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재한 매거진 글을 우선적으로 업로드합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아침 조회 시간, 전교생 앞에서 첫 자기소개를 했다.
물론 ‘전교생’이라 해봤자 10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학교다. 한 학년에 한 반, 학생은 12명 남짓.
중1부터 고3, 심지어 선생님들까지 한 공간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풍경은 내겐 꽤나 생소했다.
“저는 서울에서 광주로 이사 온 차열음이라고 합니다.”
광주에 내려온 지 몇 달이나 지났지만, 굳이 ‘막 이사 온 사람’처럼 말했던 건 전학간 학교에서 (2번이나) 실패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학생들 사이에서 풉— 하는 웃음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자 선생님 한 분이 웃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옆자리 아이의 이상한 행동에 터진 웃음이었지만, 막 거짓말을 뱉은 내겐 마치 모든 걸 꿰뚫는 비웃음처럼 들렸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뭘 웃어요?”
강당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나는 서둘러 마이크를 교감 선생님께 넘기고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여기서도 적응하기도 틀린 듯 하다.
전교생에게 잊지못할 첫인상을 남긴 나는,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참고 또래 아이의 안내를 받아 반으로 들어갔다. 여덟 명의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남자 네 명, 여자 네 명. 짝수다.
여자들끼리 화장실 가거나 밥 먹을 때 끼기 난감한 구성이라는 생각을 하며 틴트를 덧바르는데, 옆에 앉은 아이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여기서 화장하면 안 돼.”
'나도 알아. 하지만 다들 하잖아?' 라고 말하려다 그녀의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 입을 다물었다.
다시보니 여자 아이들 모두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 듯 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에선 화장을 안 하는 게 이상했는데, 이 학교는 화장을 하는 것이 더 튀는 분위기였다. 급히 손등으로 입술을 문질러 틴트를 지웠다.
아이들과의 자기소개에서는 한살, 두살, 심지어 세살 차이의 언니 오빠들과 같은 학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뭐, 이건 첫번째 대안학교에서도 그랬으니 익숙하다. 방과 후엔 보통 무얼 하느냐고 묻자, 공부만 했을 것 같이 생긴 남자 아이가 학교를 중심으로 ‘경도(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면 정말 재밌다고 자랑을 한다. 그러자 옆에서 “그거 하다가 00이 이마 깨졌잖아. 위험해.”라며 훈수를 둔다.
15살이 '경찰과 도둑' 놀이를? 그것도 머리가 깨질 만큼 열심히 한다고?
뜨악한 내 표정에 다른 아이가 '몸을 움직이는 게 싫으면 칠판오목도 재밌다'며 다른 옵션을 내놨고, 얌전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아이는 '지금 시기가 좋으니 개울에서 올챙이를 잡자'고 제안했다.
...이 학교는 대체 뭐지?
그때 밖에서부터 말발굽 구르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식당에 감자 삶았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반 문으로 몰려나가며 외쳤다.
“나 소금 한 숟갈 킵! 킵!”
나도 어느새 한 아이의 손에 이끌려 식당을 향해 뛰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경찰과 도둑 놀이 하다가 이마가 깨지는 아이들.
올챙이를 잡아키우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화장은 모르겠고 감자엔 진심인 아이들.
코딱지처럼 작다고 코웃음 쳤던 이 학교가, 오히려 내가 알던 세상이 작은 우물 안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