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자화상

by 순정공방

나는 세상과 연결되기를 갈망하는 하나의 외로운 섬이었다.

내가 나로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자수를 삼았다. 자수는 나에게 복잡다단한 내면 깊은 곳을 탐험하게 하며 나의 감정을 헤아리고 정화시킨다. 이로써 순화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마주하게 하였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 물감이 남듯, 바늘이 지나간 자리에 실의 질감과 색채가 층층이 쌓여 고유한 세계를 구축한다. 나는 이 물리적인 행위를 통해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의 결을 만지고, 시각적인 언어로 치환한다.

순수미술을 향한 뒤늦은 열망은 현실적인 이해관계와 충돌하며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술을 향한 갈증을 억누르며 걸어온 우회로들은 역설적으로 나에게 더 넓은 시야와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다양한 Input은 내면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수많은 삶의 변곡점마다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자수’였다.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 시간은 나를 단단히 붙들어 매는 닻과 같았다. 그렇게 버텨온 세월이 어느덧 15년이다. 어지러웠던 마음을 고요하게 잠재우고, 세상을 다시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 힘. 그것이 내가 15년간 바늘을 놓지 못한 이유이자, 내 예술의 원동력이다.


작품 속 해녀는 내 내면의 자화상이자 자수로 버텨온 15년 세월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해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힘겹게 생업을 이어간다. 생계를 위한 물질이지만 전복을 향한 욕심은 죽음이 된다.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나의 마음은 현실의 벽 앞에서 핍박받았다. 해녀가 욕심을 조절하며 물질하는 행위는 예술에 대한 욕망을 절제하며 생존해야 했던 나의 지난날과 닮아있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온전히 이해받지 못했을 때, 나는 자수를 통해 숨을 쉬었다.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도 유유자적 물질을 하는 해녀처럼, 자수를 하는 순간만큼은 나의 내면도 호수처럼 고요해진다. 작품 속 비현실적인 바다에서 숨을 참고도 자유로워 보이는 해녀는 억압된 현실을 넘어 자수 안에서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얻은 나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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