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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을 깨달은 순간

그곳엔 '내'가 있었다.

by 순코딩

2020년 06월 18일 늦은 밤, 북한산 산책로의 아무도 없는 어느 쉼터에서 앉아 나무 사이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다 30년 동안 철옹성 같이 깨지지 않았던 나의 눈물샘이 터지다 못해 폭발해버렸다. 내 마음은 어두운데 이런 내 마음도 몰라 주듯 서울의 밤은 늦은 시간에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수유 야경이 보이는 북한산 산책로(집근처)

한 달 전, 내 인생에 전부라고 생각했고 내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던 사업을 접었다.
나는 4차산업혁명 시대, 이 세상에 영향력 있는 IT 회사를 세우는 꿈을 안고 서울에 상경했다. IT를 전공하지도, 기본지식도 없었던 터라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일했으며 창업 후에도 밤낮,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해왔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장기간 수익이 나지 않았고 빚만 남긴 채 회사를 접어야 했다.


텅빈 사무실 텅빈 나의 꿈

나에게 남은 것은 통장에 찍힌 잔고 3900원, 신용등급 8등급, 그리고 남아있는 대출금 1500만원이 전부였다. 휴대폰비도 못 내서 끊긴 상황에 살고 있던 원룸은 그간 보증금으로 방값을 충당했는데 다음 달인 7월이면 남아있는 보증금이 다 없어져 방을 빼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업을 준비할 적에 친구들과 부모님께 많은 금전적인 도움을 받아 더 이상 도움을 청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이면 당연히 취업준비와 일일 알바나 노가다라도 해서 돈을 벌어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아야 했지만 나는 이미 삶의 동력을 잃어버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거의 두 달을 유튜브와 집 천장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방 주위를 둘러보았다. 중고로 팔만한 물건을 찾는 게 일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냥 눈에 보이는 것은 죄다 팔아치웠다. 모니터와 같은 전자기기부터 시작해서 전기포트, 옷장, 서랍 등 생활용품까지 죄다 팔아서 번 돈으로 담배와 컵라면을 사서 끼니를 해결했다. 심지어 지인에게 선물 받은 책까지 다 팔아버렸다.


이렇게 살수록 내 인생이 점점 더 비참해지고 상황만 더 악화시킬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알면서도 무언갈 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그럴 힘도 남지 않은 듯했다. 사지는 멀쩡했는데 내 정신은 이미 죽어있었다. 나는 심각한 무기력에 시달렸고 이런 무기력이 지속되다 보니 우울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의미 없고 덫 없게 느껴졌다. 항상 에너지와 열정이 넘쳤던 내 모습과는 다르게 폐인이 되어가는 나를 보고 걱정되어 달려온 친구들의 위로와 격려도, 나에게 힘을 준 자기계발서적과 각종 인문학 강의를 보아도, 더 이상 나를 위로해 주지 못했다. 오히려 환멸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이 세상 무엇도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사람들과 관계도 멀어지고 혼자가 되어 가고 있었고 내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 조차 신경 쓰이지 않았다. 모든 게 의미 없어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나는 평소 IT, 열정, 사업 등과 같은 책을 읽고 영상을 소비해 왔지만 이 시기에는 우주와 양자역학, 뇌과학과 같이 존재와 인생에 대한 공허함과 허무함을 대변해줄 무언가에 빠져들고 있었다.
우주를 보며 지구는 우주의 광활함 안에서 먼지만도 못한 작은 돌덩이일 뿐이고 이곳에 사는 우리의 인생은 우주 스케일로 보면 아무 의미가 없다라는 합리화를 했고,
뇌과학을 통해 우리가 하는 정신과 마음은 단지 1.5kg 짜리 두개골 안에 있는 뇌 안에서 일어나는 전기적/화학적 작용의 산물일 뿐, ‘우리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돼지와 다를 게 별반 없는 의미 없는 존재이다’라는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으며,
양자역학에서는 인간, 동물 그리고 모든 사물과 우주 전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의 99.999999% 가 비어있다. 즉, 대부분이 텅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어므로 우리는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식으로 합리화를 하며, 어떻게든 실패한 내 인생을, 비참한 내 인생을 부정적인 개념과 생각으로 합리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정신과 육체 모두 흉물스러운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김없이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창문 사이로 햇빛이 하도 쏘아대서 강제로 눈을 떴다. 그리고 담배와 라면 살 돈이 떨어져 팔 물건을 찾고 있었다. 팔 물건은 거의 다 팔아서 무얼 팔지 고민하다가 내 책상에 꽂힌 약 50권의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만큼은 내가 다른 물건보다 소중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저 책들도 어차피 지금 현 상황에서는 의미 없이 느껴졌고 일단 끼니를 해결해야 했기에 책을 다 줄로 묶어서 중고책방과 온라인 중고사이트에 팔았다.


라면과 담배를 사기 위해 팔아야했던 나의 지적 재산들

막상 팔려니까 마음이 조금 아프긴 했지만 다 팔고 나서 15만원 정도 벌어서 그 씁쓸한 기분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기간 라면으로 학대받은 내 몸뚱아리를 위로해 주기 위해 그날 저녁 내가 좋아하던 편의점 점보 닭다리와 넓적다리를 사서 내가 자주 가는 집 근처 북한산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어두운 산책로를 걷다가 아무도 없는 쉼터에 앉아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서울 야경을 보면서 편의점 닭다리를 먹으며 나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때 내 휴대폰에는 내 인생 영화였던 ‘미스터 노바디’의 슬픈 주제곡(Sous Les Draps)이 흘러나왔다. 휴대폰이 끊겨 음원 어플을 사용하지 못했지만 이 영화를 보고 감명받아 OST를 MP3로 모조리 다운 받아 휴대폰에 저장해 놓았었다.

닭다리 하나를 다 먹어갈 즈음 너무 맛있어서 남은 하나는 아껴먹기 위해 조금씩 베어먹고 있던 찰나,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 주위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에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한번 확인하고 나서 다시 닭다리를 한입 씹는 순간에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울고 싶은 자아와 앞으로 큰일 할 사람이 이런 일 가지고 눈물은 나약하다는 증거라는 생각을 가진 자아가 대립하기 시작했지만 그 날은 울고 싶은 자아가 압도해버렸다. 그리고 살면서 처음으로 소리내어 콧물까지 흘려가며 펑펑 울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나도 눈물이 많은 남자였다는 걸...그리고 그렇게 강한 놈도 아니라는걸

도대체 무엇이 나를 그토록 서럽게 울게 만든 건지 솔직히 대답하기 어렵다.
아마도 복합적인 감정이 쌓이고 쌓여 그날 한방에 터져버린 느낌이다.
나도 많이 힘들었었나보다. 평소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정말 내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며 힘들어했고, 비참한 생활에 몸과 마음은 지쳐갔으며, 어떻게든 내가 자신있게 말해온 나의 꿈들을 지켜내기 위해 빌빌 기면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현 상황에, 그리고 아직 내 그릇이 형편없이 작은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좌절했고, 내가 가진 꿈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음에,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의 민낯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어 홀로 세상과 담을 쌓고 나를 고립시켜 나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겁쟁이였고, 비겁한 놈이었다’

나는 이때 30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자신에게 솔직해졌다.
과거를 돌아보며 내가 저지른 실수와 잘못 그리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에게 내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포장하려 애쓰며 살아왔던 내 인생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남에게 돋보이기 위한 인생이 아닌 ‘나’다운 인생을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답게 사는 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눈물을 잠시 멈추고 과거를 회상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생각에 깊이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역동적이고 생기 넘치는 내 과거와 마주할 수 있었고, 내 정체성에 영향을 미쳤던 주요 사건과 인물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영감을 줬던 성공한 위인들과 정신 스승들의 음성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더 깊은 내면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는 듯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물었다.
나다운 것과 나답게 사는건 무엇이지? 그렇게 깊은 생각에 빠져들면 들수록 그 깊은 내면 속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스티브 잡스도, 내가 되고 싶었던 일론 머스크도, 니체도, 영적 스승이었던 크리슈나무르티도, 나의 정신 스승들도, 그 어떤 사상과 이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엔 ‘내’가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타인의 기준에 맞는 혹은 좋아 보이는 것들로 포장해 오면서 가려지고 내면 깊은 곳에 쓸쓸히 내팽개쳐진 ‘내’가 있었다.나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각하고 경험하고 학습하며 만들어진 ‘나’이다.
나는 니체도 아니고, 일론 머스크도 아니며, 스티브 잡스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아닌 타인이 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인생을 사는 법, 학습해야 하는 것, 행동해야 하는 것의 기준에 맞춰 살아 왔던 것이다. 내 인생에서 ‘내’가 없었다는 모순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직은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모르겠다.
하지만 ‘나’답게 사는 건 권위자들과 사회에서 규정한 기준안에서 양육되어 내 자신을 잃고 사는 인생이 아닌, ‘나’다운게 무엇이고 나만의 인생의 기준을 만들어갈 수 있는 여정을 떠날 용기가 있는 것, 그리고 사회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나의 주체성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며 사는 것

이것이 바로 ‘나’답게 사는 것이고, 앞으로 ‘나’다운 인생의 기준을 만들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숙소를 해결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7월 중순에 곧바로 구미에 내려와 스마트폰 부품 검사하는 업무를 하는 공장 계약직으로
취직했다.

하루 12시간씩 매주 주/야가 바뀌는 패턴과 똑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정말이지 나에겐 고문과 다름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곳에선 숙소도 제공되고, 밥도주고, 돈도 많이 줘서 정말 마음만은 편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몸뚱아리만 딸랑 남아 이곳에 내려왔지만 앞으로 나는 이곳에서 지내면서 앞으로 ‘나’다운 인생을 새롭게 채워갈 생각이다.
모든 것을 비우고 나니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비록 내 육신은 현재 공장에 있지만 마음 만큼은 ‘안종순’ 그 자체를 잃지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내 나이 서른, 인생의 변곡점에서 ‘나’다운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내가 새로운 IT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 틈틈이 공부하고 있는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가 있는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면 맨 처음 프로그램 개발 후 화면에 띄울 때 쓰는 단어가 있다. 국적 불문하고 이 세상 모든 프로그래머라면 아는 단어일 것이다. 이 단어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Hello World’

IOS와 Android 개발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개발 플랫폼 (플러터) 공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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