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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익어가는 마음

담쟁이캘리 낱말노트 - 김장

by 담쟁이캘리










씨 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얻은 별명은 '김치'였다. '서울 가서 김서방 찾기'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같은 성씨가 대단히 많은데도 몽땅 '김치'로 통했다. 어릴 때는 이름이 아닌 다른 별명으로 불린다는 이유만으로 약이 올라서 괜스레 김치만 봐도 심통이 났다. 총각김치, 깍두기, 배추김치, 파김치 등 셀 수 없이 많은 김치 종류 때문에 눈 돌리는 곳곳마다 놀림거리가 넘치는 것이 싫었다고 표현해야 할까. 이유식으로 된장 보리밥을 먹을 정도로 반찬 투정이 없었던 아이가, 김치만 보면 퉁퉁거리니 엄마는 영문도 모르고 도시락 통 속에 남겨온 김치를 두고 타박했다.


아이들이 자꾸 김치라고 놀린다고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지만, 엄마 눈에는 그저 우스웠는지 피식 웃었다. 그 당시 어린 내 눈에는 성씨가 다른 엄마는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여겼던 것 같다. 돌아보면 별 것 아닌 일이건만, 그때는 그게 뭐라고 유난이었을까. 심통 난 마음에 위로가 되었던 건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라는 노래 가사 덕분이었다. 우습지만, 그 한 구절에 김치는 어디도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아서 으스대는 마음이었다고 해야 할까.




난기 가득한 아이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기 싫어 멀리하던 김치는 밥 먹을 때마다 꺼내놓는 반찬 1호가 되었다. 배추김치부터 총각김치, 파김치, 고들빼기까지. 종류가 천차만별인데도 몽땅 김치로 퉁쳐지는 건 되레 대단한 장점이라 여긴다. 그냥 '김치'로 불려도 각양각색으로 변신이 가능한 팔색조 같은 매력을 지닌, 이름은 하나인데 모습은 여러 개인 그 모습이 오히려 좋아졌다고 해야 할까. 겉절이가 맛 좋게 익은 것처럼 어린 시절, 설익은 내 마음도 맛 좋게 익어가는 중인가 보다. 오늘, 갑자기 김치 하나에 울고 웃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 건 순전히 아빠 덕분이다.


크게 아프고 난 엄마가 이번 해만큼은 쉬어갔으면 해서 김장을 하지 말고 사 먹자고 했는데, 사 먹는 건 맛이 없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탓에 나까지 일일 용병으로 오랜만에 가족 김장을 담그고 왔다. 절인 배추에 빠알간 양념 속을 넣으며 한 장 한 장 배춧잎을 버무리다 보니, 처음에는 꼿꼿하던 배춧잎이 양념과 하나 되어 이불 덮듯이 폭- 감긴다. 사람도, 김치도. 시간이 흐르면서 익는 건 다 매한가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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