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성대
작품 안에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고 싶지만, 그게 작품을 보는 분들에게 온전히 전달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뭉뚱그려진 감정과 현상에 대한 고찰을 이미지로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작품을 만든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글로써 풀어내야 한다.
‘일월제주도’를 제작한 의도를 조심스럽게 풀어내고자 한다.
난 제주도를 사랑한다.
나의 제주도 삶이, 제주도와 제주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가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작품을 구상하였다.
조선시대 왕의 등 뒤를 묵묵히 지키던 일월오봉도의 틀을 빌려왔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던 그림은, 이제 내가 발 딛고 사는 제주 도민들의 평온한 삶을 기원하는 풍경으로 자리를 바꾼다.
이 작품을 통해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제주의 '태평성대'다. 내가 생각하는 태평성대는 높은 곳에서의 호령이 아니다. 현명하고 덕 있는 이가 가장 낮은 곳으로 시선을 향하고, 사람들의 팍팍한 일상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자금의 흐름이 어느 한 곳으로만 고이지 않고, 누군가만 홀로 풍요롭지 않으며, 모두가 먹고 자고 생활하는 데 근심이 없는 평범한 상태. 부의 재분배 앞에서 기꺼이 선의를 내어놓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풍경이다.
작품 가운데에 '태평성대(太平聖代)'라는 네 글자를 수놓았다. 하지만 작품을 얼핏 보아서는 이 글자들이 한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인쇄된 바탕의 색과 완전히 동일한 색의 실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누군가를 위하는 선의와 올바른 마음은 겉으로 소리 높여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묵묵한 행동과 삶의 궤적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이다. 빛의 각도에 따라, 혹은 작품에 한 걸음 더 다가섰을 때만 은은하게 결을 드러내는 이 글자들은 그 보이지 않는 선의들을 닮아 있다.
자수를 놓을 때는 한자의 획이 나아가는 방향과 실의 결을 하나로 맞추었다. 붓의 흐름을 바늘로 정직하게 따라가는 시간이었다. 요란하게 빛나지 않아도 제자리에서 조용히 세상을 지탱하는 마음들, 그 마음들이 모여 온전한 태평성대를 이루기를 바라며 한 땀 한 땀 결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