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말고, 섬김장

by cha

*이번 편은, 은찬이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우리 학교에서 회장은 ‘섬김장’이라고 불렸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들 위에 서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섬기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섬김장이 된 나는 부섬김장이 된 열음이와 함께,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전교생 회의를 맡게 되었다.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강당에 모여 학교의 안건을 나누고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가 늘 부담스러웠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고, 혹시라도 실수하면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두려웠다. 그래서 회의만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열음이를 앞에 세우곤 했다. 말을 더 잘하고 분위기를 이끄는 데도 능한 열음이가 이 역할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 사이에서 ‘꼭두각시 회장’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섬김장은 나인데, 정작 회의를 이끄는 사람은 부섬김장이니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뒤로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에 더 위축됐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회의를 이끌 자신도 없었다. 아무래도 자리가 사람을 잘못 찾아온 것 같았다. 나는 어딜봐도 섬김장이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회의가 끝나면 곧장 기숙사로 올라가 문을 잠그고 저녁 먹기 전까지 자는 척을 했다. 혹시 누가 나를 평가하고 있을까 봐, 내가 부족한 회장이라는 이야기가 또 어디선가 들려올까 봐, 그 순간 자체를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이불 속에 누워 자주 생각했다. 섬김장의 자격이란 무엇일까. 우리 학교는 왜 굳이 ‘회장’이 아니라 ‘섬김장’이라는 이름을 썼을까. 어쩌면 섬김장은 앞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이 아니라 뒤에서 다른 사람들을 살피는 사람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꼭 열음이처럼 말 잘하고 존재감 있는 리더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 방식대로 사람들을 섬길 수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역할을 다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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