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의 토는 토할 吐!

by 파란 해밀




"ddkfkdkf dkf ei;lskd ffkdkdls kd fk"
"diemfk dokf jslfifllld spdkfdjkls kkp ldnskef"
"teops gkd"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조용히 책을 덮었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직원들의 비웃음을 들을 다음 대상으로 일찌감치 올라가 있는 이름이 보이는 것 같다. 커피 한 잔을 탔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던 커피가 내 식도를 툭툭 건들며 실실 쪼개는 것 같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출근한 직원이 아무도 없다. 어제 배송 온 토익 교재 리스닝 파트를 맛보기로 한 번 들어보았다. 순간 욕이 한 사발 튀어나올 뻔했다. 도대체 이게 말인지 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30년 넘게 내팽개쳤던 영어를 하겠다고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으나,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한 깜깜 절벽이었다.



'그러게 왜 쓸데없이 시작했어~~~?'


나를 잡아먹을 기세로 속에서 후회가 훅 치밀어 올랐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꾸리꾸리 하다.




© rvignes, 출처 Unsplash



회사는 직원들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무슨 구실과 핑계를 대서라도 사람을 들들 볶아댔다. 온갖 경진대회, 시험, 자격증, 각종 이벤트......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점수로 환산하고 인사고과에 반영하여 승진이나 인사 이동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로 내가 담당하는 업무와 관련해서 회사가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자격증 시험이 있었다. 도입된 지 1년 정도업무로 대내외적으로 주목받는 새로운 분야였으며, 영어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그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필기시험 외에 700점 이상 토익 성적을 제출해야 취득할 수 있었다.

영어에 익숙한 젊은 직원들은 그깟 700점 정도야 발로도 따겠지만 나는 상황이 달랐다. 우리 세대에는 입과 귀보다 눈으로 영어를 하다 보니 말을 하는 것도, 청취하는 것도 젬병이었다. 그조차 영어를 놓은 지 30년이 넘었으니 까막눈이 당연한 일이다.

1회 시험에서 나보다 젊은 직원 두 명이 기한 내에 토익 점수를 취득하지 못해서 1, 2등으로 필기시험을 합격하고도 자격증을 따지 못해,

안타까운 우스갯거리로 널리 회자되었다. 2회 필기시험에서는 내가 1등을 했지만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전통(?)을 이어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즐거움만 안겨줄 것이 너무도 당연해 보였다. 이번에는 대를 이어 계승하였으니 얼마나 더 찰진 소재거리가 될 지 안 봐도 뻔했다.

6개월 안에 점수를 취득하지 못하면 자격증은 물 건너가고, 위로의 탈을 쓴 직원들의 웃음만 듬뿍 받아야 한다. 직원들의 비웃음(?)이 두려워서라기 보다 자격증을 꼭 따고 싶었다. 필기시험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대가를 치렀고 이왕 따겠다고 시작했으니 잘 마무리해서 끝내고 싶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1시간가량 공부하고, 퇴근 후에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면 10시가 넘었다. 집안 정리를 하고 자정에 돌아온 고 3 수험생 둘째 아들 보필(?)을 끝내고 책상에 앉으면 새벽 1시다. 그때서부터 영어책을 펴면 누가 수험생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2시로 내달리는 시곗바늘에 매달려 마음만 설레발이다.


한 달이 가도 도무지 귀는 열릴 생각을 않고, 두 달이 가도 귀머거리긴 마찬가지였다. 세 달이 되어도 시간 안에 풀지 못한 RC 문제가 여기저기 아무렇게 싸질러 놓은 소똥처럼 수두룩하다. 단어 찾는데 태반의 시간을 까먹고, 우라질! 외운 단어 까먹는 데는 순식간이다.

누가 뒤에서 탱크를 몰고 내 시간을 잡아채려고 돌진해 오는 것 같았다. 탈모 환자 머리카락처럼 뭉텅뭉텅 시간이 뽑혀져 나갔다. 혹시나 동그라미 색칠만 잘하면 재수 좋게 700점이 따지지 않을까 싶어 시험을 쳐보았다. 500점을 겨우 넘겼다. 참담했다. 천 원짜리 복권도 잘 안 걸리는 년이 색칠 잘해서 토익 성적 나오기를 바란 내가 잘못이었다.







그제서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세종대왕을 대놓고 원망했다. 먼저 영어를 만드시지, 왜 선수를 빼앗기고 한글을 만드셔서는 나를 이렇게 고통에 빠뜨리게 하는지...... 그에 대한 응징(?)으로 남자 복 없는 내 남자의 그룹 안에 세종대왕도 콱! 포함시켰다.


"내가 태어나기 까마득한 오래전에 [세계는 하나], [지구촌], [글로벌 어쩌고 저쩌고] 하며 언어를 하나만 만들어서 쓰지, 왜 구역별로 나누어서 제각각 자기 말로 떠들고 지랄이야?"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욕과 생떼를 부리면서 어쩔 수 없이 수험생 같은 시간을 보냈다. 500점이던 게 시험을 치면서 조금 나아져 600점을 넘어서더니 제기랄 698점이 나왔다. 700점에서 2점이 부족했다. 또다시 공부를 해야 했다. 교양 있는 여자의 꼭지를 기어이 돌게 만들었다. 토익의 토는 토할 토(吐) 자였다. 욕을 한 사발 토했다.

6개월 마감을 앞두고 시험 칠 기회는 이제 한 번 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700점을 넘지 못하면 전국적으로 쪽을 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있는 대로 자투리 시간을 긁어모아 토익공부에 쏟아부었다. 꼴 좋게 떨어지고 나서 또다시 필기시험을 준비하는 건 생각도 하기 싫었다.







드디어 마지막 시험 성적을 확인하는 날이다. 기대와 그 뒤에 딱 붙어있는 참담함을 같이 안고 점수 확인을 했다. 내 사정을 아는 직원들이 옆으로 몰려와 점수를 클릭하는 손가락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번에는 될 거예요"
"네, 꼭 700점 넘을 겁니다"
"........"
"우와! 됐다~~~~"
"축하합니다~~~~"


6개월 전투를 종식하는 순간이었다. 6개월 기한을 이틀 앞두고 700점의 문턱을 넘어섰다. 과에서 제일 늙은 내가 개고생 하며 가장 먼저 땄으니 직원들 모두 제 일처럼 축하해 주었다. 못 먹는 술이지만 어디 짱박아 놓은 소주라도 있으면 단숨에 병나발이라도 불 것 같았다. 그동안의 고생을 닭대가리처럼 또 홀라당 까먹는다.

이 맛에 사람들이 기꺼이 고생하고 도전할 것이다. 그 뒤에 따라오는 이 마약 같은 성취감 때문에.....


합격 기념으로 그동안 남자복 없는 내 남자의 무리에 포함시켰던 세종대왕을 6개월 만에 사면했다. 쏘가지가 밴댕이라 괜히 대왕님한테 화풀이한 게 미안해졌다.


"쏴리! 세종~~~~~"
(대왕님이 유창한 나의 영어를 잘 알아들으셨는지 모르겠다)




* 토익 때문에 자격증 취득이 많이 어려워지자 직원들은 토익 성적 유무에 따라 자격증을 이원화(국내, 국제) 하거나, 폐지하자는 청원을 했고, 회사는 한동안 버티다가 내가 자격증 취득한 지 1년 뒤에 토익 성적 제출을 없애는 미친 결정을 내렸다.

* 나는 정말 박복한 년이었다.

(다음 편에 "토할 토, 토익의 변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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