도 우리의 관계 위에 걸쳐놓고 싶었다. 그조차 거두어들이면 다시는 맞닿지 않을 평행선만 덩그러니 남을 것 같아서였다.
그럼에도 남편은 내가 느끼는 불안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하게 자신의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쁨에 설레어 보였다.
이후에도 남편은 달라지지 않았고, 한번 더 남편에게 최종 확인을 했으나 똑같은 답만 들었다. 알겠다는 말을 건네고 그날부터 나는 모든 면에서 남편으로부터 독립하기로 했다. 부부라서 최소한이나마 쥐려고 했던 깃털 같은 공감도, 아주 가끔 같은 곳을 바라보는 똑같은 시선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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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남편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살아서였을까? 갑자기 그로부터 떨어져 나온 정서적 독립은 한동안 나를 두렵게 했다. 그렇지만 이미 방향은 정해졌고 이유도 분명하다. 되돌아갈 명분도 없다.
부부관계도 거래나 계약처럼 공정해야 하는데 일방적인 희생이나 독주로는 오랫동안 건강하게 이어질 수 없다. 인생에서 배우자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반자임에는 분명 하나, 추구하는 삶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더 이상 그를 바라보며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 시간 동안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길을 설정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무엇이든 혼자 해보는 것이었다. 혼자 영화 보고, 혼자 차 마시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운동하고, 혼자 걷고, 혼자 사색하며, 혼자 여행했다.
지구가 편편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바다 끝으로 가면 떨어질 줄 알았던 것처럼, 둘이 아니면 끝나는 줄 알았던 나는 벼랑 끝에 가서야 혼자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반드시 둘일 필요도, 반드시 함께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라도 충분히 기꺼운 삶이 두려움 그 너머에 있었다. 거기에 또 다른 길이 있었다.
("어긋남! 그 어리석음"편으로 이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