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한가운데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들
누군가의 일상을 대신하여 살아간다는 것.
가장 기본적인 숨 쉬는 것부터, 먹는 것, 씻는 것, 볼일을 보는 것 등
사람이 살아가며 꼭 해야 하는 것부터 하고 싶은 것까지 할 수 있도록
그 사람을 대신하여 챙기고, 돕고, 때로는 완전히 해드리는 것이 '돌봄'이다.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돌봄'이라는 단어와는 달리,
그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은 냉혹한 현실에 갇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게 된다.
돌봄을 시작하고 난 뒤, 아니 2년 전 할머니가 쓰러진 그날부터
나의 시간은 '할머니의 시간'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부재중이 없는 통화목록에 안심을 하며
'우리 할매 밤새 괜찮으셨겠지?, 제발 조금이라도 낫게 해 주세요'
하며 간절히 소망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친구를 만나도
내 머릿속은 온통 할머니로 가득 차 있었다.
정확히 말해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그럴 때마다 매번 최악을 상상했다.
매 순간 나의 온몸은 긴장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 시간들이 쌓여 불안이 하루의 중심이 되었다.
사실 이런 감정이 처음은 아니었다.
9년 전, 아빠가 일산화탄소중독으로 쓰러진 날
그때도 나의 시간은 멈춰버렸었다.
아빠의 원망, 세상의 원망으로 가득 차 한 발을 나아가는 것이 위태로웠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삼촌까지 그때 나의 손을 꼭 붙잡아 주셨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도록 중심을 잡아주셨다.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잘 버티고 살아올 수 있었다.
안정을 찾고 살아가던 어느 날,
든든한 울타리인 외할아버지가 우리의 곁을 떠나고, 외할머니마저 쓰러지게 되셨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돌봄'이 나의 몫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할매, 이번에는 내가 해줄게! 할배도 걱정하지 마'
돌봄이 시작되고 1년이 흘렀을 즈음,
내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추구하는 삶이 무엇이었는지
나의 머릿속에서 꿈의 영역이 사라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머리를 제대로 감지도 않고,
후줄근한 옷을 입고,
염색은 물론 화장을 언제 했는지
병원, 마트 외의 외출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연락 빈도수도 어느샌가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어쩌면 연락을 하고, 답장을 할 에너지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친구들의 위로가 딱히 달갑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나는 '돌봄의 시간'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조금씩 지워 갔다.
'돌봄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2년이라는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짧을 수도 길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그 시간은 매일, 매 순간에 따라 다르게 흘러갔다.
할머니의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은
하루가 일주일처럼 느껴졌고,
외래 진료, 재활 운동, 반복되는 하루들로 채워질 때는
한 달이 하루처럼 지나갔다.
오늘의 날짜가 며칠인지보다
'할머니의 상태'가 우리의 시간을 좌지우지했다.
'돌봄'은 조용히 내 삶을 뒤덮었다.
사촌들과 병원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집으로 모셔온 만큼
할머니의 건강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시작이었다.
"할매 상태가 조금만 안정되면..."
그리고 이어진 부정맥, 욕창, 항생제 부작용, 패혈증, 담석, 담낭염, 어깨골절...
"이번 시기만 지나면..."
공부를 하려고 책을 펴도 집중이 안 됐다.
당연하다는 듯 홈 CCTV를 켜게 되고,
할머니의 소리에 귀가 쫑긋해졌고, 작은 소리에도 뛰어가기 일쑤였다.
'조금만'으로 시작된 하루가
어느새 '내가 없으면 안 되는 하루'가 되어 있었다.
혹여나 열이라도 나면 자책을 하는 하루가 많아졌고,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겠다는 마음에
잠깐 쉬어가는 시간도, 화가 나도 죄책감이 커졌다.
모든 감정 앞에 죄책감이 먼저 붙는 날이 많아질수록
많은 상황에 예민해지고, 더 많이 지고, 참아가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렇게 나의 계획은 늘 뒤로 미뤄졌다.
SNS 속 친구들은 어엿한 직장인으로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보면 '왜 나만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질투와 박탈감이 들 때면 나 자신이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져서 또 죄책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돌봄의 한가운데에 있다.
앞으로도 돌봄은 계속하여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돌봄에 덮여버린 나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
애써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돌봄의 시간'은 무겁고, 힘들다.
할머니의 상태는 나의 하루에 영향을 주고, 내 삶을 통째로 덮으려 한다.
그게 나의 현실이다.
인정을 하고 나니, 조금 숨이 쉬어졌다.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지만,
자책하고, 죄책감에 휩싸여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이렇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봄에 덮여있는 나를 다시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