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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포트폴리오

개발자로 새로운 커리어를 향한 도전.. 그리고 지금까지의 나의 이야기

by 순코딩
며칠 전, 나의 새로운 커리어의 시작을 알리는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처음 두드리는 개발자의 문 앞에서 내미는 서툴기만 한 출입증 같지만 여기엔 나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고뇌가 담겨있으며, 새로운 희망이 담겨있는 포트폴리오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 인생이라는 장편 소설 속 새로운 전개를 알리고 기대하게 하는 시작점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나는 이 포트폴리오에 나의 영혼을 갈아 넣었다.


그래서 나는 이 포트폴리오를 영혼의 포트폴리오라고 부르고 싶다.





'영혼의 포트폴리오'라고 거창하게 이름 지었지만 사실 완벽하고 거창한 포트폴리오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보잘것없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고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더라도,

심지어 모든 이가 그렇게 나를 보고 있을지라도 나 스스로 만큼은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나이가 먹으면서 인생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도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내가 기대하고 원하는 모습과는 정 반대로 되어가 가는 나를 보며 오랜 시간 자괴감과 회의를 느끼며 스스로의 감옥을 만들며 무너져갈 때 겨우 이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한줄기 희망의 빛과 같은 깨달음이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한 편의 소설을 쓰는 것과 같고 그 소설을 쓰는 주체는 바로 나, 자신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래도 한번 사는 인생, 내 소설은 명작이길 기대하며 살았다. 그리고 명작이 되기 위한 기준을 우리 사회에서 좋은 것이라고만 받아 들어지는 것들을 채우는 것이 명작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했고, 나의 내면을 외면한 채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을 공부하고 도전하고 행동하고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과 지식을 그저 복사 + 붙여 넣기 하여 내 것으로 만들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았었고,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없었다.

이도 저도 아닌 졸작이 되어 가는 내 인생에 큰 절망을 느꼈고 방황했다.

명작의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해피엔딩이기도 하고 세드엔딩이기도 하면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우주 스케일의 판타지이기도 하면서 방구석에서 고양이를 관찰하여 상상하며 써 내려간 소재가 명작이 되기도 한다.

그건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상상력 혹은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로 써 내려가야 비로소 명작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나는 나만의 소설을 써 내려가려고 결심했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는 이 가 없다고 해서 나의 소설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쓰는 것이 아니며 내 인생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다른 사람 인생을 모방하는 것이 아닌, 내 인생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생은 특별하고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일지라도 스스로만큼은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특별함을 찾고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 스스로 의미를 찾는다면 내 인생은 명작에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이 생각이 내가 만든 절망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겠다는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 주었다.


영혼의 포트폴리오라고 거창하게 이름 지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장황하게 이유를 늘어놓는 것에 대해 조금 과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짧고 간결하게 글을 다듬을 줄 모른다. 그래서 가끔 글이 두서없어지기도 하고 쓸데없이 길어지기도 하며 지루해질 때도 있다. 그리고 이 글은 내 영혼의 포트폴리오가 탄생하기까지 겪었던 경험과 내 감정의 변화 그리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따로 줄이거나 다듬지 않을 예정이라 글이 엄청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점은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내 나이 서른한 살, 무언갈 새로운 일을 도전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에 나는 구미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개발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불과 6개월 전의 일이다.

갑자기 어떤 계기가 생겼거나 뜬금없이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오랜 기간 동안 개발에 대해 필요를 느끼고 있었고 고민하다가 결국 결심한 것이었다.

개발자로 일해본적은 없었으나 오랜 기간 동안 IT 업계에 몸담아 왔다.

20대 중반이었던 2015년, 나는 호주에 있었고 2년간의 워킹홀리데이를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가 여러 책을 읽고 강연을 보면서 자기 계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IT 분야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이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 팔자에도 없던 IT 분야에 몸담기 위해 한국에 돌아와서 서울로 상경했고 IT 배경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IT 교육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가 IT 분야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비록 IT를 전공하지 않았고, 가방끈도 짧았고, 가진 게 쥐뿔도 없는 놈이었지만 내 열망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작은 중소기업이었지만 직장도 가지게 되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서 연봉도 많이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몸담은 회사는 사물인터넷 관련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 주로 산업안전관리 시스템 분야에서 오랜 기간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진 회사였다. 내가 맡은 역할은 영업담당, 사업제안담당, 기획/마케팅 등 주로 사업을 수주하고 추진하는 역할이었다. 대부분 IT라고 하면 개발/코딩을 떠올리는데 나는 서울에 처음 왔을 때부터 IT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사업화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사업 관련 부서로 내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을 하면할 수록 성과를 올리기 시작했고, 점점 큰 사업을 맡게 되면서 나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뭐든 내가 추진하는 사업은 다 성공할 것만 같았다. 이러한 자신감에 힘입어 나는 나만의 IT 서비스를 갖고 싶은 열망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고, 회사를 다닌 지 3년 만에 모아둔 돈도 없이 퇴사를 결심하고 내가 유일하게 사업 파트너로 생각했던 친구와 창업을 도전하게 되었다.


아무 준비 없이 시작한 창업...힘들었지만 내 인생 가장 빛나던 순간중 하나였다.


아무 준비 없이 시작한 창업이 잘될 리 있었을까.. 우리는 무작정 IT 서비스를 기획하고 없는 돈 끌어모아 사무실을 얻었으며, 무작정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자금 압박이 우리를 조여오기 시작했고 부랴부랴 소액 대출을 받아가면서 버티면서 창업을 이어갔다. 주먹구구식으로 서비스는 어느 정도 완성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고객과 수익은 나지 않았다. 결국 바닥을 기며 버티고 또 버티다가 내가 가진 전재산과 원룸 보증금까지 다 날려 먹고 나서 창업을 접게 되었다.

창업을 접고 난 이후 나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2~3개월간 집 밖에 나가지 않고 방구석에 처박혀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사라지고 내 자존감은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온 세상이 잿빛으로 변해가기 시작했고 나는 무기력한 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만든 감옥 안에 스스로 가두며 절망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아무 소득도 없었다. 기본적인 식비와 생활비 정도는 거머리 마냥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빌렸지만 매달 내야 하는 방값과 휴대폰비 그리고 대출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사정사정해서 원룸 보증금을 다 뺀 와중에 방값까지 못 내는 상황까지 와서야 나는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숙소가 제공되는 공장일을 찾아 떠난 곳이 구미 스마트폰 부품 공장이었다.


처음 구미 터미널에 내려 메마른 잡초만 무성했던 허허벌판의 풍경도, 음산하고 삭막하게만 느껴졌던 오래된 공장 기숙사 아파트도, 습기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 찬 좁은 숙소도, 하루 12시간씩 주/야 2교대 근무환경도, 처음에는 공장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내 몸과 정신이 적응하느라 정신없기도 했고 창업 실패 후 도피의 목적으로 내려온 탓에 패배감에 젖어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래도 하루 세끼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한 달에 250은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대출 상환 독촉 전화와 휴대폰 정지 경고 메시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금전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잘 먹다 보니까 조금씩 기력을 되찾게 되었다.


처음 구미 도착했을 때 무성했던 허허벌판의 풍경 그리고 삭막하게만 느껴졌던 공장기숙사 그리고 24시간 돌아가는 공장


구미에 친구도 없고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때라 누구와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웠던 때라 쉬는 날마다 걷고 또 걸었다. 그냥 산책에 미친놈처럼 하염없이 발길 닿는 곳이면 어디든 걸어 다녔다. 내가 이렇게 걸었던 것은 외로움과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주로 기숙사가 위치한 공단동 인근 구미대교와 강변 쪽을 많이 걸어 다녔는데 처음에는 답답한 마음에 단순 노래 들으며 의미 없이 걸었지만 점점 걸으면서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항상 똑같은 실수와 상황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이고 지금까지 내가 원했던 것들은 진짜 내가 원했던 것인지 아님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만들어낸 열망이었던 것인지,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이룰 자격이 있는 것인지 등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왔다.

그러다 보니 나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강한 개성과 색깔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이것 또한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내 욕구가 만들어낸 나의 가짜 모습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내가 원하는 것이 있었다.



구미 공장생활 시절 쉬는날마다 미친듯이 걷고 또 걸었던 구미대교 인근 산책로와 강변공원


나만의 IT 서비스 혹은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는 사실..

이 열망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모든 도전과 행동 그리고 선택의 근본이 되었던 나의 열망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하는 IT 서비스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이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멋있어 보이는 개념에만 매몰되어 기획, 제안, 마케팅 같은 분야에 포커스를 두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러한 것들이 뭔가 사람들에게 멋있어 보이고 나도 이런 일들을 하면 주도하는 사람 같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했던 것 같다.

그리고 IT 기술 및 서비스에 가장 핵심이 되는 개발이라는 영역을 등한시했다. 내가 만약 사업을 잘한다면 개발 잘하는 사람을 쓰면 된다는 그런 안일한 생각과 재미없고 어려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개발 공부는 깊게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IT 서비스를 기획하고 그릴 수 있는 능력은 있었지만 실제로 구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원하는 서비스가 있어도 나는 그걸 실제로 만들지 못했고 내 머릿속에서만 추상적인 결과물로 존재해왔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고 열망하는 것을 만드는데 작은 한걸음도 못나아가는 그런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IT 서비스는 운 좋으면 한 번에 성공할 수도 있지만 여러 시행착오와 시도 끝에 완성된다.

5개의 서비스를 테스트 버전으로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아도 하나가 성공할까 말까 한 이 약육강식의 필드에서

단 1개도 만들지 못하는 내가 성공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를 의존해서 만들 수밖에 없었고 그 사람이 5번~10번 실패할 때까지 내가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어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아무리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못할 것 같다.


나는 원하는 서비스를 언제든지, 몇 번이고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발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공장일을 하면서 퇴근 후와 쉬는 날에 개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개발이라 학문을 그것도 공장생활을 하면서 독학하려고 하니 너무 힘들었다.

매주마다 바뀌는 밤낮 패턴과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 공부를 하려고 하니까 정말 힘들었지만

3개월 동안은 그래도 열심히 했다. 그러다가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고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한 달에 월급 250 꼬박꼬박 나오면서 나의 금전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이 공장생활을 이어가느냐,

아니면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공장 말고 더 나은 환경을 찾아야 하는가.


그래서 결단을 내린 것이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내려가서 아버지일 도와주면서 공부하는 것이었다.

나의 고향은 전남 완도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부속 섬이자 대한민국 사람들의 대부분은 존재조차도 모르는 신비로 가득한 섬이다. 이곳에서 부모님은 어업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오셨다.

그리고 나는 16년간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라왔다. 나는 내 인생의 시작점인 그곳을 다시 가기로 결심했다.

나이 서른 넘어서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나에게 부모님은 아무 말도 하시지 않았다. (다 이해한다는 듯이..)

그리고 아버지일을 도와가며 개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 고향 금당도


바닷일이 좋은 점은 바다에 나갈 물때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물때(대객기, 조금 등 디테일한 부분은 생략)는 대략 1 물~14 물로 나누어지는데 숫자가 적을수록 물살이 약하다.

그래서 보통 1 물~5 물 정도로 물살이 약할 때 바다에 나가서 해산물을 잡아들이고 물살이 강한 6 물~14 물때에는 해산물이 그물이나 통발에 잡힐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 물살이 강해서 조업을 안 한다.


그래서 나는 2주 동안 5일 정도 바다에 나가고 나머지 10일 정도는 쉴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10일 동안 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물을 수선해야 할 때도 있고, 배를 정비할 때도 있고, 줄을 다듬어야 하는 등 일을 찾으라면 한도 끝도 없으나 나는 그래도 아버지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었다. 바닷일만 도와주고 나머지 잔업 때는 공부하고 싶다고.. 당연히 아버지는 잔업을 시키지 않으셨다.

솔직히 느끼기에 2주 동안 5일만 바다에 나가서 일한다고 해서 꿀잡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5일 동안 삶에서 느낄 수 없었던 한계를 느끼게 될 것이다.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줄을 끄집어 올리고 던진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위험함과 고된 노동을 5일 동안 한다는 느낌을...

어쨌든 나는 위험하다는 것과 힘들다는 바닷일의 단점은 이미 공부할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 보장된다는 장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약 5개월 간의 공장생활을 청산하고 2021년 설날에 다시 고향으로 향했다.

공장에서 번 돈으로 친구들에게 빌린 돈과 대출금의 일부를 갚고 남은 돈으로 성능 좋은 노트북과 개발 공부할 책을 사는데 모두 써버리고 빈털터리로 내려갔다.

그리고 2020년 2월부터 제대로 된 개발 공부가 시작되었다.


바닷일을 할 때는 온몸이 쑤시고 힘들어서 개발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바닷일이 끝난 10일 동안에는 미친 듯이 책을 보며 독학을 하며 공부를 했고 바다에 나가서는 12시간 동안 문어를 잡으면서 내가 해결하지 못한 개발적인 문제를 생각했다. 바닷일을 하면서 딴생각한다는 건 위험한 짓이었지만 12시간 동안의 반복적인 지루한 노동을 이겨내기에는 딴생각만큼 좋은 게 없었다. 그리고 나는 바닷일을 잘하는 편이고 어려서부터 해왔던 거라 몸에 익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고향집 남는 방에 책상과 컴퓨터를 셋팅해서 바닷일을 안나가는 날마다 열심히 코딩 공부했다.


그렇게 새롭게 공부하는 개발 언어인 파이썬(python)에 대해서 점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내가 경제적 자유를 갈망하며 관심을 두고 있었던 투자 분야에서 필요한 증권 데이터 분석을

파이썬의 주요 라이브러리(기능)를 통해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여러 트레이딩 알고리즘을 적용한 통계 및 시각화를 하고 이를 기반으로 투자 자동매매 시스템까지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아가 증권 데이터 분석 업무를 웹사이트를 통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구축하기로 마음먹고 파이썬 언어기반의 웹 프레임워크인 장고(Django)를 공부하여 웹사이트의 기본이 되는 로그인과 CRUD(생성, 읽기, 수정, 삭제)가 가능한 블로그와 게시판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 5월, 현재까지 증권 데이터 분석용으로 자체 구축한 DB를 웹사이트와 연동하여 증권 데이터를 조회할 수 있을 정도까지 구현된 상태이다. 그리고 나는 개발자로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취직을 결심하고 우선 친동생이 있는 광주광역시로 올라와서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신입 개발자로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느 정도 개발실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포트폴리오가 필요했고 나는 광주에 머물면서 2주간 내가 지금까지 공장 습기 가득 찬 숙소 방에서부터 섬에서 아버지 따라 문어를 잡으면서 완성해 갔던 첫 프로젝트 설명하는 포트폴리오를 작성했다.

처음 희망에 들떠서 상경했던 서울에서부터~ 지금까지 나의 희로애락과 많은 여정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나의 이야기가 담긴 영혼의 포트폴리오가 드디어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희망이라는 불씨가 서서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여정을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샘솟는 느낌이었다.


서울 드림 실패 이후 잿빛으로 물들어갔던 내 마음과 세상이 어느덧 조금은 색깔을 되찾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새로운 여정을 위한 포트폴리오가 완성되고 약 1년 만에 서울을 다시 방문하였다.

2박 3일간 서울에 머물면서 나의 추억이 담긴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였다.

다시 돌아온 서울은 1년 전과 변한 게 없었다. 서울역의 풍경도, 내가 살았던 집과 근처 장미원 시장 풍경도, 수유역도, 내가 자주 갔던 419 카페거리도 자주 갔던 미즐 엠 카페도 창업했던 친구와 만났던 봉천동 풍경도.. 그 어느 것도 1년 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변한 건 오로지 나의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서울의 모습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잿빛으로 변해갔던 서울 막바지의 모습에서 색을 되찾기 시작한 서울의 모습은 더 이상 잿빛을 띈 삭기 빡빡하고 삭막한 곳이 아니었다.

희망이었고, 설렘이었다.


Seoul


어렸을 적 우리 집은 많은 풍파가 있었고 아프리카와 호주 등 많은 경험과 일들이 있었지만 내 인생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서울에서의 5년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서울이 좋다. 어느 누구는 공감하듯이 나는 이상하게 행복했던 시절만큼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절과 순간에 머물렀던 곳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서울 다음으로 부산과 순이이 있는데 부산과 순천은 가장 힘든 시기에 조금이라도 힐링이란 걸 하기 위해 혼자 여행을 갔던 곳이었다.

아직도 부산의 광안리 해수욕장과 앞에 보이는 광안대교의 야경을 보고 있거나, 순천역 인근 게스트하우스와 순천만을 보고 있으면 가슴 한편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기도 한다.


서울은 내가 5년간 살았던 곳이다. 나에게 서울은 애착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고통과 절망이면서 꿈과 희망이었으며 잿빛이면서도 알록달록 무재개 색깔이었다.

오랜만에 찾아도 변한 게 없지만 내가 바라보는 서울은 이 세상 모든 샐 깔이 담긴 곳이다.

그래서 서울이 좋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색깔로 만들어갈지는 나에게 달렸다는 사실 또한 나를 기대하게 만든다.

기다려라 서울아.. 내가 곧 간다!



이제부터 나는 얼마 전에 완성시킨 영혼의 포트폴리오를 통해 내 영혼의 자서전의 한 파트를 시작하려고 한다.

포트폴리오가 완성되었다고 해도 일이 술술 잘 풀리겠지라는 기대는 없다.

코로나 때문에 취업이 잘 안될 수도 있고, 신입 개발자로서 내 기술력이 부족해서 취업이 잘 안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또다시 자금 압박에 시달릴 수도 있고, 또 힘든 시기를 버텨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는 여정 속 미련한 선택으로부터, 극단적인 판단으로부터, 극적인 환경 변화에서 올라오는 여러 감정과 생각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고 이 배움이 앞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고 지켜줄 것이고 극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의 포트폴리오를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착각하는 완벽함이란 내면에서 오는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것들로부터 온다.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향해 갈지 사회 안에서 찾고 군중 속에서 찾는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선택을 할지도 그 안에서 찾으면서 우리는 자신만의 자서전을 타인의 포트폴리오를 복사 붙여 넣기 하면서 완성해간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완벽해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존재이기도 하다.


Human


때로는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기도 한다.

때로는 불길에 뛰어드는 나방과 같이 희망과 꿈을 향해 자신을 태우기도 한다.

때로는 행복을 느끼기도 하면서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절망과 시련을 반복하기도 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보일 때도 있다.

남들이 잘 사는 것 같이 보여 질투를 하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날 때도 있다.

30년 동안 무얼 하며 살았는지 특출 나게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나 자신을 보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런 자괴감에 빠져 술에 노예가 되기도 하고, 쾌락의 구렁텅이에 내 몸을 던지기도 한다.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도 하고, 부적절한 곳에 가기도 하고, 부적절한 행동을 할 때도 있다.


이렇게 사는 게 좋은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것은 타인의 먹잇감이 되어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렇게 된다는 것 자체가 두렵고 피하고 싶다. 하지만 살다 보면 내 뜻대로 안 될 때가 있고 이런 상황 속에 빠질 때가 온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해쳐나가는 과정이 '나'다움을 찾고 '나'다운 자서전을 완성해 가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쓰인 자서전이 나는 '명작'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답게 채워가는 자서전이 한사람의 써내려가는 명작이 아닐까..


지금 코로나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정신적 그리고 금전적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자신을 더욱 사회의 울타리 안에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도록 가두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러한 시련과 절망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온전히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때문에 혹은 책임감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그냥 가능성인 채로만 남겨두고 갈망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나의 영혼의 포트폴리오를 바치고 싶다.


하지만 나처럼 무작정 들이박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만의 템포와 스타일을 찾아가면서 천천히 준비해서 나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너무 멍청했고, 미련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지금도 솔직히 두렵고 힘들다. 하지만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한줄기 희망을 보게 되었고 이 희망의 끈이 나를 계속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는 그날을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글 하단에 개발자로서의 첫 커리어를 시작하기 위해 만든 포트폴리오 이미지를 공유하겠다.

포트폴리오를 자랑하기 위해 보여주는 건 아니다. 처음 만들어보는 포트폴리오라 허점투성이 일 것이다.

그래도 표지 디자인이나 전체적인 레이아웃 다자인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른 사람의 포트폴리오를 참고하지 않았고 그냥 내 목차대로 내 스타일대로 작성했다.

인사담당자가 싫어할 수도 있고 포트폴리오와는 맞지 않은 구성과 디자인, 그리고 내용일 수는 있지만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고 나의 스킬을 보여주는 문서이니 만큼 내가 보여주고 싶은 대로 보여준 것뿐이다.

나중에 구직이 어려워지면 수정할 수는 있겠으나 지금은 그냥 이 포트폴리오대로 나의 새로운 커리어에 도전장을 내밀 예정이다.






1. 포트폴리오 표지 및 목차 (3page)


피피티 전체 표지 및 디자인은 예전에 일할 때 자주 사용하던 기획의정석(박신영 저)의 디자인을 참고하였다.




2. [Part 1].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선정한 기술과 그 이유(7page)




3. [Part 3]. 프로젝트 핵심 구성요소 및 구성별 세부내용(51page)

3-1 프로젝트 핵심 구성요소



3-2 프로젝트 구성별 세부 1 (Django Website 구현) ※ 참고 : 만들면서 배우는 웹 개발 A to Z 장고 + 부트스트랩 파이썬 웹 개발의 정석(이성룡/김태곤)



3-3 프로젝트 구성별 세부 2 (Python 증권데이터 분석 기능 구현) ※ 참고 서적 : '파이썬 증권데이터 분석(김황후 저)'



3-4 프로젝트 구성별 세부 3 (증권데이터 분석 + 웹사이트 연동) ※ 참고 : 그냥 삽질...또 삽질....또또 삽질...



4. 추후 구현 예정과 5.개발자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나의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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