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성에서 일반지성으로 변화되는 과정
평균이하의 무지성이 었던 내가..
세상에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우리 주변만 보더라도 꼭 한 명씩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분명 한 달 동안 엄청 고생해서 처리하는 업무를 일주일 만에 업무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습득해서 척척 해내는 직장동료, 똑같이 노력하는데 항상 높은 시험 점수를 받고 어려운 자격증도 척척 따내고 여러 회사에 취업도 성공하여 어느 회사에 들어갈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친구, 게임이나 운동을 시작하더라도 분명 PC방에 같이 다니고 체육관에 같이 가는데도 어는 순간, 나는 몇 년째 똑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갑자기 실력이 쑥쑥 올라가더니 이제는 나를 가르치고 있는 친구 등.. 무언갈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을 꺾어버리는 소위 말해 똑똑하고, 특출 난, '재능충'놈들이 우리 주위에 꼭 한 놈씩 존재한다.
우리 주변뿐이겠는가? 유튜브나 브런치만 보더라도 분명 특정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닌 일반인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영상과 글을 보다 보면 핵심만 딱 정리해서 간결하게 정리하는 능력, 지식의 깊이와 수준,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거침없이 표현하고 전달하는 능력 등 엄청난 퀄리티의 영상과 글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을 넘어 경외감마저 들 때가 종종 있다.
솔직히 나와 같은 경우, 32년을 살아오면서 이런 놈들을 보고 있을 때마다 내 노력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상당히 눈에 거슬리때가 많았다. 분명 나보다 적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 같은데 단시간에 모든 척척 이해하고 해내는 그들을 보면서 내 능력과 지능에 대해 의심을 품기도 했고, 그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면서 상당한 열등감과 자괴감마저 들기도 했다. 심할 때는 어차피 열심히 노력해봤자 그들과 똑같은 경지에 다다를 수 없다는 한계를 스스로 규정하고 포기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아마 계속 나아가다가는 그들과 나 사이 존재하는 벽을 항상 느끼며 열등감과 자괴감에서 오는 스트레스로부터 나의 정신 건강을 지켜내기 위해 자기 합리화라는 필살기를 쓰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우리 주위에는'똑똑하고', '특출 나고', '잘난' 사람이 있다는 명백한 사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해 여러 가지 근거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글을 보는 '보통 사람'일 가능성이 큰 여러분들도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것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근거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재능과 지적 능력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선천적인 전유물로 규정했다. 이거 말고는 도저히 그들의 나 사이 존재하는 지적 능력과 재능의 벽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이 글에서 똑똑함과 특출 남이라는 능력 혹은 재능이 결코 선천적인 전유물만이 아니며, 나를 포함한 보통사람이라 생각하는 여러분들도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으며, 그들처럼 충분히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쳐보려고 한다.
나의 이 주장은 결코 특정 분야의 전문가나 권위자의 말을 인용하거나 빌려서 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내가 32년 살아오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 안에서의 발생한 사건과 이야기를 통해 내 주장에 대한 근거를 하나씩 제시하려고 한다.
또한 과거 '무지성' 인생을 살았던 내가, 그나마 보통사람의 일반적 지성의 영역에 들어왔다고 생각되는 현재 나의 모습이 이 주장에 대한 검증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나 자신조차도 특출남과 똑똑함의 영역에는 들어가지 못했더라도 내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그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의지와 능력 그리고 재능의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
이로 인해 열등감과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변화를 누구보다 갈망하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이제 '무지성'에서 '일반 지성'으로 변화되는 과정이 담긴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1 순수했지만 그저 무지성이었던 나의 청소년기의 삶
무지에 대한 인식조차 불가능했던 그 시절
대략 1~2년 전쯤부터 메타인지라는 단어가 여러 강연과 미디어에 많이 등장한 것 같다.
메타인지는 쉽게 말해 자신이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을 뜻한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여 보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위한 취지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단어인 듯하다. 메타인지는 배움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고 유용한 개념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이는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베이스로 둔 보통의 사람들에게 효과적일 것 같다.
나의 청소년기의 경우 아무리 인지심리학에 정통한 교수가 나를 지도하더라도 메타인지를 통한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청소년기는 마치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새하얀 백지장과 같았기 때문이다.
내 고향은 완도의 변두리에 위치한 아주 작은 부속섬이었고 대부분의 청소년기를 이 작은 섬에서 보냈다.
내 또래 친구는 섬 전체에서 10명 정도가 있었는데 그 친구들과 소꿉장난 하던 때부터 중학교까지 인원 변동 없이 같이 학교를 다녔다. 아무리 작은 섬이었어도 중학교까지는 계속 운영되었다. (전교생은 20명대이지만..)
중학생이 30명도 안 되는 섬에서 학원 같은 게 존재할 수도 없었고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10명의 또래 친구들과 학교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학업 경쟁심도 전혀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학업 경쟁 속에 노출된 도시 아이들에 비해 나는 비교적 경쟁과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래도 이런 환경 속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긴 했다. 그 친구는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시험기간에 공부라는 걸 하기도 했다. 보통 도시 학생들에겐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었겠지만 나는 저 친구가 왜 공부를 저렇게 열심히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아무리 작은 섬이고 교육열이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고는 하나, 10명 중에서도 1등을 하는 자식은 항상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공부와는 완전히 담을 쌓고 살았던 터라 10명 중에서도 항상 뒤에서 2~3명의 쟁쟁한 경쟁자들과 꼴찌 경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섬에서 유독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높은 편이었던 우리 어무니의 속이 몇 번이고 뒤집어졌겠지만 나에겐 가장 큰 실드 하나가 있었다.
바로 내 친누나였다. 누나는 나와 1살 차이로 바로 위 학년이었다. 내 바로 위 학년도 10명 정도였는데 다행스럽게도 누나는 항상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겐 얼마나 다행스러운 존재였는지 모른다.
항상 1등 하는 누나가 바로 위에서 버티고 있었기에 나는 공부에 대한 압박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청소년기를 흘려보냈다.
수업은 자장가로 밖에 들리지 않았고, 선생님들의 수업 내용은 외계어로만 들렸다.
숙제와 수행평가는 그냥 몸으로 때웠다.
매일매일 방과시간과 방학만을 기다리며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이러한 습관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고등학교가 없는 섬인지라 타지로 유학을 가야 했고,
섬 근처 배 타고 4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지역 고등학교를 입학했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1학년을 다 채우지도 못한 채, 광주광역시의 한 공업고등학교로 전학 갔다.
그나마 이 학교는 나와 같은 부류가 많아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고 수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덜했다. 그래서 이 학교에서는 그래도 졸업장은 얻지 않았나 싶다.
이 결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성인이 될 시점에 내 지식수준은 평균 이하였다.
영어는 단어만 읽을 수 있는 수준,
수학은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만 할 줄 아는 수준,
국어는 지문만 읽을 수 있는 수준,
과학, 역사, 예체능 같은 경우, 뭘 배웠는지 단 1도 기억 안 난다.
그나마 내가 압도적으로 잘했던 건 체육이었다.(시험말고..실습..)
이걸 보고 내가 과장해서 썼다고 생각되는가? 하지만 정말 그랬다.
대한민국의 정규 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공부에 담쌓고 살았다고 해도 도시에서 만난 몇몇 친구들을 보면 기본적인 배경지식은 일반적으로 습득하는 것 같다.
나는 성인이 될 무렵, 보통 내 또래 애들이 당연시 여기는 배경지식 수준이 평균 이하였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평균적인 배경지식이 없는 것? 아니면 아는 게 없는 '무식'의 상태? 모두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무식'하고 '무지'하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때부터 '무지'의 굴레가 반복된다.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의 과도한 주입식 교육과 경쟁 구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나도 이렇게 극단적인 교육 시스템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좋던, 싫던 반강제적이었던, 이러한 교육 시스템 속에 떠밀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주입된 지식이 훗날 지혜로 발휘되는 걸 기대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먹고, 자고, 싸고, 가족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등의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감정 이외에 사고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배경지식이라는 걸 습득하게 된 것이 아닐까?
나는 '무지'했기 때문에 내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모르고, 무엇이 부족한지 몰랐다.
청소년기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에 나의 '무지'를 인지할 비교대상조차 없었고,
이미 오랜 기간 이러한 '무지'상태가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갖춘 이들을 보고도 상대적 박탈감과 창피함을 느끼지 못했다.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하며, 미래에 무엇이 될지 그리는 건 불가능했으며, 아무 생각조차 없었다.
그냥 원초적인 본능에 충실한 채, 눈앞의 욕구만 채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더 나은 미래와 변화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걸 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해야 할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노는걸 잠시 미루고 공부를 한다던지, 저축과 재테크를 한다던지, 정신과 육체적 건강을 위해 순간적인 쾌락을 참는다던지..
이 글을 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보통' 사람들일 것으로 생각된다.
보통의 배경지식이 있기 때문에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지식도 없는 과거의 나는 남과 비교하며 부족하다는 것 조치 '인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여러분은 나보다 나쁘지 않은 출발선에 서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모르는 건 죄가 되지 않는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배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앞서 가장 큰 문제가 자신이 '무식'하고 '무지'하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이 '무지'한 줄도 알고 변화를 갈망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변화가 싫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겠으나 변화를 원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사는 인생, 사람마다 개개인의 고유한 인생 소설을 써 내려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는데, 아무 시도와 도전도 안 하고 그저 밋밋하고 따분한 이야기만을 남긴 채 삶을 마감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인간의 존재 이유와 존엄성마저 부정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 어쨌든 나의 청소년기는 평균 이하로 '무지'했고, 아무 생각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태로 내 인생이 지속되었더라면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 이후
나에게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고, 다이나믹한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럼 두 번째 스토리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2 사고와 경험의 확장을 경험하기 시작한 군대 시절
독서를 통해 새로운 사고의 확장이 시작되다.
자신의 미래 그리고 변화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가슴이 뜨거워졌던 적이 있는가?
나는 말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조차 없는 이 뜨거운 감정 상태를 군대에서 처음 느꼈다.
'무지성'이었던 청소년기가 끝나고 대한민국 성인 남자의 필수 코스였던 군대를 가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어차피 가야 할 군대라면 그나마 '빡센' 곳으로 가자 싶어서 해병대에 자원입대하였다.
'해병대'라는 사회적 인식과 이미지 때문에 입대 전에는 조금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막상 가보니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크게 적응하는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군대라는 조직 특성상 위계질서가 확실하고 개인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억압될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 나는 누구보다 잘 적응했다.
그냥 상급자가 시키는 것만 잘하면 그만이었고, 그곳의 룰을 잘 따라가면 그만이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잘 따르면 선임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고 후임들을 대할 때도 개인적인 감정 없이 그곳의 룰과 전통을 교육하고 훈계하면 나를 잘 따라주었다.
오히려 생각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군생활을 적응하는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군생활중에 생길 수밖에 없는 부당함과 부조리 그리고 자유에 대한 억압 등은 생각이 많고 예민한 사람일수록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당시 나는 '무지성'이었기 때문에 부당함과 부조리 같은 것을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걸 깊게 생각할 지성이 없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냥 군대니까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큰 문제없이 군생활을 잘해오고 점점 짬이 차면서 어느덧 상병이 되어있었다.
군생활 초기, 이병과 일병 시절에는 선임들 눈치 보고 후임들 챙기면서 부대 작업과 일을 도맡아서 정신없이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지만 상병이 되고 나서 눈치 볼 사람도 별로 없고, 각종 잡일을 할 필요도 없어지고, 개인 시간이 늘어났지만 군생활에 무료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웨이트도 하고, 축 구도하고, 후임들이랑 장난도 치고 별에 별 짓을 다 했지만 미칠듯한 무료함을 달래지 못했다.
이때, 내 인생을 바꿀 신의 한 수를 선택하게 된다. 바로 독서였다.
무료함을 달래줄 책을 고르기 위해 군대 휴게실을 기웃거리길 반복하다 강렬한 제목에 이끌려 꺼낸 책은 바로 빅토르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였다.
살면서 책을 읽어본 기억도 없고 심지어 교과서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던 내가 그림도 별로 없는 이 책을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책을 편 순간부터 이 책에 홀린 것 마냥 빠져들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저자 빅토르 프랭클 박사의 자전적 책으로 실제 나치 시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강제로 끌려간 자신과 유대인이 겪었던 처절하고 비인간적인 삶을 다룬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책의 저자와 유대인이 겪었던 고통과 비극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었고 그들의 처절한 삶과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고통이 내 가슴을 후벼 팠다. 마치 내가 수용소의 유대인이 된 것 마냥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 처질 정도로 당시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었다.
짐승만도 못한 비인간적인 대우와 조금이라도 강제노동에 쓸모가 없어지면 불로 타 죽어버리는 생사의 엇갈림과 지옥 같은 수용소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희망이란 걸 가질 수나 있을까?
유일하게 수용소의 비극적인 삶을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도대체 이런 비극은 왜 일어나야 했고 그들이 왜 아무 죄 없이 이런 비극을 겪어야 했는지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후반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장 내일의 생사도 보장되지 않는 극한의 상황과 끼니도 제대로 못 먹고 굶주린 채, 계속되는 강제노역과 나치들의 부차별적인 폭력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보여준 저자를 비롯한 다른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자신들이 살아야 할 삶의 이유와 의미가 있었고 결국 이 지옥 같은 생활을 견뎌내며 끝내 전쟁이 끝나고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 기분이 일주일은 지속되었던 것 같다.
책이라는 걸 끝까지 다 읽었다는 뿌듯함, 그들의 비극과 고통을 간접 체험하고 느껴지는 이 가슴 먹먹함, 그리고 이 책의 후반부터 책을 끝내고 난 후까지 머릿속에 떠나질 않았던 삶의 의미와 이유에 대한 물음들..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이 가슴속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변화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책과 독서가 내 삶의 의미를 찾게 도와주는 나침판이 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자기 계발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 주위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눈과 귀가 밝아지고 사고가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 ‘없음’의 인생에서 생각 ‘있음’의 인생으로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지적 능력과 생각은 경험적 범주 내에 국한된다.
한 인간은 특정 국가, 특정 지역의 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나고 점점 나이가 들면서 학교 및 학원 교육을 받고 가족 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도 하고 성인이 되어 가정에서 벗어나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살아가면서 또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 밑에 태어난 한 인간은 또 이러한 패턴의 인생을 살아간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시대적 배경, 가정환경, 사회 경험 안에서 배운 문화, 예절, 지식 등을 학습하는 과정 속에서 개개인의 인격과 지적능력이 형성되며, 이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무얼 보고 배우고 느끼느냐가 한 인간의 인격과 지적 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의 아웃풋(결과는)은 인풋(과정)이 있기에 가능하다. 인풋이 없는데 아웃풋이 생긴다는 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이고 이는 존재하는지도 의문이 드는 '신'만이 가능한 일이다.
알파벳과 단어를 배우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도 없고,
수학을 배우지 않았는데 갑자기 미적분을 할 수 있을 리 없으며,
기본예절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윗사람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한 인간의 인격, 가치관, 생각, 지적능력을 규정하는 것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경험적 범주 내에 국한된다.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두뇌 회전 속도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아무리 좋은 두뇌를 타고나도 인풋 경험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사실 특정 분야의 학습 속도와 이해도는 타고난 것 보다도 얼마나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아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는다. 이는 뇌를 연구하는 뇌과학을 공부하고 내가 직접 경험한 내용을 근거한 믿음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학습하는 외부 정보는 오감(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을 통해 뇌로 전달되고 각기 다른 정보를 관장하는 뇌 영역에 위치한 뇌세포(뉴런)에 저장된다. 그리고 정보의 조각을 저장하고 있는 뇌세포는 비슷한 정보를 담고 있는 다른 뇌세포와 연결을 맺기 시작하고 거대한 연결망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우리가 무언갈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학습할수록 이 연결망은 강해지고 견고해지면서 결국 이 정보의 조각들이 모여 개념과 가치관 등이 탄생하게 된다.
하나의 뇌세포(뉴런)는 최대 천 개 혹은 만개까지 다른 뇌세포와 연결된다고 한다.
이렇게 뇌세포 간 연결되는 지점을 전문용어로 시냅스라고 부르고 우리의 뇌는 100~1000조 개의 시냅스가 거대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뇌과학을 통해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은 우리가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운 외부 정보를 오감을 통해 뇌로 전달되어 정보를 처리하는 신경세포끼리 소통하면서 새로운 정보나 개념 그리고 생각이 탄생하는 것이다.
뇌는 무언갈 배우면 배울수록 강한 연결망이 형성되고 다른 정보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개념과 생각을 탄생시킨다.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을 만들어내고 지적능력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는 특정 지식과 경험만 머릿속으로 주입시키기보다는 새롭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 결국 우리의 지적능력과 사고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물리적인 한계를 가진 인간이다.
우리의 몸뚱아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지역 그리고 사회 안에서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태어날 가정환경을 선택할 수 없고, 정규 교육을 통해 똑같은 지식을 습득하고, 남자라면 군대를 경험하기도 하고,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게 되는 등 대한민국의 문화와 사회적 기준에 따라 인격과 가치관이 형성되어 간다. 다른 이념과 생각 그리고 지식을 경험하기엔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원하는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입시와 정규 교육 과정의 배움을 포기한다는 것, 해외에 나가 다른 문화를 경험한다는 것, 취업을 포기하고 자신이 가치의 생산자로 거듭나기 위해 사업과 창업에 도전한다는 것,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은 가치관과 정서를 부정하고 목소리를 낸다는 것.. 등 다른 이념과 생각 그리고 지식을 경험하기엔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기준에 따른 경험과 지식에 길들여진 채, 받아들이게 되고 한 사회라는 우물에 갇혀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우물을 벗어나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한쪽으로 치우쳐진 관념과 관습을 깨부수고 새로운 인식과 사고의 확장을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지식을 배우고 내가 가진 생각과 가치관을 비교하면서 새로운 시각과 생각이 만들어질 텐데 그러기엔 우리의 삶과 일상은 너무 바쁘게 돌아간다.
아무리 바쁘고 고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혹은 열악한 가정과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희망은 있다. 그건 바로 독서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30분 책 읽을 시간은 나지 않겠는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는 군대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했던 독서를 통해 내 인생 전체가 바뀌는 기적을 경험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자기 계발 서적만 주구장창 읽었기 때문에 전문분야의 지식을 습득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 분야에서 성공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면서 얻은 지식과 노하우 그리고 생각을 응축해서 담아 한 권의 책으로 쓰여졌을 것이다.
다양한 책을 읽을수록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기존 대한민국의 작은 섬마을과 무지 속에서 본능에만 충실하며 살면서 만들어졌던 나의 작은 세계 안에서만 국한되었던 나의 인식과 사고의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했고 나의 눈과 귀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군대 이전에 나는 어떠한 도전과 시도 그리고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런 걸 해야 하는 이유와 의미를 생각하고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무지'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였다. 나의 '무지'를 깨부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 나서겠노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자기 계발 서적을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큰 수확은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좁은 세계 속에 갇힌 채 제한되었던 나의 생각과 사고 그리고 경험의 범주가 확장된 것
두 번째는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결국 성공을 이루어낸 사람들의 마음가짐
지금의 나는 자기 계발서를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계발서에 취하게 되면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몸소 경험한 바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내 인생이 변화게 된 첫 시발점은 자기 계발서라는 걸 부정하지 못한다. 자기 계발서를 통해 사고와 인식이 확장되고 경험의 범주가 늘어났으니까.
자기 계발서든 전공서적이든 고전문학작품이든 사람에 따라 취향과 배움의 정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결국 경험적 범주를 확장하는데 독서만큼 효율적인 수단은 없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책이 가진 잠재력과 힘은 무궁무진하다.
이때까지는 어려운 전문지식의 책을 이해하는 수준도 아니었으며, 자기 계발서만 읽었기 때문에 내 지식수준의 변화는 별로 없었고 똑똑해졌다거나 특출 난 능력을 습득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파트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무지성'에서 일반 지성으로 가는 과정의 시작이 바로 나의 부족함과 무지를 깨닫는 것이었고, 그 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변화에 대한 시도와 도전을 생각하게 했던 이유가 바로 경험의 범주와 사고의 확장이 일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책을 읽으며 그들의 인생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들처럼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나의 인생을 성공하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처음으로 내 인생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변화를 갈망하는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가?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가?
그렇다면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변화와 성공을 거머쥔 사람들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독서를 시작해보라. 이 작은 실천으로 당신의 인생이 180도 변할 수도 있다.
100프로 장담은 못하겠으나, 적어도 나는 그랬다.
만약 당신이 평소에 독서를 많이 하고 자기 계발에 많은 노력을 하는데도 삶에 아무런 변화가 느껴지지 않고 제자리걸음인 것 같이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내 글을 끝까지 읽어보라.
#3 나의 무지함과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아프리카 1년
변화의 시작은 자신의 '무지'함을 인지하기 시작할 때부터이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전역일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동시에 이제 전역하면 무얼 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물론 최후의 보루로 대학교 복학이 있었지만 대학은 사실, 어머니의 간절함 바람으로 속된 말로 '돈만 주면 갈 수 있는' 대학을 갔었고 대학과 전공 선택도 아무 의미 없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을 선택했었다.
대학을 복학해서 그냥 출석체크만 잘해도 사회에 나왔을 때 '대졸'자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이미 군대에서 수많은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서 얻게 된 열정과 도전정신이 내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책으로만 느꼈던 넓은 세상과 다양한 문화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고 자기 계발 서적에 취해 어딜 가던지 내 의지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기에 전역하자마자 해외 봉사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아프리카 케냐로 날아갔다.
내가 지원한 봉사지역은 케냐의 키수무라는 지역이었다. 이 봉사단체는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뿐만 아니라 여러 중소 도시에 지사를 두고 있었고 대부분의 봉사단원들은 나이로비 지사를 지원했지만 나는 리얼 아프리카를 느끼고 싶어서 지역 지사로 지원을 했다. 그리고 케냐에 도착한 후 나이로비 지사에 몇 주 머물다가 곧바로 키수무 지사로 이동했다.
뭐 대부분의 봉사단체가 그렇듯 이 봉사단체도 기독교를 근간으로 설립된 단체였다.
해외 봉사와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하여 대학생 및 청년층을 대상으로 지원자를 모집했고 나와 같은 일반인들도 간혹 섞여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해당 교회 청년 신자들이었다.
봉사를 하기 위해 머문 곳도 교회였다. 그리고 말이 해외 봉사였지 이들의 진짜 속내는 자신들의 주업인 교리 전파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봉사자를 끌어들이는 것이었고, 세력을 확장하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젊고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무일푼으로 자신들의 교회 일에 힘을 보태주고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면 없던 신앙심도 생기면서 결국 이 교회의 일원이 되어간다. 그리고 아프리카와 같은 해외지사에 젊은 선교사들과 봉사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교회 활동에 활력이 생기고 그만큼 해당 국가 신자들도 많이 끌어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굉장히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이런 걸 애초에 예상 못하고 온건 아니다. 이미 모든 걸 다 파악한 상태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고
생각해보면 나쁠 것이 없었다. 나는 무신론자였고, 돈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아프리카라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나에게 아프리카라에서 1년간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여러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이곳에 고마움을 느끼고 종교적인 믿음에 대한 태클을 걸지 않는 이상, 이 교회의 룰을 잘 따르면서 나만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대부분 봉사단원들은 자신들이 한국에서 배웠던 특기를 활용하여 태권도 클래스, 한국어 클래스, 피아노 클래스 등을 진행하였고, 이들은 애초에 교회의 신자였기 때문에 간혹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나는 어차피 신앙심도 없고, 할 줄 아는 것이 없었기에 교회를 홍보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일을 맡았다. 어쩌면 이쪽에서 가장 필요한 일이었기도 했다. 지금까지 신자를 늘리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지만 성과가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고 끌어들이는 능력이 탁월했다.
큰 행사를 주최하여 이 지역에서는 역대급 참석자 기록도 세우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어떤 행사를 개최할 때 100명 모이면 진짜 많이 모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어떤 큰 행사에서 500명을 모았다.
그래서 이 교회에서도 썩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많은 책임과 권한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 교회 목사님이 언젠가 한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종순이를 보고 하나 깨달은 게 있는데 비록 구원은 안 받았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함께 있는 것으로도 그 사람을 위해 일을 하시는구나 (A-MEN)"
사실 속으로는 엄청 웃었지만 온전히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어쨌든 나는 애초에 신앙심도 없고 앞으로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처음부터 못 박고 이 봉사활동을 시작했던 터라, 이곳에서 소속감이 없는 이방인 같은 느낌이라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점점 사람들이 인정하고 나를 같은 일원으로 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나름 내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교회에 보탬이 되면서도 아프리카의 삶을 적응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이렇게 무탈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점점 나의 '무지'를 확실하게 깨닫게 되는 계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나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심지어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누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여러 활동을 하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반드시 소통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한국인 선교사와 봉사자들과 아프리카 사람들 간 소통은 영어로 했다.
아프리카 케냐는 과거 영국의 신민지였기 때문에 영어를 제2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영어를 못했던 나는 그저 그들과 소통할 때 바디랭귀지와 전자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단어로 소통하기 일쑤였다. 대충 느낌으로 소통하는 게 전부였었다.
하지만 교회에 한국인 봉사단원들 이외에 교회 형제자매들이 함께 생활하고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주먹구구식 소통은 여러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한계가 존재했고, 시간이 갈수록 답답함과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매일 한국 봉사단원과 교회 현지 형제자매들과 밥을 같이 먹는다. 그리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장난도 치기도 한다. 영어를 못하는 나는 그저 하이~헬로우와 같은 단순한 단어를 뱉고 난 후 묵묵히 밥을 먹었다.
매일 현지 신도들과의 식사시간과 활동하는 시간 내내 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인사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는 나와는 다르게 다른 한국 봉사단원들은 그들과 소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교회에서 나름 열정적인 현지 형제 한 명이 아침 식사 때 나에게 다가와 한마디를 건넸다.
"(내 영어 이름) Soon, How Are You Going?"
당시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나는 당황했다. 뭔가 인사 같은데 하이도 아니고 헬로우도 아니었다.
뭐라는지 하나도 안 들렸다. 그래서 내 옆에 있는 한국인 봉사 단원에게 물었다.
"쟤 뭐라고 하는 거냐?"
"오빠 이것도 안 들리나?, '하우. 알. 유. 고잉' 이라잖아 인사하는 거야.
주변에 있던 나머지 한국 봉사 단원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이런 게 다 들리니? 여기 오기 전에 영어공부를 따로 하고 온 거야?"
"아니 이런 건 초등학교 때부터 기본적으로 배우잖아..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내 스스로가 창피했다.
그들과 자연스럽게 하는 대화가 가능한 영어 스킬이 어렸을 적부터 기본적으로 배워온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니.. 그때 나는 같은 한국인 봉사단원들에게 나 사이 배경지식의 차이가 확실히 느껴졌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들의 영어실력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저 기본적인 영어문법과 단어 그리고 듣기 평가와 같은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일상적인 소통은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저 대단하고 높아 보였을 뿐이다.
'무지'하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다른 사람에겐 별거 아닌 것에도 그저 대단해 보이고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말 별거 아닌데도 사람은 이런 사소한 것 하나에도 굉장히 상처받는 취약한 존재이다.
자기 계발 서적만 읽고 나 자신이 뭐라도 된 듯이 자아도취해 있었지만 결국 나의 배경지식 수준은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무지'한 상태란 걸 깨닫고 나는 이때 새로운 다짐을 했다.
이제부터 실질적으로 내가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할 것이고 그 첫 번째 관문이 영어를 정복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손에 전자 영어사전과 단어장을 들고 다니며 무작정 영단어를 미친 듯이 외우기 시작했다.
밥을 먹는 시간에도 단어장을 놓지 않을 만큼 열정적으로 공부했다. 그러고 나서 기초 문법과 회화를 공부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던 찰나, 교회 사모님(목사님 부인)께서 영어를 처음 공부할 때 도움이 되었다던 OO스쿨의 기초 영어 강의가 들어있는 USB를 나에게 건네주었고 일과가 끝나고 잠들기 전까지 매일 반복해서 영어 기초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다.
나는 정말 영어를 읽을 줄은 알았으나 까막눈 수준이었기 때문에 'I Like You'와 같이 초등학생이면 다 아는 기본적은 문장의 기본 문법 구조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3 형식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 직접 입으로 내뱉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외웠고 점점 아프리카 현지인과 기본 인사부터 대화를 먼저 걸기 시작했다.
3개월 정도가 지나니까 어느 정도 기본 단어와 문법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영어 강의 수준도 중급 과정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3 형식에서 4 형식을 배우고 수동태 등을 학습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영어 표현의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교회 내부에서 활동할 때는 단어를 외우고 영어강의를 반복해서 보았고 외부 활동을 할 때는 시장을 가던 누구를 만나던 나와 눈이 마주치는 그 누구를 가리지 않고 붙잡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나마 아프리카는 인종차별이 심한 선진국들과 다르게 내가 어눌하게 말을 걸어와도 웃으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것이 내 영어 실력을 발전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 것 같다.
5~6개월 정도가 지나니 일상적인 대화를 모두 알아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어눌하게라도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영어로 된 동화책을 무리 없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주변 현지인과 한국인 봉사자와 선교사들은 이런 나를 보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고 영어실력이 엄청 늘었다는 말을 자주 해주었다. 이것에 동기부여도 되어 더 열심히 영어공부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쯤 되니까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왔을 때 한국인 봉사자들을 보면서 느낀 영어와 기본 배경지식에 대한 벽이 그리 높지 않음을.
그 친구들의 대화 패턴은 항상 일관되었다. 똑같은 패턴으로 계속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내가 아무것도 몰랐을 때 대단해 보였을 뿐이었다. 이때부터는 심지어 나에게 이 단어를 영어로 뭐라고 했지? 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점점 현지인과 소통하는 빈도와 시간이 내가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한국인 봉사단원들은 기본적인 정규 교육을 잘 따라왔고 나름 나쁘지 않은 대학을 다닌 성실한 학생들이었다.
수학, 국어, 과학, 역사 등 일반적인 배경지식은 당연히 그들에 비하면 나는 '무지'에 가까운 수준이었겠지만
아프리카 5~6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감히 말하지만 영어 실력만큼은 내가 그들을 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만약 아프리카에서 영어 공부를 나처럼 했다면 내가 절대 못 따라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초 지식부터 이미 많이 벌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은 딱 한 가지였다.
나는 영어 공부에 진심이었고 그들은 영어보다는 다른 목적에 진심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로지 영어공부에 집중했고 그들은 다른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집중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운동 이외에 살면서 처음으로 승리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지식수준으로 누군가를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얻게 되었다.
나의 첫 승리 경험이었다.
이 파트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은 '무지'할 수 있고 '무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죄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의지를 가지고 배우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무언갈 배우더라도 누군가의 외압과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억지로 공부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하는 공부는 큰 성과를 발휘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불신과 자괴감에 빠지기 쉽고 극심한 스트레스만 유발할 뿐이다.
'무지'를 벗어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 스텝은 바로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인정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4 나의 꿈을 찾고, 배움을 갈망하기 시작한 호주 시절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고, 배움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11개월간의 아프리카 봉사활동(교회일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지만 어쨌든..)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아프리카에 다녀온 이후 나는 제법 자신감에 차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기본적인 영어 실력을 습득했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여러 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주최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프리카에서의 가장 큰 깨달음 중 하나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문화를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그들도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아프리카를 가기 전에는 아프리카 문화와 지적능력은 태생적으로 한참 떨어질 것이고 대부분의 아프리카인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아프리카의 몇몇 부류는 전혀 달랐다.
행사 홍보와 참여자 모집을 위해 우리나라로 따지면 경기도와 같이 도 도단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 학생들의 지적 수준에 엄청 놀란적이 있었다.
내가 평소에 봐왔던 시장의 사람들과 일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다.
정치, 역사, 최신 IT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들과 대화하고 있으면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일반 사람들과 그들의 수준 차이는 바로 교육에 있었다는 걸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왔고 어렸을 적부터 교육을 충실히 잘 받아왔다고 한다.
성인이 되기 이전 어린 나이부터 학교도 못 다닌 채, 노동자가 되고, 집안일을 책임지고, 심지어 일찍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등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거리의 젊은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거의 높은 확률로 이들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 대학의 학생들은 심지어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서 어떤 직업을 갖을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도 있었다. 여기서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평소에 봐왔던 젊은이들과 이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가정과 교육 환경이었다.
이처럼 아프리카에서 11개월간 크고 작은 성취와 깨달음을 얻고 자신감까지 충만해져 있던 상태로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이 소중한 경험과 깨달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섬으로 들어가 아버지 어업을 도와주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또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내가 진정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가 명확하게 없었다는 점이었다. 무언가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든다는 열망은 있었으나 이는 추상적인 것일 뿐,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무엇을 할지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고향에서 6개월을 지내면서 고민하다가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어, 또다시 객기가 발동했다.
아프리카를 가서 어느 정도 기본 영어를 습득했으니, 이제는 잘 사는 영어권 국가에서 한번 스스로 자립하며 살아보자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그리고 바로,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무작정 떠났다. 호주를 가기 전 이미 워킹홀리데이 대행업체에게 의뢰하여 숙소와 일자리는 확보한 상태로 떠나긴 했지만 떠났을 당시 내 전재산은 50만 원뿐이었다.
호주에서는 총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호주에서의 2년을 짧게 요약하라고 한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평화로웠고 잠시 2년간 꿈을 꾼 것 같은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홀로 여행을 떠나 작은 마을의 카라반 파크에 머물며 호주인 농장주 밑에서 일하려고 이력서를 들고 농장 주인을 대면할 용기가 안나 그 농장 주변만 몇 시간 서성였던 순간부터 돈을 모아 구닥다리 차를 한대 구입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무작정 호주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여행했던 추억, 그리고 돈이 떨어질 때마다 지역 농장 일거리를 찾아 다시 돈을 모아 또다시 마음 가는 대로 여행을 떠나길 반복하던 시절이었다.
농장 상황에 따라 돈을 엄청 벌 때도 있었고 못 벌 때도 있었고 이곳저곳 그리고 이 농장 저 농장을 떠돌아다니며 유럽, 아시아 등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고, 내 32년 인생 중 현재까지를 기준으로 거의 유일하게 한 여성과 사랑에 빠져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사랑하는 연인과 여행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홀로 여행하면서 외로움에 사무치기도 했으며 농장일을 끝내고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농장이 붉게 물들어가는 일몰 풍경 위를 뛰어다니는 캥거루 가족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행복감에 젖어들기도 했다.
때론 힘들고 외롭기도 했지만 나에겐 이것조차 아름답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시절이 바로 호주에서의 2년이었다.
이렇게 한 편의 행복한 영화와 같은 호주 생활도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멜버른이라는 도시 인근 지역의 닭 공장에서 호주 생활 말년을 편하게 보내고 있었다. 나는 8개월 남짓 남은 호주 생활을 이곳에서 모두 보내려고 마음먹었다.
그 이유는 집시 같은 떠돌이 생활은 할 만큼 했고 한국 사람에 대한 향수도 조금 느끼고 있었고 한국에 돌아갈 것을 대비해서 한 곳에서 오래 일하며 돈을 모을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닭공장이었다.
이 닭 공장은 호주인 고용주가 운영하는 농장으로 한국인이 관리자로 있었다.
급여는 호주의 고용법에 따라 정당하게 받을 수 있었고, 일하는 숙소도 이 관리자가 관리하는 한국인들만 사는 집이었다. 농장에서의 따는 만큼 페이를 받는 성과 중심의 일만 하다가 시간당 페이를 받으니까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지만 적응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닭 공장이라 힘들 줄 알았는데 하는 일도 엄청 쉬웠고 대부분 호주 노동자들과 일했기 때문에 안전관리 준수나 일의 강도도 매우 낮았다.
속된 말로 시간당 거의 2만 원씩 받으면서 꿀 빠는 일이었다.
무거운 것도 혼자 들지 못하게 하였고, 정식 노동시간을 초과해서 일을 하거나 주말에 일하면 페이를 1.5~2배를 줘야 했기 때문에 항상 칼퇴와 주말이 보장되었다.
이곳에서 호주의 끝을 보내기로 마음먹고 한국 가기 전에 돈도 모으면서 한국 갔을 때 당장 일할 수 있도록 필요한 공부와 자기계발을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쉬는 날과 여가시간에는 동료들과 롤이라는 게임을 하며 보내기도 하고 동기부여 영상 및 영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나는 세계적인 석학과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15~20분간 강연을 하는 프로그램인 '테드(TED)' 강연을 즐겨 봤다.
그리고 어느 평화로운 주말 오후에,
다시 한번 내 인생이 완전히 뒤바뀔 만큼의 큰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일에 닭공장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집에서 평화롭게 쉬고 있었다.
동료들과 게임을 몇 판 하고 방으로 들어와 내 침대 위에 누워 볼만한 테드(TED) 강연을 찾고 있었다.
테드 강연도 주로 그나마 내가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인문학과 비즈니스 관련 분야만 시청했었다.
테드 강연에는 테크나 과학 분야의 재미있고 유익한 강연도 많았지만 당시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을뿐더러 흥미가 잘 생기지 않은 탓에 이런 분야의 강연은 클릭조차 하지 않았지만 웬만한 테드 인기 강연을 다 보고 나서 흥미가 생길만한 여러 강연을 찾고 있을 때마다 계속 눈에 들어오는 테크 강연 하나가 있었는데 그 강연은 MIT 천재 공학자이자 당시 33세의 나이에 최연소 삼성 상무가 되어 화재가 된 "파라나브 미스트리"라는 인도의 과학자의 강연이었다.
제목은 "The Thrilling Potential of Sixth Sense(재 6감의 엄청난 잠재력)" 으로 카메라, 프로젝터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목걸이 형태의 작은 디바이스를 인터페이스로 사용하여 우리의 모션과 제스쳐를 인식하여 손가락을 허공에 대고 사각형으로 만들기만 하면 카메라 없이도 사진을 찍을 수 있고, 프로젝터가 손바닥에 비춰주는 숫자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휴대전화 없이 전화를 걸 수 있는 등 노트북 혹은 스마트폰과 같은 디바이스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가 인지하는 모션만으로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가 상호 작용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도구를 시연하는 강연이었다.
내가 이 강연을 본 건 2015년 초였지만 이 강연이 처음 나온 시기는 2009년이며 한참 스마트폰이 상용화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스마트폰을 넘어선 미래의 기술과 새로운 일상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강연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래도 당시에는 스마트 워치 등과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나 사물인터넷, 증강현실과 같은 기술이 상용화는커녕, 용어 자체도 들어본 적 없을 정도로 생소한 기술들이었기 때문에 나 또한 이 강연이 굉장히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졌으나 기술의 발전 속도와 미래를 본 것 같아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던 강연이기도 했다.
처음 이 강연을 보고 나는 전율하였다.
두 번째 봤을 땐, 나도 저 강연자처럼 기술의 혁신을 선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 번째 봤을 땐, 저런 기술을 발명하려면 어떤 지식이 필요한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당시 내가 찾아낸 키워드는 IT 라는 큰 줄기를 기준으로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센서, 프로그래밍 기술 정도였다. 그리고 관련 기술을 찾아보고 필요한 책을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IT 분야의 역사와 기술의 혁신을 이뤄내고 현재 이뤄가고 있는 사업가들의 일대기를 찾아보게 되었고 많은 영감과 감명을 받았다.
IT 라는 분야의 시장과 기술 트렌드를 알면 알수록 더 나를 매료시켰고, 앞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혁신적인 기술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드디어 내가 남은 인생 동안 올인할 수 있을 만한 원대한 꿈이 생겼다.
세상에 가치와 편의를 제공하는 영향력 있는 IT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를 세우는 것,
매우 추상적이고 엉성하지만 내가 처음 정의한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의 정의이다.
2년간의 호주 생활의 말년에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꿈이 생기자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의 정확한 목표가 세워졌다.
먼저, IT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기 때문에 관련 분야의 노하우와 지식을 습득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IT 회사의 사업부서에 취업해서 사업 경험과 이 시장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했지만 당시 내가 가진 IT 분야 지식수준과 스펙으로는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한국에 가자마자 제일 먼저 IT 제품과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공부해서 취업준비를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하고 곧바로 고향 섬마을에 조금 머물다가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서 국비지원 IT 프로그래밍 개발 교육 8개월 과정을 수강하게 되었다. 내 꿈을 향한 실질적인 배움의 첫 시작이었다.
#5 나에겐 미치도록 어렵기만 했던 IT 분야
새로운 지식을 배운다는 건 누구에게나 늘 어려운 법, 빨리 배울 수 있는 지름길은 없다. 정답은 하나, 포기하지 않고 익숙해질 때까지 그냥 하는 것이다.
누구나 새로운 무언갈 하기 위한 도전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는 무관한 새로운 분야 및 기술을 공부한다던지, 새로운 언어를 공부한다던지 등등..
커리어 전환을 위해서든, 취업을 위해서든, 자신의 스펙을 한 단계 올리기 위해서든,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고 싶어서든 새로운 지식을 배우기 위한 도전을 해본 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은 자신이 줄곧 해왔던 익숙한 일과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머릿속이 흰 백지장 상태에서 처음부터 새로 써 내려가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새로운 무언갈 배워서 자신의 인생에 변화를 기대하는 설렘도 잠시, 막상 공부를 시작하면 어렵고 이해도 안 되고 집중력도 떨어지면서 흥미를 점점 잃게 되고 결국 자신의 머리가 나쁘다는 둥, 자신과는 맞지 않는 분야라는 둥 자기 합리화를 하며 포기해버린 경험이 있지 않은가?
현대 '뇌과학'에서 밝혀낸 여러 가지 뇌에 관한 사실 중 수많은 뇌과학 관련 책과 강연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개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신경 가소성'이다.
신경 가소성을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의 뇌는 특정 환경에 맞게 계속 변한다는 뜻이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뇌는 특정 나이가 되면 뇌세포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그대로 안정화되고 기능이 저하된다고 생각했으며, 유년기와 같은 사람의 인생의 초기단계에서 뇌의 성장이 멈춘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뇌과학 연구결과에 따르면 학습이나 여러 환경에 따라 뇌세포는 계속 성장하거나 쇠퇴하기를 반복하며 새로운 뇌세포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등 굉장히 활발한 뇌 가소성을 보인다고 한다.
당신이 무언갈 배우기 시작하면 뇌는 그 지식은 지식의 특성에 맞는 부위의 뇌세포(뉴런)에 의해 학습 및 저장될 것이고 지속적으로 학습한다면 뇌세포끼리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게 되면서 새로운 신경회로를 재설계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분이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그리고 얼마나 반복적으로 학습하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뇌는 그에 맞는 강력하거나 약한 신경회로를 설계하게 되는 것이다.
자전거도 타본 놈이 오토바이 타는 법을 금방 배울 수 있고, 복싱을 배워본 놈이 킥복싱도 더 빨리 배울 수 있는 것과 비슷하게 우리가 무언갈 학습할 때 기존에 학습되어 만들어진 신경회로를 기반으로 새로운 지식을 이해하고 학습하게 되고 나아가 새로운 신경회로를 만들어간다.
결국, 새로운 무언갈 배우기 위해서는 정도가 없다. 이해가 더딘 건 어쩔 수 없다. 이미 머릿속에 관련 지식이 학습된 것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개념의 신경 회로가 새로 형성되고 견고해질 때까지 새로운 지식을 반복해서 학습하고 이해가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신경 가소성'이 옳다는 것을 IT 교육원에서의 경험을 통해 증명한 것 같다.
IT 분야에서의 성공을 꿈꾸며 처음 서울에 상경해서 처음으로 IT 전공지식을 배운다는 설렘도 잠시,
프로그래밍 기초를 배우는 교육원 초기 과정부터 내 멘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 웹 개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인 자바(JAVA)와 자바를 기반으로 웹 사이트를 빠르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인 스프링(Spring)프레임워크를 활용한 웹 개발 교육 훈련을 받았다.
같이 교육을 받았던 동기생은 대략 25명 정도로 기억한다. 그들 중 일부는 컴공을 전공하였지만 나와 같이 비전공자들도 몇몇 섞여 있었고 결국 이들도 개발 분야에서 일하거나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출발선이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착각일 뿐이었고 내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 오만이었다.
본격적인 웹 프로그래밍 개발 전에 개발 언어의 문법과 기초 개념을 배운다.
프로그래밍 언어의 종류는 많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처음 배울 때 나오는 공통적인 개념들이 있고 대표적으로 변수, 자료형, 조건문, 반복문, 함수, 클래스와 같은 개념들이다.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 기초 개념을 배우는 첫 시간부터 나는 멘탈이 깨져버렸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교수님이 말한 개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고 진도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것이 기초 과정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나는 외계어를 배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점점 난이도는 한주 한 주 지나갈 때마다 미친 듯이 올라가는 기분이었고 1~2 주가 지난 시점에서는 열심히 하던 필기와 예제 코드를 따라 타이핑하는 것도 불가능할 지경까지 왔다.
1~2주가 지난 시점에서 여러 질문을 하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꼬일 대로 꼬여버린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애초에 내가 배우기엔 너무 넘사벽의 분야였던 걸까?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나와 비교대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들(동기생)은 어떻게 이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거지?
정말 수업시간에 동기생들을 보고 있으면 교수님의 수업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학에서 컴공을 전공했다고 할지라도 프로그래밍을 전문적으로 해보지도 않고 심지어 나와 같이 비전공자들도 있는데 어떻게 저들은 이 어려운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거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멍청한 건가, 아니면 저들이 똑똑한 건가, 아니면 교육원을 오기 전에 사전에 선행학습을 하고 온건가.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조급함과 답답함 그리고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였었다. 나는 컴퓨터 지식은커녕, 온라인 게임만 조금 해보고 MS 오피스 등 기초적인 컴퓨터 프로그램도 다룰 줄 모르는 컴맹인 데다가 지금까지 학업을 포기한 탓에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없었을뿐더러, 공부란 걸 해본 것이 아프리카에서의 영어공부가 전부였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습관화가 안되어 있었고 그만큼 무언갈 배울 때 학습 속도도 일반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나와 내 동기들과의 차이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정규 교육에서 배운 것과 프로그램 개발 학습에 무슨 연관관계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현 교육시스템에서 주입식으로 교육을 받아왔다고 하더라도, 일단 머릿속에 일반적인 배경지식 베이스가 있고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공부습관과 어떤 지식을 습득하고 이해하는 사고체계가 알게 모르게 몸에 배여 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 무언갈 새로 배울 때의 출발선은 매우 다르다.
이런 상태에서 어려운 프로그래밍 기술을 배우고 있으니, 외계어를 마주한 것과 다름없는 게 당연했다.
나에게 교육원 초기는 굉장히 심적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내가 일반 친구들보다 배경지식 수준도 낮고, 그만큼 이해하는데 학습 속도도 매우 딸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조금 어려웠다.
그리곤 자기 합리화의 유혹에 빠지기 시작했다.
"역시 IT 분야는 내 적성에 안 맞는 분야인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이 분야에 재능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어서 절망만 할 거야"
"여기서 시간만 날릴 바엔 다른 분야를 찾아보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거야"
오만가지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걸 해낼 자신이 없었다.
턱없이 부족한 배경지식 수준과 IT 문외한이었던 내가 프로그래밍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리에 맴돌며 내 자존감과 열정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포기'할까를 생각하던 어느 날 문뜩 아프리카에서 영어 공부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그때도 지금과 상황이 다를 게 없었다.
정규 교육을 통해 학습 이해력과 기본적인 영어실력이 학습된 상태의 봉사 단원들과 거의 제로 베이스였던 나였기에 분명 출발선이 달랐겠지만 해내지 않았었는가?..
지금 상황이 조금 다른 건 암기 위주의 학습으로도 충분했던 영어공부와는 달리 전반적인 IT 기초 지식과 프로그래밍이 동작하는 구조와 매커니즘의 이해도가 조금 필요하다는 것뿐이었다.
조금 난이도가 올라간 도전이긴 하지만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IT와 프로그래밍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프로그래밍 입문과정에서 배우는 기초 이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라 그림으로 쉽게 IT 용어나 프로그램 기초 이론을 설명하는 책을 사서 공부하고 유튜브에서 여러 기초 강의를 찾아 이해가 될 때까지 반복해서 보고 또 보면서 기초이론을 공부했다.
그리고 교육원에서 하루 8시간 강의를 들을 때도 이해가 되던 안되던 단 한순간도 한눈팔지 않고 끝까지 집중해서 들으려고 노력하고 교육원이 끝나면 곧바로 카페로 달려가 그날 배웠던 내용 중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복습하면서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이러한 루틴은 주말과 공휴일을 가리지 않고 지속되었다.
일주일 내내 오로지 프로그래밍만 생각하고 집중했다. 다른 건 이미 내 우선순위와 관심 밖으로 멀어져 갔다.
그렇게 3개월 동안 프로그래밍에 의한, 프로그래밍을 위한 학습 루틴을 반복하자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3개월이 지나자 생소하기 어렵기만 했던 용어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렵기만 했던 프로그래밍 기본 용어들의 각 역할과 개념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배우는 웹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전체적인 핵심 요소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밍이 동작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입력하고 가공되고 저장되고 최종적으로 화면에 결과를 표출하는 전 주기적인 과정을 머릿속으로 어렴풋이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내 머릿속에서 새로운 분야의 신경회로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설명했던 뇌세포(뉴런)의 신경 가소성에 따라 IT라는 새로운 지식들이 연결되고 성장과 재조직을 통해 새로운 신경 회로가 만들어진 것 같다.
내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던 초기 3개월 학습과정이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3개월간의 프로그래밍 학습 루틴을 반복하고 나서는 이전과 다르게 새로운 개념을 배워도 이해하고 습득하는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교육원 진도도 무리 없이 잘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육원 3개월 차가 될 무렵부터 학습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 나와 다르게, 동기 교육생들의 중도 포기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프로그래밍 기초와 이론을 배우고 기초개념을 학습하기 위해 예제 코드를 따라 치는 정도의 수업일 때는 진도를 따라갈만했으나, 점점 실전 웹 프로그래밍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프레임워크, 디자인 패턴, 데이터베이스, 클라이언트-서버 관계 등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교육원 3개월 이후부터 동기 교육생들의 그룹이 확연하게 나눠지기 시작했다.
동기 교육생의 3분의 1은 뒤에서 무리를 지어 수업시간인데도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3분의 1은 게임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수업을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하는 것 같았다.
나머지 3분의 1만이 포기하지 않고 교육을 열심히 들으며 취업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 나갔다.
나는 다행히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교육을 이수한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끝까지 교육을 완주한 그룹 친구들은 기본적인 컴공 지식과 프로그래밍 사전 지식을 충분히 숙지한 상태에서 교육을 시작한 데다가 교육 훈련을 누구보다 열심히 들었고 따로 개인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하던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애초에 출발선도 다른 데다가 열심히 한 이 친구들보다 내가 더 잘할 수는 없었다.
하나 그때 당시 당장은 이 상위 그룹 친구들의 실력이 나보다 높더라도 언젠가는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보다 출발선이 좋았으나, 중도 포기를 선택한 나머지 3분의 2 그룹의 동기생들은 이미 교육 과정 3개월 차가 지난 시점에 나에게 따라 잡혔고, 5개월 차가 지난 시점에는 그들과 나의 격차가 상당히 벌어진 상태였다.
이처럼 나의 꿈을 향한 첫 시작으로 선택한 IT 교육원 경험을 통해 깨달은 점은 누구에게나 익숙하지 않거나 새로운 무언갈 배우는 과정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더욱이 열악한 가정환경과 교육환경 속에서 배움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새로운 무언갈 배울 때 누구보다 이해가 더디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전에 학습된 지식이 부족했을 뿐이지 전혀 머리가 나쁘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다.
재능과 지적능력이 무조건 선천적으로만 타고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언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성취해본 경험도 없는 패배자들이며 자신의 게으름과 의지 부족을 이런 근거 없는 말장난으로 포장하려는 사람이다.
사람마다 동기와 살아온 배경과 머릿속에 형성된 신경회로가 다르기 때문에 학습 속도와 이해력은 달라질 수 있겠으나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지식이 익숙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개월이었다. 여기에서 3개월이라는 조건은 온전히 3개월간 그것만을 위해 집중하고 생각했을 때의 가정이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할 때까지의 반복 학습 과정 3개월은 가장 혹독하고 고통스럽다.
이해가 안 되니까 똑같은걸 이해될 때까지 반복해야 하고 똑같은걸 반복하다 보면 집중력도 떨어진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지루하고 학습에 대한 재미와 흥미가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간을 견뎌내야지만 새로운 지식의 문이 열린다.
익숙해지기 시작할 시점엔 새로운 개념에 대한 학습 속도와 이해력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게 되고 전체적인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조합하고 연결하면서 응용할 수 있게 되면서 학습에 재미와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이러면서 내 생각과 의견이 생기기 시작하고 새로운 방법, 프로세스, 프로그램 등 자신이 배운 지식을 활용하고 응용하면서 나만의 무언갈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무언갈 도전하고 싶은데 너무 어려울 것 같고 자신에겐 높은 벽같이 느껴지면서 머뭇거리고 있는가?
혹은 막상 도전했는데 어렵기만 하고 이해가 전혀 안 돼서 도저히 자신과 맞지 않은 것 같아 조금 하다 포기했는가?
이런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딱 한 가지다.
아무리 이해가 안 되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말고 그냥 3개월만 해봐라.
남의 말과 경험담에 흔들리지 말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포커스를 맞추고 3개월 동안 익숙해지는 것을 목표로 한번 온전히 집중해보라. 3개월 동안 잘하게 되는 일은 이 세상에 없다. 그저 익숙해질 뿐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작이라는 걸 기억해주길 바란다. 익숙해질 때부터가 시작이다.
상황에 따라 3개월이 훌쩍 넘어갈 수 있지만 무엇이든 간에 그것에 진심이라면 익숙해질 때 까는 그냥 견뎌라.
#6 도전과 실패, 좌절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이때부터였다. 나의 학습 속도와 지성이 전과 다르게 매우 높아져 있음을..
여러 시행착오 끝에 IT 교육원에서의 8개월을 만족스럽게 수려하고 난 후 본격적으로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실전 여정이 시작되었다.
교육원에서는 IT 개발자 양성 교육을 받았지만 IT 배경지식을 얻기 위함이었고 애초에 나는 IT 개발자가 되는 것보다 IT 사업을 꿈꿔왔기 때문에 IT 제품 및 서비스 사업 경험을 원했으므로 교육원 수료 이후, IT 회사의 사업과 관련된 부서에 지원해서 커리어를 쌓아갔다.
교육원을 2016년 6월경에 수료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대략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5년 동안 나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지속해왔다.
대기업 자회사에 취업해서 모바일 컨설턴트를 하면서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배움을 얻었고,
사물인터넷 중소기업 사업부서에 취업해서 기획, 사업제안, 영업, 마케팅, 국책과제 담당 등 여러 가지 IT 직무를 경험하면서 IT 제품과 시스템 사업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으며,
교육원에서 서로 의지하고 비전이 같았던 친구와 온라인 프리랜서 서비스를 고안하여 창업을 도전하면서 스타트업과 IT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전체적인 프로세스 및 노하우를 어느 정도 습득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IT 분야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다양한 직종의 새로운 지식과 노하우를 습득하고 IT 분야의 이해와 사고 범위를 넓혀가기도 했고, 항상 그래 왔듯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과정에서 많은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창업에 실패하면서 모든 걸 잃고 인생의 고비가 찾아오기도 했다.
몇 개월 동안 폐인 생활을 하기도 하고, 사회적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취업하는데 많은 좌절이 있기도 했으며, 창업 실패 이후엔 모든 걸 잃고 공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꿈을 향한 도전과 실패를 딛고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한 준비과정을 거치고 또다시 이곳 IT 분야로 들어왔다. 지금은 개발자로 분당에 위치한 중견기업의 데이터를 다루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IT 서비스를 내 손으로 언제든지 직접 구현할 수 있을 정도의 개발실력을 갖출 때까지 개발자의 삶을 당분간 살아갈 생각이다.
아프리카 봉사활동 시절부터 ~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습득해왔다.
그리고 이 과정은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일반적인 루트가 아닌 것도 알고 있다.
착실하게 입시 준비 -> 대학 진학 -> 취업준비 -> 직장 커리어 및 스펙업 -> 좋은 회사 좋은 연봉의 삶과 같은 사회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방향과는 많이 어긋난 인생을 살아왔다.
남들이 보기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허튼짓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너무 많은 허튼짓을 해온 건 인정한다.
그리고 이런 허튼짓의 과정 속에서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좌절과 고통 속을 참아가며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룬 것도, 가진 것도 하나 없다.
나 또한 이런 과정 속에서 내가 추구하는 인생에 대한 회의감과 불신을 할 때도 있었고 의미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내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나는 돈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아프리카, 호주, 창업 등의 경험은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경험하기 쉽지 않은 소중한 경험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과 과정 속에서 나는 점점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결국 IT 분야로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사업, 제안, 영업, 마케팅, 기획, 개발, 서비스 운영 등 다양한 직무 경험하면서 다양한 지식과 노하우를 학습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한 가지 직무로 국한된 사람보다 다양한 시각과 이해를 바탕으로 문제 해결 능력이 향상되었다.
또한 IT 분야의 여러 지식에 대한 신경회로가 견고하게 형성되어 지금은 IT 분야라면 어떤 새로운 일과 기술일지라도 어렵지 않게 도전할 수 있고 잘 해낼 거라는 자신감과 믿음이 생겼다.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자신만의 노하우나 방법을 터득한 사람에게는 기획이든, 개발이든, 영업이든, 마케팅이든 모든 직무가 하는 업무 특성이 조금씩 다를 뿐 결국, 일이라는 관점에서 자신이 터득한 기준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빠르게 이해하고 습득할 뿐만 아니라 잘 해낼 수 있는 것 같다.
자신의 한계를 제한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한 사람은 결국 원하는 곳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을 믿는 것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어쨌든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했을 때, 그 무엇을 보던 그 어떤 일을 하던 이전과는 다르게 학습 속도와 이해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 기분이 든다.
여기에 나만의 사고와 생각 그리고 의견이 더해진 것 같다. 전에는 그저 배우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에 내 의견과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지만 지금은 많은 경험과 생각을 통해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이 생기기 시작했다.
#7 결론: 무엇이 사람을 똑똑하게 만드는가?
탁월함으로 가는 지름길 따윈 존재하지 않으며, 답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계속 나아가는 것뿐이다.
'무지성'이었던 내가 지금은 비로소 일반인들과 동등한 '지성'으로 올라선 것 같다.
나는 이제야 평범한 '지성'을 갖추게 되었다. 여러분보다 아직까지 부족할 수는 있으나 적어도 여러분과 동등한 '생각'과 '사고'를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것 같다.
이 글은 내가 '무지성'에서 일반인과 동등한 '지성'의 수준까지 도달한 경험담이지 탁월하고 똑똑해지는 법을 말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의 목표는 일반적인 것을 넘어 내가 꿈꾸고 원하는 분야에 탁월한 사람이 되고 성공하는 것이므로 아직도 한참 부족하고 배울게 많은 수준이지만 앞으로 나는 이 탁월함의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끊임없이 도전하고 배우기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비록 탁월해진다는 건 어나덜 레벨의 다른 영역일 수도 있지만 나는 지난 10년간의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힌트는 얻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몇 가지 주장한 것의 핵심은
첫 번째로 특정 분야에서의 탁월함과 똑똑함은 단순 선천적인 전유물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솔직히 선천적인 부분을 나조차도 전혀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아마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특정 뇌 영역이 조금 더 발달된 상태로 태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 뇌과학에서 밝혀진 신경가소성에서 말한 대로 우리 뇌는 무엇을 경험하고 학습하느냐에 따라 특정 영역이 발달될 수도 있고 퇴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비춰볼 때 우리 뇌는 항상 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무언가 반복적으로 꾸준히 학습하면 그것을 처리하는 뇌 영역이 발달되고 학습능력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한계 짓지도, 탓하지도 말고 생각을 달리하여 자신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언제든지 탁월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라.
두 번째로 새로운 걸 배우는 초반에는 누구나 어렵고 힘들다는 점이다.
우리의 뇌가 새로운 걸 학습할 때 기존에 학습된 정보를 토대로 새로 들어온 정보를 해석하고 학습을 진행한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은 이전에 뇌 속에 학습된 정보도 없으며 익숙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학습 속도와 이해력이 더딜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로운 분야의 지식이 익숙해지고 뇌가 새로운 정보에 대한 신경회로를 만들어낼 때까지 조급해하지 말고 이해가 될 때까지 차분히 학습을 하라는 것이다.
지식의 종류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나는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기간을 3개월로 잡았다.
일단 3개월 동안 이해가 안 되고 너무 어렵더라도 온전히 집중해서 견뎌내 보라. 3개월 후에는 달라질 수도 있다.
세 번째로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말고 자신의 무능력함을 탓하지 말라.
우리 주변에는 열악한 유년기와 청소년기 환경을 보낸 사람들과 철없는 어린 시절 일탈과 방황으로 초/중/고 교육을 거부하며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사회에 진출하고 사람에 치이고 무시와 멸시를 받으며 세상 살기 힘들다는 걸 깨닫고 결국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하지만 변화를 갈망하며 무언갈 도전할 엄두를 못 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평생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아서 배경지식도 없고, 다시 공부하려고 해도 기초적인 영어 단어와 수학 계산식조차 모르고 있을뿐더러 오랜 세월 만들어진 습관과 사고체계 안에 갇혀있을 텐데 보통사람들에겐 쉬운 자격증 시험이라 할지라도 이런 분들에겐 도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 내가 지난 10년간의 경험 토대로 감히 말하고 싶은 한 가지는 이 세상엔 잘난 놈도 못난 놈도 없다는 사실이다. 다만,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기준을 잣대로 자기 스스로를 못난 놈으로 규정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분명 배움이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새로운 걸 배우는 초기에는 보통사람보다 몇 배는 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배움을 멀리한 대가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자신을 한계 짓지 않고 꾸준히 견디고 배워나간다면 어느 순간 그것에 익숙해질 것이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간다면 당신은 남들보다 특정 영역에서는 탁월한 사람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희망을 잃지 말라.
마지막으로 이 말을 끝으로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주장이 담긴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당장 무엇을 배워야 할지 모르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다.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정작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성찰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대학과 전공 그리고 직장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내 생각은 갑자기 이런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건 힘들다고 본다.
내가 추천하는 건 일단 자기 계발서라도 좋으니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읽어보라는 것이다.
책을 통해 나는 사고와 경험의 확장을 경험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다 보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발견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사고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언제든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만약 운이 좋게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 알겠는데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가?
일단 새로운 분야라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초 강의나 책부터 사고 자기 방 책상이나 카페에 가서 앉은 다음 공부를 시작해보라. 지름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당연하다. 일단 3개월 동안은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에만 온전히 집중해보아라.
이것이 당신의 인생에 새로운 변화의 첫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분들에게 몇 가지 양해의 말을 전하고 싶다.
첫 번째로 부족한 이 글을 끝까지 읽어준 것에 정말 감사하다. 물론 글이 쓸데없이 길어서 스크롤을 막 내려서 마지막만 읽은 분들이 많겠지만 어쨌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두 번째로 내가 쓴 이 글의 내용에는 반박의 여지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권위자나 전문가의 의견이 아닌 여러 보통 사람 중 한 명의 의견과 주장일 뿐이라는 점을 이해하길 바란다.
그저 완생으로 거듭나길 희망하는 미생 한 마리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느낀 점과 생각을 필터링 없이 솔직하게 적어 내려 갔다고 생각하고 이해하 달라.
마지막으로 글이 다소 친절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해하 달라.
일단 글이 너무 길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걸 의식에 흐름대로 막 적어 내려가다 보니 글이 상당히 늘어졌고 나는 글을 간단명료하게 줄이는 능력이 없다.
물론 퇴고의 과정을 거치고 노력한다면 글을 더 읽기 편하고 간략하게 줄일 수는 있으나 나는 전문 작가를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위한 목적이 크기 때문에 이런 노력을 들이기가 쉽지 않다.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이걸로 시간을 들이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니 글의 문맥이 이상하거나 맞춤법이 틀리거나 똑같은 내용이 중복되는 등 글을 읽는 내내 아주 거슬리는 부분이 많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