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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끼장미 Jan 15. 2023

코끼리를 쏘았던 날 들

조지오웰 에세이 / [나는 왜 쓰는가]  리뷰

나는 왜 쓰는가

  조지오웰 에세이 


1. 마음을 치고 들어온 구절


31> 남부 버마의 몰멩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다. 살아오면서 남들에게 미움을 받을 만큼 내가 중요해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32> 내가 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도보다 지독하게 혐오했다. 그런 일을 하다 보면 제국의 추악한 짓거리들을 지근거리에서 보게 된다. 악취 지독한 철창에 처박혀 있는 불쌍한 죄수들, 장기 재소자들의 겁먹은 얼굴, 대나무로 매질을 당한 사람들의 터진 엉덩이, 이 모든 게 견딜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난 그럴싸한 내 나름의 관점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나는 아직 어린 데다 부실한 교육을 받았고, 동양에 가 있는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랬듯 내 문제를 철저히 함구한 채 혼자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대영 제국이 저물어 가고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것을 대체해 가는 신생 제국들보다는 영국이 훨씬 낫다는 건 더더욱 몰랐다. 내가 알았던 것이라곤 섬기던 제국에 대한 나의 증오와 도무지 일을 할 수 없게 만들려던 악독하고 자그만 인간들에 대한 나의 분노 사이에 내가 끼어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마음 한편으로 나는 영국의 지배를, 납작 엎드린 민족들의 의지를 영영 억누르는 거역 불가능한 압제라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총검으로 승려들의 배때기를 푹 쑤시는 것보다 이 세상에 더 기쁠 일이 없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회적으로 깨우침을 주는 일이 벌어졌다. 그 자체로는 사소한 사건이었지만, 제국주의의 본질을 이전보다 더 잘 간파할 수 있게 해 준 일이었다. 코끼리 한 마리가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부디 와서 어떻게 좀 해주십사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몰랐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고 싶어 조랑말에 올라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36> 나는 어딘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선 나는 코끼리를 쏠 생각이 없었으며(필요하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총을 빌려오라 했을 뿐이었다) 자기 뒤를 따라오는 군중이 있다는 건 언제나 당혹스러운 일이다. 


37> 나는 이미 길에 멈춰 서 있었다. 나는 코끼리를 보자마자 쏴서는 안된다는 걸 완벽하리만큼 확실히 알았다. 멀쩡한 코끼리를 쏜다는 건 심각한 문제이며 피할 수 있다면 분명히 피해야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멀리서 보니 평화롭게 풀을 뜯는 코끼리는 소보다도 위험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발정기’의 발작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녀석은 위험하지 않게 그저 배회할 것이고, 조련사가 돌아와서 데려가면 그만일 터였다. 더욱이 나는 녀석을 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좀 지켜보며 녀석이 다시 난폭해지지는 않는다는 걸 확인한 뒤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돌아서다 나를 따라온 군중을 흘낏 보고 말았다. 막대한 인파였다....... 모두 코끼리한테 총을 쏠 거시라 확실히 믿고서 제법 흥이 나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마치 마술사의 묘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날 좋아하지 않았지만 마술의 소총을 든 나는 잠시 봐줄 만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내가 결국엔 코끼리를 쏴야 한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사람들이 내가 그러리라 기대하고 있었으니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2000명의 의지가 나를 거역할 수 없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손에 소총을 들고 서 있는 그 순간 나는 백인의 동양 지배가 공허하고 부질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 무장하지 않은 원주민 군중 앞에 총을 들고 서 있는 백인인 나는 겉보기엔 작품의 주연이었지만, 실은 뒤에 있는 노란 얼굴들의 의지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바보 같은 꼭두각시였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백인이 폭군이 되면 폭력을 휘두르고 말고는 자기 마음이지만, 백인 나리라는 상투적 이미지에 들어맞는 가식적인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는 것을 말이다. 언제나 ‘원주민’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안달하고 그래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원주민’이 얘상하는 바대로 행동해야만 하는 게 그의 지배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면을 쓰고 그의 얼굴은 가면에 맞춰져 간다. 그러니 나는 코끼리를 쏴야 했다. 나는 소총 심부름을 시킬 때부터 이미 그럴 것이라 알린 셈이었다. 백인 나리는 백인 나리답게 행동해야 한다. 단호하고 생각이 분명하고, 확실히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것이다.... 나의 모든 생활은 동양에 있는 모든 백인의 삶은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한 기나긴 투쟁이었다.

하지만 난 코끼를 쏘고 싶지 않았다.....

코끼리가 덤벼들고 내가 맞히지 못하면, 나는 스팀롤러 미에 깔린 두꺼비 신세가 될 가능성이 다분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내 목숨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내 뒤에서 주의 깊게 지켜보는 노란 얼굴들만 의식하고 있었다. 그 많은 군중이 날 지켜보고 있는 그 순간, 혼자 있었다면 느꼈을 법한 일반적인 의미의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백인은 ‘원주민’ 앞에서 두려움을 보여선 안되기에 대개 두려움을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때 나한테 둔 유일한 생각은 일이 잘못되면 2000명의 버마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쫓기다 붙들려 짓밟혀서, 비탈 위에 있는 인도인처럼 이를 싱긋 드러낸 송장 신세가 되고 만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웃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터였다. 절대 그럴 순 없었다. 대안이 하나 있었다. 나는 탄약통을 탄창에 밀어 넣고 길에 바로 엎드려 정조준을 하는 쪽을 택했다. 


41> 그 거대한 짐승이 움직일 힘도 죽을힘도 없이 그 자리에 쓰러져 있는 꼴을 지켜보는 것도, 그 목숨을 어서 끊어버릴 수 없는 것도 몹시 불쾌한 노릇이었다. 나는 내 작은 소총을 가져오라고 해서 코끼리의 심장과 목에다 한 발씩 쏘아 넣었다. 아무 효과도 없는 듯했다. 고통스러운 헐떡임은 시계 초침이 움직이듯 꾸준히 이어졌다. 


42> 물론 그 후 코끼리 사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주인은 몹시 화를 냈지만 인도인일 뿐이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나는 법적으로 정당한 행위를 한 것이었다. 미친 코끼리는 주인이 제대로 못 다스릴 경우 미친개처럼 죽어야 했던 것이다. 


43> 나는 내가 코끼리를 쏜 게 순전히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한 짓이었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 조지 오웰의 29개 산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에세이 한편 고르고 이유를 발표하기 

내가 고른 에세이 : 코끼리를 쏘다 


2. 부제 : 코끼리를 쏘았던 날들

-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해, 순전히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조지 오웰은 군더더기가 없다. 글도 그렇지만 삶은 더하다. 그래서 그의 글과 삶이 부럽다. 왜 쓰는지가 명확하다. 세상을 읽어내는 날카로운 눈빛과 자신의 체험이 버무려져 살아있는 글이 되고 삶이 된다. 그런 삶과 글을 꿈꾸는 내겐 늘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런 조지 오웰의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지 못한 지난날’의 고백을 읽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순전히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려 코끼리를 쏘았던 그의 삶에 내 삶을 비추어 보았다. 내가 쏘아버린 무수히 많은 코끼리들이 떠올라 한참을 머물러 있게 했다. 


삶에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늘 머뭇거렸다. 사랑받기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세상이 정해준 답에 비추었다. 인정의 욕구에 목말라 나를 죽이며 살아왔던 날들이 제법 길게 이어졌다. 


착한 딸, 어진 아내, 협조적 동료, 좋은 엄마로 살아가려 노력할수록 세상은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세상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는 나를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코끼리를 쏘는 것을 포기했다. 

코끼리 쏘기를 포기하기 위해,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동안 귀 기울이지 못했던 나 자신을 살폈고,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를 낯설게 바라보며 다시 이해해 나가야 했다. 


내가 가장 참기 힘든 지점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가장 좋아하는지,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두려움을 유발하는 근원에는 무엇이 있는지...... 

나 자신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

요즘 내 삶이 그랬다.


4년 만의 복직,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복직 후 처음 만난 아이들,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되지 않는 상황 앞에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꿈꾸던 선생으로 얼마나 더 오래 이곳에 머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이듬해 만난 새로운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괴로운 날들이 지속되었을 것이다. 감정 노동의 시간이 길어지면, 퇴근 후의 일상조차 버거웠다. 



새 학기 업무 희망원을 제출할 때, 고민이 많았다. 학교에서는 ‘좋은 동료’로서 '그 직책'을 계속해주길 원했다. 인정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그 기대가 싫지 않았다. 그때 이 에세이를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내가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기보다, 세상의 요구에 더 마음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2020년, 나는 새로운 업무를 희망원에 적었다. 그리고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새로운 선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늘 정답을 골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 믿는다. 때론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려 한다.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해,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려 했던 무수히 많은 선택들을 흘려보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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