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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쑤니 Nov 06. 2023

김치 없인 못 살아

세상 어떠한 음식보다 김치


 무인도에 딱 한 가지만 가져갈 수 있다면 나는 김치를 가져가겠다. 김치 먹으며 밥을 찾긴 하겠지만….


 초등학교 6학년 말에 하동에서 진주로 전학을 갔다. 집은 그대로 하동인데 나만 떠나와 삼촌 댁에서 3개월, 고모 댁에서 1년 몇 개월을 살게 되었다. 겨우 13살밖에 안 된 나이여서 가족이 무척 보고 싶었다. 중1, 토요일마다 학교 오전수업이 끝나면 한 시간 반 시외버스를 타고 하동집으로 갔다. 그중 삼십 분가량은 비포장도로였다. 매끈하지 않은 길 탓에 버스는 통통거리고 내 뱃속도 덩달아 울렁거린다. 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도로 위를 달려 우리 동네에 나를 데려다준다. 내리자마자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간다. 집에 누가 있건 없건 상관없다. 부엌문을 밀고 들어간 뒤 내가 엄마보다 먼저 찾는 것은 김치이다. 우리 집 텃밭에서 솎아 담근 열무김치 그릇을 꺼낸다. 젓가락 쓸 시간도 줄이며 손가락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김치를 한입 가득 채워 넣는다. 우적우적 씹은 김치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후에야 흐트러져있던 장기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하동 간 진주를 일 년 이상 왔다 갔다 했지만, 시외버스 특유의 쾌쾌묵은 냄새와 멀미는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었던 나이였다. 한 시간 반 동안의 메스꺼움을 날려버리기 위한 가장 빠른 해결법이었다. 겨우 속이 진정되고 나면 아무 일 없었던 듯 부엌문을 열고 나오며 엄마를 찾았다.


 거제도에서 결혼생활을 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혼자서 점심을 먹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며 퇴사한 직장생활의 피곤함을 잊어갈 때쯤 첫 아이가 찾아왔다. 못 먹거나 먹은 것을 그대로 토해내는 유별난 입덧은 없었다. 계란 특유의 비린내와 밥 짓는 냄새가 싫었던 적이 있긴 했다. 평소보다 더 당기며 먹고 싶은 것들도 있었다. 과일이랑 김치, 그중 가장 생각나는 음식은 겉절이김치였다. 원래부터 김치는 좋아했지만, 엄마가 만들어주는 여름 김치는 밥을 몇 공기는 비울 수 있는 김치였다. 여름 배추를 칼로 대충 길쭉하게 썰어 소금에 살짝 절인 후 고춧가루 대신 홍고추를 갈아 넣고, 부추를 넣어 담그는 겉절이 같은 김치, 슴슴한 것이 익어도 개운하게 맛있는 여름날의 배추김치. 엄마가 된다고 하니 엄마의 음식이 더욱 생각난 것일 수도 있다.

 주말이면 친정에 들러 엄마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었다. 한번은 엄마한테 생 깻잎 김치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반찬가게에 가서 사다 주셨다. 엄마는 당신이 직접 만들어주지 못하고 사서 주어 미안하다 했다. 엄마는 직장을 다녔고, 집안의 큰며느리이며, 까다로운 시어머니도 모시고 살았다. 그런 엄마에게 먹고 싶다고 말한 내 생각이 짧았다. 그냥 내가 사 먹었으면 되었을 것을 괜히 엄마 맘을 불편하게 하여 미안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김치는 담가 먹는 것이지 사 먹는 건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 이후로 엄마가 나를 위해 김치를 담그게 하지는 않았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내 손으로 만들자 다짐했다.

 요즘 김치찌개를 끓일라치면 김치에 통조림 참치나 돼지고기라도 넣어야 먹을 만한 김치찌개가 된다. 어렸을 땐 김치 외에는 들어간 것이 없는 김치찌개를 자주 먹었다. 오후 서너 시경, 놀다 보면 배가 출출해진다. 부엌에 들어가 두리번거리다가 부뚜막에 올려져 있는 냄비 뚜껑을 열어보고 반갑게 식은 김치찌개를 만난다. 엄마는 자작하게 국물 없는 찌개를 한 냄비 푹 끓여 놓았다. 질긴 김치가 부드러워져 있다. 밥 위에 한 국자 퍼서 올린 뒤 차가운 찌개와 밥을 비비듯 함께 퍼먹는다. 데우지 않고 차갑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게 그 당시 우리 엄마 스타일의 김치찌개였다.


 결혼을 하고 내가 직접 음식을 하게 되었을 때 그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어린 시절에 먹었던, 차갑게 식어 있었던, 푹 삶은 김치 같기만 했던 김치찌개가….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그때 먹던 김치찌개는 어떻게 맛을 낸 것인가 물었고 엄마는 오래되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슨 비법이라도 있을 줄 알고 기대했었는데 순간 실망했다. 추측해 보자면 김치찌개의 비밀은 ‘멸치 다시다’ 아니면 ‘쇠고기 다시다’ 일 것 같다. TV 드라마 전원일기(mbc방송국 농촌 드라마 제목)속 시어머니 역할 김혜자 배우의 ‘그래 이 맛이야!’ 광고가 하루에도 여러 번 나오던 시절이다. 광고를 본 사람이라면 마치 음식에 빼놓지 않고 챙겨 넣어야만 하는 재료로 각인되었던 시절이었다. “에이 그거였구나~!” 추리소설의 실마리를 싱겁게 찾아낸 듯 억지 한숨이 새어 나온다. 김치냉장고가 없던 시절 시어 빠진 묵은김치를 살려내었던 마법의 가루, 그 조미료를 넣어 끓인 김치찌개가 내 추억의 음식이 될 줄이야.


 바쁜 친정엄마와 시어머님은 계절별로 김치를 담가 주시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내가 좋아하고 손이 많이 가는 김장김치만은 두 분의 정성으로 가져올 수 있으니 나는 복 많은 사람이다.


 김장김치가 넉넉히 있는데도 가끔은 내 맘대로 김치를 조금씩 담가본다. 봄이 되면 새로 나는 푸성귀로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김치맛이 아주 뛰어나게 좋은 것도 아닌데 계속 만든다. 생강이 없으면 없는 대로 찹쌀풀도 건너뛰고 내 김치의 매력은 약간 부족함이라 하겠다. 초반에는 맛이 복불복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경험치가 쌓여 여러 김치에 도전하기도 했다. 맛이 없었던 적도 몇 번 있긴 했지만, 익으면 어느 정도 맛이 상승하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과한 기대와 부담만 빼면 결과물은 항상 성공했다. 직접 경험한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점이 있다. 맛있게 담가진 김치를 시작으로 재료가 풍부한 계절이라는 가속도까지 붙게 되면 열무, 깍두기, 파김치, 깻잎 김치, 갓김치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고 여러 종류의 김치를 만들게 되는 점이다. 마치 김치만 먹고 사는 사람이 된 것처럼.


 나는 김치 담가 먹는 사람이지만 사 먹는 김치 또한 좋아한다. 초여름쯤 되면 김장김치가 시어빠지거나 동이 난다. 그럴 때 홈쇼핑이나 마트에서 맛있는 김치를 찾아내어 밥상에 올린다. 내가 사는 경상도의 김치와는 다른, 시원하고 깔끔한 맛의 서울식 김치로 구입하곤 한다. 내가 담그는 것보다 양은 적고 가격은 비싼 것이 아쉬운 점이다. 마트에 가면 매번 김치 매대 앞을 서성이고, 맘에 드는 김치를 사기라도 한 날에는 이 김치를 살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브리핑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할인해서, A마트보다 저렴해서, 김치가 똑 떨어져서, 생김치 먹고 싶대서, 이유도 참 여러 가지다. 김치를 구매할 땐 먼저 나를 설득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집에서 김치를 많이 먹는 사람은 나다. 해남의 배추밭 몇 개는 내가 없앴을 것 같다. 가족 누구도 나에게 김치를 담가 달라고 요구한 이도 없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다행히 김치를 싫어하는 가족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김치를 담그고, 사 오는 것이다. 내가 좋아서 담갔던 것을 마치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담근 척하였다. 김치를 담그는 것은 나를 위한 것임을 고백한다. 오늘도 나는 1,500원짜리 무 두 개로 깍두기를 담근다.          




2022년 삽질에세이 <뭐가 될 줄 알고> 에 수록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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