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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쑤니 May 25. 2023

깐깐한 손님

언젠간 카페


에스프레소에 스팀밀크로 하트를 그린 카페라떼 한잔이 지친 하루에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카페라는 공간은 사람들을 불러내는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선지 나는 혼자서도 동네 카페에 간다.


부산에 사는 H는 나를 만나러 가끔 우리 동네에 온다. 점심을 같이 먹고, 차 한잔 마시면 이내 돌아갈 시간이 된다. H가 오는 날이면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를 가볼 수 있어서 좋다. 둘 다 예쁘고 새로운 공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보물섬을 찾아 나서듯   검색해서 찾아간다. 신상 카페에 가는 날에는 기대를 풀로 장착하고 간다. 그랬다가 큰 실망을 했던 적이 있긴 해도 대부분이 괜찮은 곳이 많았다. 주인장의 심사숙고가 공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처음 방문하는 고객으로서의 꼼꼼한 평가는 입구부터 시작된다. 나름 체크리스트가 있다. 지리적인 위치부터,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맡을 수 있는 냄새, 테이블, 의자의 스타일과 배치, 창의 방향과 크기, 실내의 온도, 습도, 판매메뉴, 뭐니 뭐니해도 커피맛(카페란 모름지기 커피 맛은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함)…커피 한 잔 값을 지불하고 여러 가지를 평가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우리는 맘에 드는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기 위해 직원에게 간다. 메뉴판을 빠르게 스캔한 뒤 그 집의 시그니쳐 음료와 카페라떼를 시킨다. 베이커리가 있는 경우 빵도 같이 주문한다. 주문한 메뉴를 기다리는 동안 카페 내부를 쭉 훑으며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이야기해본다. 커피 맛을 보기도 전에 이미 그 카페의 분위기 파악은 끝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에 한 번 더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괜찮은 카페로 인정받게 된다.

미슐랭 평가단이라도 된 듯 진지하다.


어느덧 쉰에 가까운 나이가 되고 보니, 돈을 버는 일에는 즐겁고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없음을 안다. 일을 다시 해야 한다면 그게 커피와 관련된 일이라면 기꺼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전해 보고 싶다는 의지와 욕망이 있다.

 남편의 정년이 가까워질수록 조바심이 난다. 결혼을 계기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있던 나는 무언가 준비해야 할 때가 되어간다는 것쯤은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 그렇지만 모른 척하며 제법 시간을 흘려 보냈다.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나이는 훨씬 지난 것 같고, 돌아갈 수 있는 책상이 있는 휴직자도 아니어서 창업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겼다가 소리소문없이 없어지는 가게들이 많아 겁이 나지만, 나에게도 카페창업은 머지않은 미래에 일어날 일인 것이 틀림없다.


몇 해 전 여름,
유명 강사의 강연에 간 적이 있다.
강사의 귀한 한마디를 듣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호텔연회장은 콩나물시루를 연상케
했다.
강의 중간에 갑자기 강사는 일 년 내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계획 한 가지를 지금 옆좌석의 사람에게 말하라는 미션을 주었다.
갑작스런 주문에 사람들은 우물쭈물하였다.

나는 동행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혼자 온 사람은 어떡하란 말인가! 오늘 처음 본 낯선 이에게 본인의 계획을 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색한 것도 잠시,
옆 사람에게 말하기가 힘든 것은 차치하고도 갑작스레 계획을 생각해 내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
평소 계획형 인간이 아닌지라 이런 주문은 난처하기 짝이 없다.
나아가 이런 상황에 품고 있던 멋진 계획 하나 없는 것 또한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뭐든 하라면 하는 척이라도 하는 사람이어서 머릿속 깊은 골짜기에서 어렵사리 한 개를 끄집어내었다.
까먹기라도 할세라 얼른 옆의 지인에게 말했다.
“저는 올해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 것입니다.”
유명 강사의 강의를 들으러 간 호텔연회장 한가운데서,
생뚱맞게 바리스타를 외쳤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날 호텔연회장에서 외쳤던 계획을 곧장 실천에 옮겼다. 잠시 잊고 있었을 뿐 그 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분야였다. 남편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며 커피 공부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국비가 지원되는 프로그램을 찾아보았다. 아무래도 나는 공짜가 맘이 편하고 좋다. 며칠 뒤, 출근하던 남편의 눈에 커피 교육학원 광고가 띄었고 그 내용을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교육비가 상당히 비싸서 여러 번 망설였다. 못 이긴 척 남편의 부추김에 내 계획과는 다르게 거금을 들여 커피의 세계로 입문했다. 커피의 기원을 공부하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직접 조작하며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만드는 법을 익힌 뒤 바리스타 자격증 필기, 실기시험에 거뜬히 합격했다. 일 년 내로 하려던 계획을 단 몇 개월 만에 이루게 되었다.


나는 배우기 위해 큰 금액을 투자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다. 남편의 다른 의도는 없었을까도 생각해 보게 된다. 가볍게 공짜로 배울 때가 맘이 편했다. 남편의 투자 이후 나도 모를 불편함이 찾아왔다. 애써 따낸 자격증으로 무엇이라도 바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우리 동네에는 하천을 따라 작은 카페들이 나란히 붙어있는 카페거리가 유명하다. 스페셜티 원두를 쓰는 곳들이라 커피 맛은 평균 이상이다. 인테리어가 멋진 것은 아니지만 편안하게 마음이 끌리는 곳이 있다. 그게 그곳의 특별함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만은 아니다. 조용한 가운데 그라인더에서 커피콩이 갈리는 소리, 우유 거품, 스팀 치는 소리, 포터 필터를 헤드에 꽂는 소리, 커피 추출되는 소리를 무심하게 들어본다. 드르륵 드르륵, 치이이 치이이, 털컥, 웅--.

저기 커피머신 앞에서 커피를 뽑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상상을 해보는 것도 즐겁다.

마치 예행 연습을 하러 가는 것일 수도 있다.

카푸치노나 카페라떼를 주문해서 심사위원마냥 거품의 한쪽을 스푼으로 살짝 걷어 올려본다(실제로 바리스타 실기시험에서 심사하는 부분).

메뉴에 맞는 거품이 올라갔는지를 확인해보는 행동이다. 정말 까다로운 손님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진상 손님은 절대 아니다. 드러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몰래, 슬쩍, 쥐도 새도 모르게…

커피를 좀 배운자의 허세다. 하지만 뭐 어떤가! 호호호.


최근 몇 년 동안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건물도 어마어마하고 보통 통창구조의 3층 이상 되는 건물들이라 엄청난 건축비가 들었겠구나 한눈에 알 수 있다. 나에겐 트렌디한 카페를 지을 수 있는 자금도 없을뿐더러 콩알만 한 간을 달고 있는 사람이어서 창업에 맞는 타입은 아니다. 그래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다. 수없이 가봤던 카페를 통해 어떤 공간들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카페는 기존의 것과 완전 달라야 하겠다. 고급화와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 황새 따라가다 뱁새는 가랑이가 찢어질 수 있어서 무리한 투자는 할 수도 없다.     

카페라떼와 바질소금빵. photo by 쑤니
맛보단 비쥬얼과 건강음료 photo by 쑤니
에그샌드위치와 모닝커피 photo by 쑤니

장사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가 사업구상을 시작해 본다. 시내보다는 산이 있고, 계곡이 있거나 조그마한 개울이라도 흐르면 좋겠다. 자연적인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 편의점 접이식 테이블에 파라솔, 불편해 보이지만 정작 앉아보면 적당히 편안한 플라스틱 의자, 주방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작은 시골집 아니면 컨테이너 부스. 구체적으로 계곡 조망의 넓은 잔디밭에 접었다 펼 수 있는 편의점 테이블과 의자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마실 수 있는 맛있는 커피와 시그니쳐 메뉴가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날씨와 예쁜 자연을 배경으로 사진도 많이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영업이 어려운 날이 자주 있을 것이다. 비 내리고 바람 부는 날,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는 폭염의 날씨, 벌레가 모여들어 잔치를 벌이는 날 등등. 한 번에 완벽한 공간이 아니라, 하나둘씩 개선 시키면서 운영해 갈 수 있는 공간이면 되지 않을까? 이 계획은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치부해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아직까진 투자를 최소화하며 만들어 보는 가상카페에 불과하다. 이렇게 부족한 공간에 오는 손님이 있을까 의심스럽긴 하다. 그래도 자본금이 많지 않아 근사하고 멋진 시설은 당분간 어렵다. 그럼에도 찾아오면 즐거운 무언가가 있는 그런 공간이었음 좋겠다.     


손님이 너무 없어서 마음이 힘들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날이 있을테지만, 너무 많은 손님 때문에 몸이 힘든 날도 기다려 보고 싶다.

이 상상뿐인 카페가 현실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발 빠른 움직임이 필요해 보인다. 남의 카페의 손님이 아닌, 내 카페의 바리스타로 출근할 날이 머지않았다.

그때까지는 비싼 커피도 마다하지 않고 마실 수 있는 깐깐한 고객으로 살고 있을 테다.     

고코로 카페에서 photo by 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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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초판을 찍자’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독립출판물 삽질에세이 <뭐가 될 줄 알고>  (쑤니x와이주 공동저) 를 만들었다.

그 쳅터 속에 들어갔던 글을 브런치로 옮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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