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로스쿨 도전기 上
작년 겨울, 문득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루한 일상의 반복에서 어떠한 보람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탈출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소소한 성취감을 위해 꾸준히 넣었던 글 공모전은 매번 떨어지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좌절감이 쌓여갔고, 작은 결과 하나하나에 그 하루를 일희일비해버리는 더 작아진 나의 모습을 스스로가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로스쿨을 도전했다. 장기전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별 것 없는 동기였다. 지루한 일상의 리프레시를 위해 로스쿨을 꿈꾼다니. 학창 시절 법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고 지식도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전국 토론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토론과 논쟁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토론 수업 자체를 피해 다녔다.
물론 갑자기 수많은 장기전 중에 대학원을, 대학원 중에서도 아무 이유 없이 로스쿨을 정한 것은 아니었다. 관심은 소소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저작권 관리를 하게 되면서 들었던 저작권 교육이 재미있었던 것이다. 직업 특성상 외근을 나갈 수 있는 기회는 저작권협회나 케이블협회에서 주관하는 저작권 교육을 들을 때뿐이었는데, 회사 밖으로 나간다는 설렘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그때 들은 수업들은 하나같이 흥미진진했다. 특히 실제 판례들을 중심으로 드라마나 노래, 영화 등의 저작권 논쟁을 듣고 있자면 내게 익숙했던 작품들의 비하인드 메이킹 영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한 일 년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학업의 욕구도 샘솟았다. 열심히 일해도 성과가 드러나는 업무가 아니었기에, 열심히 하는 대로 인정받고 성적이 오르던 대학시절이 그리워졌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다. 명예와 자리에 대한 욕심이었다. 로스쿨에 들어간다면,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가 된다면 뭔가 다른 삶을 살지 않을까?
그렇게 무작정 혼자 로스쿨을 꿈꾸기 시작했다. 출혈을 감수한 도전이었다. 12월에서 5월에 거쳐 쥐꼬리 같은 월급을 털어 한 과목당 100만 원이 넘는 인강을 수강했다. 퇴근하고서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스터디 카페에 눌러앉아 12시까지 공부했다. 5월 이후로는 정기 모의고사를 신청해(심지어 이것도 적지 않은 돈이 들었다) 시험을 보러 다녔고 틈틈이 토익도 공부해 800후반의 성적을 900중반까지 올려두었다. 힘들었다. 힘들었지만 더 힘들게 꾼 꿈이 있었기에, 참으로 오랜만에 꾼 꿈이었기에 쉽게 놓을 수 없었다. 이미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겠다는 오기도 있었다.
꿈이 있으니 그렇게 지루하던 일상도 아주 작은 것이 되었다. 나를 괴롭게 하던 A도 그 작은 일상의 일부일 뿐이었다. 두 번째 일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퇴근 후에 펼쳐지는, 온전히 나를 위해 투자하는 일상. 그 일상이 추구하는 목표는 때로 지겹고 우울하고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일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안정감'이 좋았다. 나는 로스쿨에 떨어져도 갈 수 있는 직장인의 일상이 있었고, 현생의 침체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험생의 일상이 있었다. 그게 내겐 안정감이었다.
그렇게 반년을 준비한 시험이었다. 남보다 공부시간이 적었을지는 몰라도 최선을 다해 준비한 시험이었다. 그리고 올여름, 나 홀로 Leet(법학적성시험)를 보게 된다. 부모님이 다 찾아주고 물려주던 대학입시가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찾아서 혼자 도전한 수험생활이었다는 것이 내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