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부부 맞아?
".............."
"이게 무슨 부부야?"
"............."
남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 1년쯤 지났을까? 그날도 온종일 골프를 치고 온 남편이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앉은 내게 대뜸 던진 말이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처음에는 잘 알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요즘 우리가 부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어"
"그거 내가 예전에 당신한테 했던 말인데?"
"............."
"그 말을 왜 나한테 해?"
"요즘 우리를 보면 부부가 아닌 것 같아"
"당신이 원했던 거잖아?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 하고, 나는 나 원하는 것 하자고 했잖아"
"그래도 이건 아니지"
"뭐가 아냐? 당신이 한 말 잊었어?"
"................."
"내가 함께 가자고 했을 때,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어? 이렇게 될까 봐, 마음을 놓으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아서 내가 진심을 다 해 몇 번이나 부탁했는데, 그럴 때마다 당신은 똑같은 말만 해놓고 이제 와서 왜 이래?"
"말은 그렇게 해도 언제나 내 옆에 당신이 있을 줄 알았지......"
대단한 독립선언으로 시작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기로 작정한 그날부터 남편에 대한 기대를 모두 거두어들였다. 기대를 거두니 그것과 연결된 감정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왔다. 목젖을 내어놓고 함께 웃을 일도, 공동의 적을 놓고 침 튀기며 공분할 일도, 걸쇠처럼 언제나 꿰차던 팔짱도, 오가는 계절 한 귀퉁이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마음을 내어 말릴 일도 없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이 무엇이길래 그것이 무거울 때는 땅속으로 무한정 꺼져 들어갈 것 같더니, 덜어내고 나니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죽어라 일에 매달리고, 죽어라 운동했다. 죽어라 수험생처럼 공부하고, 죽어라 혼자 했다. 혹시라도 다시 남편에게 손 내밀까 봐....... 1년 넘게 꼬박 그렇게 지냈다. 세찬 파도 속으로 던져진 것 같던 애초의 불안도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잦아들고 내 생활에 대한 윤곽을 새롭게 만들어 갔다.
여기저기 여행을 하면서 생각도 많이 키웠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전부가 아니란 것도 알아갔다. 홀로서기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할 수 있을까?" 하며 주춤거렸던 시작이 "할 수 있다"는 긍정을 보태어 "멋지게 해낼 거야"라며 내달릴 준비를 갖추어 갔다.
남편을 내려놓고 나니 그 자리에 내가 더 크게 보였다. 욕심내지 말고 지금처럼 준비해서 몇 년 뒤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그때는 일과 가족으로부터 벗어나서 하고 싶은 걸 하며 훨훨 날아보자고 스스로 막 대견해할 때 난데없이 남편은 내 발목을 잡았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교차인가? 어이없는 이 뻔뻔한 어긋남에 난 할 말을 잃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것도 아닌데 이 남자는 예전에 내가 말했던 그 간절함을 왜 못 알아들었을까?
사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이 나를 흔들 때도 내 자리를 지키려고 했다. 속으로는 죽어라 용을 쓰고 버텼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랬던 것이 언제나 나는 똑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두 팔 벌리고 있을 거라고 그를 착각하게 만든 것 같다.
미안해하면서 달라지겠지......,
생각해보면 나아지겠지......,
다음번에는 아니겠지......,
이러면서 버티고 기다렸는데 나의 미련함이 그를 나태하게 만든 것 같다. 이제라도 나는 더 이상 어리석은 미련을 떨지 않으려고 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