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운 이름의 소유자
내 이름이 별로라고 처음 느꼈던 건 초등학교(라테는 국민학교)4학년 때였다.
이름 세 글자에 받침(종성)이 ㅇ ㅇ ㄴ 있는지라 발음을 하기가 뭔가 웅웅 거리는 느낌이랄까?
받침이 없이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부럽기 시작했다.
내 이름을 지어 주신 분은 우리 할아버지도 아닌 증조할아버지다. 내가 세 살 때 돌아가셨다고 하니 내가 태어나 얼굴을 뵌 할아버지는 우리 아빠의 아버지인 할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빠의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그 당시엔 여자 이름으로 아주 좋은 이름이었기에 내 이름이 이렇게 지어졌을 것이다. 이름에도 유행이 있듯이 그 시대에는 아마 최고로 유행하는 이름이었지 싶다. 증조할아버지 시대의 유행 말이다.
우 하 하.
간혹 내 또래의 친구들 어머님 성함을 들어보면 나랑 비슷한 스타일의 이름이 많이 계신다. 진짜 그 시절 정말 유행이었나 보다.
조금 더 자라서는 이름의 발음만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아니었다. 촌스러움이 한몫했다. 내가 나고 자란 시골에서 진주로 옮겨 중학교를 다닐 때 더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친구들 이름은 순 한글 이름의 '한나', 받침도 없는 '수미''소미' 한 반에 몇 명씩 꼭 있고 성까지 똑같아 번호까지 매겨야 했던 '은주' '현주' '미경' '미정' '현정'... 이런 이름이 대부분이었다. 흔한 것은 차치하고 촌스러운 이름 석 자는 나만의 것이었다. 나름 유니크했던 것인지?(어이없음) 학교에 똑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드물었고, 같은 반이 되었던 적은 더더욱 없었다.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헷갈리지만 그랬었다.
선생님들이 출석을 부를 때, 내 이름을 부를 때는 세 글자 이름이 네 글자가 되어 버린다. 이유라면 물론 경상도라서 그런 것도 있고, 그 선생님만 그러신 것도 있다. 마지막 글자의 받침을 정확하게 읽고 입을 다물어 끊어줘야 하는데... * * *이~라고 부르는 것이다.다정하게 부르지 않는 다면 세 글자로 부르기 어려울듯하다. 뭔가 감정도 들어가 있는 듯하다. 마지막 받침은 뒤의 글자로 연음 되어 버린다. 황정음---> 황정으미 , 김정숙----> 김정수기, 정소은--->정소으니 이런 식으로... 하지만 원래 이름이 김수미라면 '김수미'로, 강한나는 '강한나' 그대로 불린다.
마치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 부산 사투리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같은 느낌이랄까? ㅋㅋㅋ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가 학교 다닐때는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 출석체크를 했다. 이쁜 이름이 불리고 이쁜 여학생이 대답을 하는 게 순정만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물론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게 보았긴 하다) 나는 내 이름이 불리던 그 당시에 내 얼굴에 비해 내 이름이 촌스럽고 별로라서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 마뜩잖은 표정을 짓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며 사회인, 어른이 될 때 까지 개명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요즘엔 나름 간단하게 처리 된다고 하지만 그때는 아주 귀찮은 일로만 여겨졌었고, 무언가를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자체를 해 보지 않고 살았다.
촌스럽긴 해도 바꿀 만큼 이상한 이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나 보다. 아마 귀찮아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인다. 그래서 내 이름 소개를 하는 자리가 생길 때마다, 오버해서 촌스러운 이름인 걸 먼저 말해 버리며, 증조할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이라는 것을 두드러지게 강조해 버린다. 남이 촌스런 이름이네 라는 생각을 미처 하기도 전에.... (나름 전략)
"전 ***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좀 촌스럽죠? 증~~조 할아버지가 지으셔서 그래요. 그 시절 아주 좋은 이름이라 그리 지으셨을 거예요. “
얼마 전 친구네 가족이 전체 개명을 했다고 들었다. 한 명도 아니고 넷이 모두...
평범하고 괜찮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법원까지 가야 하며 모든 서류를 바꾸는 귀찮은 일들이었을 텐데 그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다니 정말 용기가 대단하다.
이름을 바꾼 후 인생 후반부를 새롭게 살아보고 싶어 그런다고 했다. 친구의 앞날에 새로운 이름이 씨앗이 되어 예전과는 다른 인생을 꽃 피워 나가길 바란다.
발음이 아주 어려운 이름이지만 기억하고 의식해서 많이 불러 주어야겠다.
언제부터가 시작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실명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때나 장소에서는 '쑤니' 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그림책에, 에세이에, 유튜브에서, 카카오톡 닉네임에도, 인스타그램, 유튜브 닉네임…..
내가' * * *' 이 아닌 '쑤니' 일 때 더 자신감 있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나의 이름을 부정하거나 개명하겠다는 정도는 아니다.
나는 앞으로 무엇으로든 불릴 수 있다. 쑤니 말고 다른 닉네임도 가능하지 않겠나. 늘린 게 이름인데 마음에 들면 내가 만들면 그만인 것을… ㅋㅋㅋ
내가 어떠한 이름으로 불리든 그 이름 앞에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떠한 사람인지?를 꾸며주는 수식어에 더 집중해 보려 한다.
가령 그림책 작가 누구누구, 일상을 그리는 화가 누구누구, 환경을 생각하는 누구누구, 연호,유민이 엄마 누구누구…….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