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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쑤니 Feb 08. 2024

저, 공짜 좋아해요

저, 공짜 좋아해요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돈 안 들이고 공으로 생기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먹는다는 말로, 공짜라면 몸에 독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무조건 좋아하는 태도를 비꼬는 말이다. 양잿물이 독극물인 걸 아는데 공짜라고 먹는 바보는 없지 않겠나! 나 역시 공짜라고 아무거나 먹지는 않는다. 공짜 교육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공짜라도 내 몸에 득이 되는 것만 현명하게 고를 줄 아는 편식하는 사람이다.      

 처음으로 선택했던 무료교육은 예쁜 글씨 POP였다. POP에 관심이 있어 알아보던 중 때맞춰 나의 눈에 띈 것이 신기했다. 십삼 년 전이었는데 인터넷상도 아닌 오프라인에서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연결되었던 것인지! 물감과 붓 몇 가지를 제외하고 교육비는 무료였다. 주민자치센터에서 지역주민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었다. 짧은 기간 배운 실력이지만 지금까지 잘 활용하고 있다. 학부모 명예 사서 시절 도서관에서, 아들의 학생회장 출마 포스터, 친구가 일하는 병원 홍보문구 등 나에게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내 재능기부가 누군가에게는 공짜가 된다니 기쁘다.


 공짜 좋아하는 나의 세포들은 본격적으로 김해로 이사를 오게 되며 깨어나기 시작했다. 공짜가 수두룩한 도서관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아이들과 재미난 책과 그림책을 하루가 멀다 하고 대출, 반납하며 공짜 책을 즐겼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1년 전에 거금을 들여 어린이도서 전집을 샀었다. 집 근처 도서관 서가를 내 집 책장처럼 이용하게 되자, 책에 투자했던 몇백만 원이 아깝기 그지없었다.


 아이들도 근처 도서관에서 무료강좌를 자주 들었다. 방학 때면 아이들 학년에 맞춰 도서관 방학 특강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경쟁률이 치열했다. 신청 시간보다 일찍 예약 사이트에 접속한 후 정확한 클릭을 위해 마우스의 성능을 체크 하며 대기했다. 운명의 시간이 도래하면 남보다 빠른 속도로 정확하게 클릭해야 성공할 수 있었다. 노력해야만 얻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을 경험하곤 했다. 그 외에도 ‘올해의 책’ 선정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하기도 하고 가족극도 보며, 주말 오후에는 도서관 상영 영화도 보러 다니며, 지역주민으로서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  


  도서관 문화센터에는 아동, 성인강좌가 다양하다. 나는 주로 평일 오전 시간이 한가하여 요일별로 여러 강좌를 신청했던 적도 있다. 데생, 수채화, 영어, 일어, 한자, 중국어, 캘리그래피 등등. 한 강좌 수강료가 한 분기에 만오천 원이라니! 저렴해서 정말 마음에 든다.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아 좋다. 수강료 때문에 듣고 싶은 수업을 못 듣는 일은 없었다. 일인 최대 5개 강좌를 모두 신청해도 십만 원이 되지 않는, 공짜 같은 금액으로 3개월 동안 풍요롭게 배웠다.



나는 도서관을 드나들며 정보가 가득한 게시판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인문학 강의, 글쓰기 수업, 독서 모임, 개관 20주년 특집 프로그램, 새로 들어온 도서 목록, 상주 작가와 함께 하는 시 수업, 엄마를 위한 그림책 학교 등등. 게시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관심 있는 프로그램의 신청일과 신청 방법을 메모하거나 사진 찍는다. 이 모든 강의가 공짜다. 나의 틈새 시간과 교육 일정이 맞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신청 시기를 놓친 것은 내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누군가에게 뺏겨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까웠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은 나를 만나면 인사 후에 항상 물어보는 말이 있다. 요즘 뭐 배우러 다녀? 좋은 강의 있으면 나에게도 알려줄래? 내가 정보를 제일 잘 알고 있을 것 같다나. 하하. 내가 문화센터나 도서관프로그램을 꿰고 있다고 생각하는듯했다. 늘 배움에 게으름 피우지 않으려 노력하는 건 인정한다. 학구적인 이미지로 나를 생각해주는 것이 고마워서 기쁜 마음으로 소식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 때, 아이들 교육에도 돈 안 드는 혜택을 최대한 누려보려고 했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나도 똑똑한 아이로 키워내고 싶은 욕심에 공짜 교육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실제로 공짜라고 해서 노력이 덜 들어가거나, 돈이 전혀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사교육에 비하면 공짜가 확실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나에게 쓸 수 있는 투자 비용은 줄어만 간다. 아이들의 사교육비 줄이기는 힘들지만, 나에게 쓰는 비용은 아껴야 한다. 하지만 난 여전히 배우고 싶은 것이 많고, 공부하고 싶다. 그래서 부담 없는 공짜 교육을 좋아하게 되었다. 딱 깨놓고 이야기하면 난 공짜라서 참여했던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다. 좋아하는 내용이 아니어도 시간이 허락하면, 공짜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한다. 그랬다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초판을 찍자> 프로그램도 공짜이면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만든다는데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돈을 내야 하는 수업이었다면 아마 스스로 욕망을 억눌렀을 것이다. 나에게 기회는 왔고, 나는 그것을 잘 받아들이는 중이다. 글을 그다지 잘 쓰지 못하는 사람임에도, 마지막까지 노력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공짜’라는 단어가 주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비용이 들어가지 않아도 나에게 이로움을 가져오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돈 대신 시간을 투자하여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 공짜 좋아하는 사람이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는 옛말, 나에겐 적용되지 않아야 한다. 무턱대고 공짜를 요구하는 게 아니니까. 훗날 할머니가 될 때까지 쭉~ 배움의 끈을 이어가고 싶다. 앞으로도 퀄리티 좋은 공짜 교육이 많이많이 기획되길 바란다.


~2022.10월 위의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만든 책

  ‘뭐가 될 줄 알고’ 에 수록 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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