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주도학습 전에, 자기주도생활

by cha

기연재한 매거진 글을 우선적으로 업로드합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식당에서 포슬포슬 찐 감자를 먹으며 주방을 바라보니, 안쪽에서는 아이들 몇 명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이 학교는 중1부터 고3까지 섞여 대여섯 명씩 조를 이뤄 식사당번을 맡는다. 당번은 식사 전 테이블을 세팅하고 식사 후 전교생의 설거지와 음식물 처리까지 담당한다. 엄마를 도와보겠다고 접시를 몇 번 닦아본 적은 있어도 제대로 설거지를 해본 적은 없던 나는,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음식물이 묻은 그릇을 씻고 익숙하게 잔반통을 버리러 나가는 아이들이 대단해보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교내 청소는 물론, 기숙사 청소, 학교 분리수거, 필요할 땐 식당 앞 데크까지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 처음엔 이 모든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우린 학생이고,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하면 좋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내가 먹은 것을 내가 정리하고, 내 쓰레기를 내가 치우고, 내 필요한 것을 내가 채우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법, 자신의 생활에 책임감을 갖는 법을 배웠다. 사교육 없이도 좋은 대학에 간 졸업생들이 많았던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껏 수없이 들어왔던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자기주도학습은 그렇게 강조하면서, 정작 ‘자기주도생활’이라는 말은 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까? 생활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이 자기주도학습만 한다는 게 가능할까?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는 최소한의 태도가 전제되어야 자기 삶도, 공부도 주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대학생 시절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대학 입학 후 처음 기숙사에 와 짐을 풀고 있었는데, 내 옆에서 룸메이트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아이의 짐을 대신 정리하고 있었다. 정작 룸메이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방문에 적힌 것을 보아 의대생 친구였다. 그때 아이의 어머니가 박스에서 청소도구를 꺼내더니 나에게 말했다.


“우리 애는 공부해야 하거든? 청소도구 여기 둘테니까 주말마다 청소 좀 해줘요.”


황당한 말이었지만, 그 어머니에게는 아이에게 공부 외의 어떤 일도 시키지 않는 것이 당연했을지 모른다. 반학기 동안 지켜본 룸메이트는 실제로 청소를 전혀 할 줄 몰랐고, 쌓아놓은 옷더미가 내 자리로 흘러내리는 일도 흔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반수를 해 SKY 의대에 편입했다.

그래도 의대에 갔으니 성공한 걸까? 학생으로서 최고의 성취를 이루었으니 된 걸까? 나아가 성인이 된 우리가 남들이 부러워할 최고의 성공을 이루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내 앞가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때 가서는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그 룸메이트의 자리보다 50여명이 살던 낡은 여기숙사가 몇배는 더 깨끗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여기숙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깨끗한 것과는 별개로 그곳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에덴동산'이었다. 아이들이 발가벗은 채 방과 복도를 활보하고 있었다. 샤워실이 좁으니 발가벗은 채 나와 방에서 옷을 입는 것이다. 처음엔 이 상황이 낯설고 불편해 샤워실에 옷을 가지고 들어가, 물이 튀어 축축해진 옷을 입고나오곤 했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존재라고 나도 어느새부턴가 자유로운 몸뚱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서 친구들과 찜질방이나 수영장을 가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어쨌든 샤워 시간이면 아이들은 옷을 입느라 방문을 죄다 열어두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복도 끝의, 뭔가 어두운 기운이 감도는 방 하나만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저긴 어떤 방일까?’


궁금해하던 순간, 그 방 안에서 갑자기 엄청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조용히 좀 합시다아!!!"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이상한 나라의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