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자의 보온 도시락을
바야흐로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제 낮엔 한 여름을 방불케 했지만 곧 추워질 게다. 수능한파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 집엔 고3아들이 있다. 정시로 대학 간다는 아들이 수시 원서 접수 마지막 날 논술전형 2개를 썼다.
안 쓴다던 원서를 썼을 때만 해도 썼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았지만, 기왕 썼으니 수능최저등급도 맞췄으면 좋겠고 논술시험도 잘 쳐서 수시합격으로 대학입학시험을 빨리 끝내고 싶은 엄마의 욕심은 점차 커져갔다. 아니 좋은 그림을 그려보았다.
이 주일도 남지 않자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게 뭘까하다가 수능 치는 날 아들이 먹을 도시락통과 익숙해지게 연습?이라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내일 아침부터 사용할 도시락을 서랍장에서 꺼내 씻어 놓았다.
잠시 뒤 저녁뉴스를 보며 매일매일 숙제하 듯하고 있는 그림일기를 그리고 있는데 거제도 친구에게서 아들수능 선물이 도착했고 전화도 걸려왔다.
수능 전에 미리미리 선물할 수 있게 카카오에서 판매를 시작했는지 대부분 똑같은 선물이었다. (전 날에도 똑같은 선물을 받았음)
한 두푼하는것도 아닌데 사이즈도 꽤 큰 놈이어서 작은 걸로 성의만 받으면 안 되냐는 말도 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도시락은 어떻게 쌀 거냐? 국물은 소고기뭇국으로 할까 생각 중이란 말도, 죽집에서 사서 싸준다는 주위 사람 얘기도 하게 되었다.
내일 아침부터 도시락에 담아 줄거란 말을 하니 그 동네 여섯 명 모임에서 누군가의 자녀가 작년에 수능을 쳤는데 그 앞해의 수험생, 정확히 말해 합격자의 도시락을 빌려 썼다는 것이다.
물론 작년 수험생도 합격했다고 했다.
내년에 고3이 되는 아들을 둔 친구도 그 도시락을 빌려 쓸 것이라고 했다.
아~~ 도시락도 돌려 쓸 수 있구나~~~
옛날에 아들이 최고라 여기던 시절, 아들을 못 낳아 소박맞고 그랬던 시절엔 아들 낳은 아무개 집 안주인 속곳을 얻어다 입고 아들 낳기를 염원하고 그랬다 카더만 그럴 수 있겠네~~~~ 한 번만 쓰고 말 집이라면 경제적인 면에서도 괜찮은 것 같았다. 빌려 쓸 수 있는 멤버가 있다는 것도 부럽네~
하마터면 ‘그 도시락 나도 좀 빌려줘’ 할 뻔.
우리 집 도시락도 누군가에게 ’합격자의 도시락‘으로 빌려지길 ….소망한다.
난 이 날을 대비하여 이 년 전에 미리 구입해 놨는데 … 어차피 사야 한다면 미리 사놓자 하고 물욕을 여기에도 적용시켰다. 어쨌든 코로나시절 주말에 가끔 회사일 하러 가는 남편 도시락 싸주며 잘~ 사용했다.
계획 다음날부터 있는 반찬 몇 가지로 아침을 도시락에 담아 주기 시작했다.
아직 메뉴까지 정성을 다해 준비하지는 못하고 단지 용기(用器)로서의 도시락만 용기(勇氣) 있게 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