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재한 매거진 글을 우선적으로 업로드합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중학교 2학년, 익숙했던 서울을 떠나 광주로 전학을 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한 친구들이 있던 세계에서 벗어나자, 나는 단숨에 외톨이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한 아이들로 구성된 집단에서도, 나 같은 전학생은 불편한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 학교의 담임 선생님은 나를 더욱 외롭게 했다. 당시 나는 거식증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내가 없는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나를 ‘정신병자’라고 불렀다. (그는 도덕교사였다.)
감수성이 퍽 예민했던 15살 이동수업시간.
아무도 장소를 알려주지 않아 홀로 교실에 앉아 있던 나는 별안간 교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더이상, 어쩌면 앞으로도 일반 학교에 적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감대로, 이미 정규 교육일정이 진행 중인 다른 중학교로 다시 들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부모님은 나를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중고등 일체형 비인가 대안학교에 보냈다.
그곳은 산골짜기 깊숙이 자리한 기숙학교였다.
중고등 일체형 학교라 십대 중후반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생활하는 곳이었다.
밤만 되면 아이들은 삼삼오오 마을로 내려가 담배를 사오곤 했다.
몸에 예쁜 문신도 있고, 화장도 예쁘게 하고, 선생님한테 싫은 소리도 잘하는 언니오빠들이 그땐 참 멋있어보였다. 그들이 무리에 나를 끼워주는 것에, 아이러니하게도 전에 경험하지 못한 깊은 소속감을 느꼈다.
그 소속감을 더 확인받고 싶어, 나도 반항을 시작했다.
수업을 빼먹고, 선생님에게 대들고, 어느 날엔 교무실 마이크를 잡고 전교생이 다 듣도록 소리를 질렀다.
“나를 집에 보내라 이 XX들아!”
그 길로 부모님은 그 학교에서도 나를 자퇴시켰다.
대안으로 보낸 학교조차 딸의 대안이 되지 못하자, 이번엔 집에서 두 시간이 넘게 떨어진 또 다른 대안학교를 선택한 부모님. 찾아낸 방법이라는 게 집에서 더 멀어진 대안학교라니. 어쩌면 부모님은 더 말썽쟁이가 된 나를 감당할 수 없어 당신들 눈 밖으로 멀리 보내버리고 싶었던 거라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두 번째 대안학교 역시 산으로 둘러싸인 기숙학교였고, 중고등 일체형 비인가 학교였다. 첫 대안학교와 소름돋게 똑같은 옵션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곳에 나를 두고 가겠다는 부모님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학교에 처음 방문했을 때의 풍경 때문이었다. 축제 기간이었는지, 내 또래 아이들이 강낭콩 모양 부직포를 뒤집어쓰고 깜찍한 율동을 하고 있었다. 미니스커트에 섹시댄스를 추던 이전의 학교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유치함에 큰 충격을 먹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편했다.
‘여기는... 내가 맘만 먹으면 먹을(?) 수 있겠다.’
그렇게 선택하게 된 두 번째 대안학교.
그곳에서 보낸 5년의 시간은 내 꿈과 미래, 결혼까지 이어지는 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