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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un 24. 2024

<책> 교양독서_김수현

삶이 버거운 날엔 교양독서를. 

어릴 적, 나는 꽤나 밝은 아이였다. 맨발로 달리기를 하고, 해가 질 때까지 숨바꼭질을 하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아이. 누구와도 잘 어울려서 주변엔 늘 친구들이 많았다. 매일이 즐거웠다. 그때 나의 세상은 어느 드라마에 나왔던 대사처럼 ‘봄날의 햇살’ 같았다. 삶이 계속 반짝였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봄은 너무 짧았고, 한 번 거둬진 햇살은 삶에서 종적을 감춰버렸다. 반짝이던 어린 시절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뒤론 사는 게 고역이었다. 딛는 곳마다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기댈 곳도, 잡을 것도 없어 오래도록 혼자 발버둥을 쳐댔다. 사방이 캄캄했다. 애초에 빛 따윈 없었던 것처럼 어두웠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삶에 대한 기대나 희망 따위를 버리는 것이었다. 감히 꿈꾸지 않는 것. 삶의 기본 값을 완전히 낮추는 것. 그렇게 살면 될 거라 생각했다. ‘끝’과 ‘실패’라는 말로 미리 결론을 내고 삶을 차단하면 사는 게 덜 괴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정말, 그렇게 살았다. 해가 지는 게 아까워 발을 동동 굴렀던 봄날의 나는, 어느새 아침이 오지 않길, 눈을 뜨면 내가 사라지길 바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차 없이 나를 버려둔 결과였다. 시간이 흘러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그때의 구겨진 삶과 망가진 마음은 커다랗고 깊은 우울의 그림자가 되어 나를 쫓았다.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삶이 서러워서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이건 아니잖아, 이렇게 사는 게 정말 맞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다 내린 결론이 ‘책’이었다. 어린아이 넷을 돌보면서 스스로를 끌어안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난, 독서가 인생의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적어도 수고스러운 삶에 조그만 힌트가 되어준다바닥을 치기 전에땅굴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기 직전에 생의 의지를 끌어올려준다.”는 작가의 말에 한참이나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 그건 정말 맞는 말이야 하면서. 


한 권의 책을 덮을 때마다 받았던 위로와 용기를 얘기하자면 끝이 있을까 싶다. 작가의 말처럼 끝까지 읽지 못해도설령 읽고도 그 뜻을 끝내 깨닫지 못해도 책은 늘 삶을 견디게 해 줄 반들반들한 것들을 내게 주었다. - 그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것은 한 번 도 삶을 비켜 선 적이 없었다. 빨리 일어서라고 채근하거나 닦달하지도 않았다. 너는 왜 그것밖에 안 돼 느냐고 질책하지 않는다. 그저 동그랗고 반들반들한 면으로 나를 쓰다듬고 끌어안고 헤아려준다. 무너지더라도 삶 밖으로 밀려나지 않게, 너무 멀리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책을 읽다 저도 모르게 책을 끌어안아봤던 사람은 알 거다. 어떤 책은 그렇게 사람을 살리기도 한 다는 걸. 물론 삶이 늘 그렇게 극적인 것은 아니라서;; 나도 글쓴이처럼 어느 날엔 실패하고 망가진 인생에 대한 조언을 샅샅이 뒤지고(p87) 나서야 겨우 하루를 버티는 날도 있다. 실은 대부분이 그럴 거다. 삶은 감동과 전율보다 남몰래 내뱉는 욕지기나, 캄캄한 저녁 이불속에서 혼자 내쉬는 한숨 따위에 더 닿아 있으니까.      


작가는 말한다. 나의 목표는 닳아 없어지지 않는 것어떤 형태로든 끝까지 가는 것(p67)”이라고. 나도 그렇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보잘것없는 삶이라도 끝까지 살아내고 싶어서 읽는다. 구겨지고 망가진 삶이라고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서, 우울과 불안을 친구 삼아 살아가지만 그런 나를 사랑하기 위해 읽는다. 결국엔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p6) 읽는다.      


삶이 힘들 다면, 수다스럽지 않은 조용한 위로가 필요하다면, 작가가 건네는 이야기를 읽어봐도 좋겠다. 가장 편안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읽는 다면, 더 좋을지도.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곁들인 책 한 권이 때론 우리를, 내가 몰랐던 세계로 데려다 놓기도 하는 법이니까.                



아직도 인간이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말을 잘 믿지 못한다. 하지만 믿고 싶다는 마음이 불빛처럼 멀리서 희미하게 반짝인다. 그 빛을 붙잡으려 무슨 문장이든 쓴다. 그 문장들은 확실히 내 안에서 끄집어낸 것이며 실존하는 어떤 것이다. 없었던 곳에 생겨난 문장은 그 의미가 모순적이더라도 지금의 내가 깨닫지 못하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 표면적 의미 아래 현재의 내가 캐치하지 못한 이면적 의미가 번뜩이고 있다. 지금의 내가 그 의미를 찾지 못하더라도 내일의 내가, 혹은 먼 훗날의 내가, 나라는 사람이 정말 썼다고 믿을 수조차 없는 관거의 문장에서 숨겨진 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누가 나에게 왜 사는지 몯는다면 지금의 나는 이렇게 겨우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모순되고 부조리한 문장을 널과 돛으로 삼아 흘러가는 것이 내 삶의 이유라고. p105~106

 타자소리 시끄럽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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