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분리배출 하는 방법
우리 동네 분리수거 날은 월요일, 수요일이다. 2인 가구라 쓰레기 배출이 적을 줄 알았는데, 제때 비우지 않으면 그 양이 훌쩍 불어난다. 일주일에 두 번의 기회가 있어도 신경 써서 챙기지 않으면 지나쳐 버리기 십상이다. 제법 부피를 불려 집안에서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처치곤란의 쓰레기를 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방치된 마음이 떠오른다. 보통 일상이 막힘없이 흐를 때는 알아서 주변을 살피고 정돈하다 보니, 그 흐름이 정체되면 습관처럼 마음부터 살핀다.
고백하건대 그것은 아마도 내 지난 과거의 잘못 때문이리라.
어릴 적 나의 세상은 병실 안 네모난 창틀 프레임 속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날 때부터 여섯 살 때까지 휠체어가 내 다리를 대신하다 보니 그때 경험했던 바깥세상은 그것이 유일했다. 오리가 태어난 순간 처음 보는 것을 엄마라고 믿고 따르듯이 내게도 그런 습성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쇼트커트를 한 사람들은 모두 남자라고 믿은 것이다. 어릴 때만 해도 머리 스타일이 성별을 나타내는 도구인 줄 알았다. 병실을 드나드는 간호사 분들도 모두 긴 머리였고 짧은 머리는 회진을 도는 남자 의사 선생님뿐이었다. 그 외 여자가 쇼트커트를 할 때는 곱슬곱슬하게 파마를 해 성별을 구분하는 거라고 이해했다. 때문에 쇼트커트에, 파마끼가 없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인 줄만 알았다.
2인 병실을 홀로 쓰며 평소처럼 외로운 병실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생애 처음 만난 친구도 쇼트커트 차림이었다. 간호사 분들이 병실로 들어와 새 베드를 놓으며, 심심해하던 나에게도 드디어 말동무가 생겼다며 그를 소개했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많은 언니'라며 통성명하기도 전에 나는 반가워 오빠,라고 답했다. 분명 언니라고 말했는데 호칭이 왜 그러냐는 물음에 아랑곳 않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세상에 머리 짧은 여자는 본 적 없어요.
고작 다섯 살에 불과한 인생에, 나도 다 안다며 아는 체했다. 간호사 언니들도 전부 머리가 길지 않느냐며, 머리가 짧은 여자들은 우리 외할머니처럼 곱슬곱슬하게 파마해서 자기 성별이 여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안다고 답했다. 그러자 새로 온 옆 자리 친구는 웃으며 편하게 부르라고 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편하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맞게 부르는 거라며 꼬박꼬박 오빠라고 불렀다. 멋도 모르면서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었다. 내 얕은 견해로 한 사람의 성별을 바꿔버린 기상천외한 일이었는데, 감사하게도 그는 퇴원할 때까지 내 생애 첫 친구이자 오빠가 되어주었다.
그가 퇴원하던 날, 엄마는 마지막이니만큼 제대로 된 호칭을 불러주라며 이리 와서 언니 한 번 안아주라고 말했다. 그때도 엄마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생애 첫 친구와의 헤어짐이 못내 슬펐고, 언니라 부르면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잘 가 언니,라고 울먹이며 인사했다. 그렇게 처음 만난 그날처럼 그는 군말 없이 환하게 웃으며 떠났다.
그 후 여섯 살이 되던 해, 퇴원하고 나서도 나의 견해는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머리 스타일을 보고 성별을 가늠했고, 그로 인해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을 남자라고 오해했다. 그래서 엄마한테도 당연히 남자라고 소개했다. 쇼트커트 머리를 한 남자 선생님이 손재주가 좋으셔서 운동장에 있는 물품보관 창고 벽화도 직접 그렸다고 말이다. 그 바람에 엄마는 담임 선생님을 뵈러 학교에 왔을 때, 그를 바로 찾지 못하고 헤매는 수고를 겪어야 했다.
이 일이 있은 후에야, 머리 스타일과 성별은 별개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분명 그런 줄 알았는데, 5년 뒤에 고정관념에서 오는 부정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절실히 느꼈다. 어느 날 우리 반에 한 여학생이 전학을 왔는데, 그녀는 달리기 특기생으로 늘 쇼트커트 머리에 운동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여느 남자들보다도 빠른 달리기 속도를 시샘한 아이들이 그녀의 진짜 성별은 남자다,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문을 퍼트린 일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속으로는 머리 짧은 여자가 어디 있느냐며, 어쩌면 진짜로 남자일지 모른다,라고 의심했고 출처 없는 소문에 동조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내 마음속에 자리한 부정적인 감정이 오래도록 나의 그릇된 견해를 지속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남보다 늦게 세상을 경험했다는 열등감이 혹여 무리에서 뒤처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일으켰고 아닌 줄 알면서도 ‘쇼트커트 머리를 한 사람은 남자다 ‘라는 말에 긍정하며 다수가 퍼트린 괴소문에 힘을 실었다.
철없고 어렸지만, 스스로 인식하는 세상과 그 안에서 정립된 견해와 그 저변의 감정들이 사고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누구보다 깊이 경험했다. 제 아무리 견해를 넓히려고 애쓴다 해도, 스스로 자각하는 세상이 병실 안 네모난 창틀 밖으로 본 것이 다라면. 그 좁은 시선으로 본 세상이 전부라고 믿는다면. 그 세상에서 깨달은 의견과 생각이 얼마나 넓을 수 있으랴. 스스로 바라보는 것들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라는 생각에, 나의 시선에 책임감을 느꼈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들의 상호작용으로 도출된, 내가 바라보는 것들에 대한 결과물이었다. 바른 생각과 그릇된 생각을 분리해 내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좋은 생각이 더 좋은 생각을 낳듯이. 주체적인 자기 개입을 통해 쳐낼 것들은 과감히 쳐내고 남긴 것들로 바른 생각의 터전을 가꾸는 것이 바르게 사고하는 방법이었다. 저마다 주어진 마음의 방 안에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정리하면서 자기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일이었다. 그러니 결국, 좋은 생각을 기반으로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에너지 총량이 있고 주어진 힘으로 자기 삶과 마음의 밭을 꾸리는 일처럼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부분에서 그릇된 생각을 분리하고 제때 버리는 일은 분리수거와 닮은 구석이 많다. 주기적으로 분리 배출할 것들을 나누고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 비닐봉지에 담아 버리듯이, 나의 그릇된 생각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투명하게 들여다봐야 버릴 것과 남길 것을 제대로 고를 수 있다는 것. 또 분리배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재활용 가능한 것들도 못 쓰게 되는 양날의 검과 같다는 점도 다르지 않다.
그뿐이랴. 분리배출을 할 때는, 그 안에 음식물을 다 비우고 깨끗이 씻어 버려야 하고 용기에 부착된 라벨도 제거해 재질이 같은 것과 다른 것끼리 분류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자기 마음을 괴롭혀 온 케케묵은 그릇된 생각들을 비울 때, 그것이 더 이상 바른 마음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감정의 찌꺼기까지 깨끗이 비워내는 일과 닮았다.
같은 재질끼리 분리배출 하는 것은 감정을 정리할 때 같은 류의 감정을 함께 다루는 것과 같다. 마음속을 지배한 감정의 성질대로 분류해야 자기 마음을 바라보기 쉬운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용기에 부착된 라벨을 떼고 버리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출처를 밝히고, 그 엉킨 시작점을 풀고 난 후에 완전히 제거하여 버린다는 점에서 묘하게 닮았다.
스스로 자기 마음을 점검하고 아닌 것들은 잘라내는 그 일련의 과정과 분리수거의 닮은 점을 발견하고 나니 집안일을 미루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주기적으로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는 일을 핑계 삼아서라도, 종종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무엇을 버리고 남겨야 할지 뚝딱 분별해 내는 힘을 길러야겠다.
집안 일도 미루면 미룰수록 몸집을 불려, 처치곤란이 되고 말듯이. 마음도 제때 비우지 않고 미루면 그릇된 생각에 잠식 돼 바른 사고를 하기 어렵게 될 테니. 제때 분리수거하는 습관을 들여 일상도 마음도 함께 가꾸는 자기 주체적인 어른이 되겠노라 다짐해 본다. 어린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은 보호자의 몫이지만, 그 후 장성한 어른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제 몫이므로.
그래서 나는 오늘도
즐거이, 분리수거를 한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