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는 시간, 돌봄이 되다.
돌봄은 받아들이는 과정부터가 시작이다.
아이의 탄생은
'태어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면
누군가의 아픔은
그 사람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9년 전, 우리 가족은 돌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아빠의 부정적 선택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우리 집의 가장이자, 남편이자, 아빠였던 사람.
친구 같고, 그늘 같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만 같은 듬직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의 부정적 선택,
2주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우리는 아빠의 듬직함을 모두 빼앗겨 버렸다.
방향감각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하고,
어느 곳에 있는지, 며칠인지 등 기억하지 못했다.
인지력이 급격히 떨어지더니
몸의 근육이 빠져갔다.
결국 누워있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듬직한 아빠가
귀여운 아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받아들여야 했다.
사실 믿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는 아빠를
아픈 사람으로 취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저귀를 채우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우리는 기저귀 대신 시간을 체크하고 화장실 가는 것을 택했다.
식사를 도와주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우리는 곁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조금 더 귀찮아지는 것을 택했다.
아빠가 아프다는 사실,
그 부분까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였을까
의사조차 포기했지만 우리는 직접 재활을 하기로 했다.
점점 굳어가는 몸,
결국 누워야 하는 상황까지 갔지만
우리는 아빠가 다시 걸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야윈 아빠를 소파에 앉히고,
동생이 아빠를 엎듯이 일으켜 세우면
엄마와 나는 위험하지 않게 동생의 몸에 아빠를 묶었다.
그리고 우리는 산책을 했다.
아빠의 재활에 아등바등 매달리는 여자 셋의 모습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 하루도 빼지 않고
뜨거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사지를 해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챙겨주시고,
다친 마음이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연고를 바르듯 달래주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아빠가 아프지만
서로를 어루만질 수 있는 것만으로,
함께 숨을 쉬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돌봄의 과정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할머니의의 돌봄 역시
아빠때와 닮은 점이 많았다.
한순간의 일을 받아들이는 과정,
할머니의 아픔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
하지만 할머니의 돌봄은 또 다른 부분을 배우게 해 주었다.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좌절감,
임종 간호과 같은 느낌.
의식도 움직임이 없던 시간 속에서
욕창 예방을 위한 체위변경,
가래가 심하게 끓어 석션을 하는 것,
경관식으로 식사를 하게 하는 것,
소변, 대변 양 체크 등
아빠 때는 없던 새로운 돌봄들이 이어졌다.
그 후 의식이 돌아온 뒤부터는
아빠 때와 다르지 않게
우리는 다시 몸소 부딪히면서 재활을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보다 나았던 점은
방문간호 선생님이 집으로 오셔서
상태를 체크해 주시고,
더 많은 재활방법을 알려주셨다는 것이다.
아빠부터 할머니까지
2년 넘는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
눈을 뜨면 할머니한테 가서 인사하고,
잘 잤는지 체크하고,
기저귀를 갈면서 소변 양 체크했다.
대변이 나와야 할 때 안 나오면 손으로 도움을 주고,
삼시 세끼 식사와 약은 반드시 챙겼다.
요리는 할머니 것과 우리 것은 다르게 하였고,
열심히 일을 마치고 오는 삼촌은
요리나 설거지를 맡았다.
학교 마치거나 방학 때 알바를 마치고 오는 동생은
아빠와 할머니의 양치, 집 청소를 돕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할머니의 소리만 들어도
컨디션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
우리가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그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보고, 들으며 배운 것일 뿐이다.
9년 전 아빠와 우리에게
매일 해 주셨던 일상들을
우리가 할머니에게 매일 했을 뿐이다.
그 시간이 2년 넘게 반복되다 보니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된 것이다.
그 시간들을 지나오며
우리의 몸도, 마음도, 시간도 잃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대신
가족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되었다.
혼자의 보내는 시간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함께하는 시간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