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은 마흔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나이부터
그 나이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고등학교 열일곱 살부터 시작되었다.
하고 싶은 게 생겨서
음악을 선택하고
3년 동안 정기적인 연주회와 각종 대회에 초청받아 연주를 하였다.
음대를 가고 싶었으나, 비용적인 문제보다는
직업으로 삼기에는
공연 후 찾아오는 적막감과 허탈감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재수를 선택하고 디자인과를 선택하였다.
NO1 기획사에 입사하는 것이 목표였다.
부족함을 느끼고 편입을 선택
편입을 준비하는 동안 편집디자이너, 주얼리 장사도 해보았다.
장사는 1년간 액세서리 가게에서 눈팅을 하면서 할 자신이 생겨 시작했고
젊은 열기에 동업한 친구랑 밤낮으로 일하면서 1년간의 학비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때 예전 학교 선배의 어머님이 신내림을 받으신 분이 계셨다. 그분이 나를 보고
장사를 하면 잘할 팔자라고 했다.
팔자라는 소리에 반항심이 생겼을까? 학업과 병행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과감히 접었다.
그 후에는 연극을 시작하면서 문화, 예술의 길로 다시 발을 돌리게 되었다.
물론 대학원은 교육대학원을 다니기는 했지만 말이다.
대학원을 다니면서는 나에는 조교로 밤에는 원생으로 주경야독하였다.
그 당시 job을 포함해하는 일이 5개 정도 되었다.
새벽에 수영을 하면서 저녁에는 재즈댄스를 일주일에 3번은 과외를 하면서
모든 일을 나름 완벽하게 해 나가면서 미친 듯이 살았다.
그때 제대로 된 직장을 다녀야 했는데 말이다. 박사를 시작하면서 다시 학교에 머물렀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낮에는 조교와 수업을 듣고 밤에는 기숙사 사감보를 하면서
학교 교정에 뼈를 묻을 작정으로 말이다.
물론 나중에는 강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욕심이 있기도 했다.
방학기간에는 재미동포 청소년들의 여름 문화캠프 기획 팀장으로 활동하면서
그나마 일탈을 꿈꿨다.
언제나 생각은 짧게 행동은 바로 움직이는 나는 세상이 넓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까지 근 8년을 머물면서 나름의 커리어를 쌓았던 곳을 가볍게 정리하고 떠났다.
아 그러고 보니 학기 중에 연구소에서 잠시 편집간사로 일하기도 했구나!!
그렇게 4개월 동안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
코이카로 우즈베키스탄으로 2년간 교육봉사를 다녀왔다.
언제나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나는
돌아온 후 1년간 방황을 하였고, 그 방황은 나를 짧은 직업은 가질 수 있었으나,
길게 오랫동안 일 할 수 있는 곳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이력서와 자소서를 작성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잠시 12월은 떠나려고 한다.
만료된 여권을 갱신시키고 가까운 곳으로 떠나
잡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걷고 걸으면서 다녀보기로 했다.
여권을 들고 여행을 떠난지도 오래됐구나....
서울로-강원도로-부천으로 역마살 생활을 마감하면서
어쨌든 잘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