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에 가고 싶어

여행 상사병

by 수니


어느 날 영화를 보기 전에 자주 가던 서점에 들러 오늘은 어떤 책을 살까 둘러보다 눈에 띈 책 한 권.


‘북유럽 인문 산책’이라는 제목이 커다랗게 보였다. 스웨덴에서 4년간 살며 북유럽을 여행한 한국인이 쓴 책인데, 간략한 내용을 훑고 순간적으로 홀려 바로 구매하기로 결심했다. 보통 서점에 가면 충동구매를 잘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색다른 문화를 간접 경험해보는 것을 좋아해서 가고 싶은 여행지의 여행책을 자주 구매하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잠에 들기 전, 북유럽으로 인문 산책을 떠나기 위해 책의 첫 장을 펼치고 찬찬히 글자를 읽어 나갔다.


북유럽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이렇게 총 5개의 국가를 칭한다. 1장에서부터 스웨덴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글을 읽으면서 스톡홀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스웨덴이란 국가는 사실 나에게 이케아나 아크네 말고는 딱히 아는 것이 없는 생소한 국가인데, 그 생소함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솟아났다. 알지 못했던 역사와 문화, 예술 등 모든 면이 새롭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주변 국가들 또한 내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북유럽의 매력에 푹 빠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스웨덴은 이미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가장 유명한 스웨덴의 문화를 소개하자면, 요즘 한국에서도 일상이 된 문화인 가볍게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피카(Fika)’가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아주 예쁜 단어인 것 같다. 나도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스웨덴에서 피카 타임을 꼭 즐겨보고 싶었다.


스톡홀름의 구시가지인 ‘감라스탄’은 스톡홀름의 중심에 있는 작은 섬인데 13세기부터 시가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감라스탄은 스웨덴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곳이라고 한다. 감라스탄 어느 골목길을 걷는 나를 상상해본다. 아주 오래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노을이 지는 강변을 바라보는 나를 또 상상해본다. 그때 아마도 나는 꼭 스톡홀름에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머릿속에 아주 단단히 박혔다.


여행을 가고 싶은 곳은 우선 SNS로 탐색해본다. 심심할 때마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스톡홀름의 정보를 찾아보고 있었다. 언젠가 가게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항상 어느 여행지던 가고 싶은 장소를 구글맵에 저장해두는 습관이 있어 스톡홀름의 지도에 초록색 깃발이 마구 생겨났다. 항상 하던 취미생활 같은 것이라서 여느 때처럼 즐겁게 그곳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 상상은 오래갈 수 없었다.


'여행을 하고 싶은 나, 여행을 할 수 없는 나.'


이렇게 두 가지의 자아가 부딪혔다. 나는 남자 친구와 카페를 운영 중인데 작은 규모이지만 혼자서 운영하기에는 벅찬 영업시간과 일거리들이 많아서 쉽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다. 남들은 “카페 사장님이면 스케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 아냐?” 라고 쉽게 말하지만 자영업은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다. 다달이 꼬박 나오는 월급은 커녕 오늘내일의 매출을 걱정하며 사는 하루살이 같은 직업이다. 사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자영업을 하면 시간적으로 더 자유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4년간 겪어본 자영업의 현실은 고운 꽃길이 아니라 튀어나온 돌을 언제 밟을지 모르는 진흙탕길 같다. 아무리 진흙탕길이라도 가끔은 잠시 발이 편한 흙길과 어쩌면 꽃길도 지나갈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일주일에 6일, 하루에 12시간 가량의 노동을 하면서 이 정도 보상은 받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합리화를 해본다. 이런 사정에 여행이라니 누군가 현실도피라고 비웃어도 좋고, 철이 없다고 꾸짖어도 상관없다. 여행에 관해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은 '나중에'.






매일 스톡홀름 얘기만 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얼마나 귀에 딱지가 앉았으면 그냥 다녀오라는 말을 꺼냈다. 이기적이게도 난 그 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나의 공백을 채워줄 만한 사람들을 섭외하기로 했다. 든든한 동업자와 직원 덕분에 걱정이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가장 고마운 나의 조력자인 엄마는 여행 경비를 보태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결정은 쉽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 내가 여행을 가고 싶다고 이렇게 가게도 내팽개치고 무작정 가도 되는 걸까?'


'아니야, 마지막 20대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자.'


또다시 두 자아는 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나는 밤새 스톡홀름 생각에 잠을 설쳤다. 잠결에 호텔 예약 어플을 구경하다가 저렴하고 괜찮은 위치의 호텔을 덜컥 예약했다. 물론 무료 취소가 되는 조건이었지만 너무 가고 싶은 마음에 예약을 해버렸다. 아침에 퀭한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내가 단단히 여행 상사병에 걸렸구나. 나 자신이 생각해도 스스로가 터무니없었다. 매일 항공권 구매 어플을 들락거리며 살까 말까 하루 종일 고민에 두통이 올 정도였다. 나도 대체 내가 왜 이럴까 싶을 정도로 스톡홀름에 집착했다. 단순히 ‘여행’을 하고 싶다면 가까운 다른 나라도 많은데!


하루에도 몇 번을 오락가락하며 고민하다 다음날 결국 일주일 뒤에 출발하는 항공권을 결제했다. 질러버렸구나.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뭔가 큰 죄를 저지른 듯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말 가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도 찰나, 내가 없어도 괜찮을 거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북유럽으로 가는 직항은 핀란드행 뿐이어서 무조건 경유를 해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헬싱키에서 하루 레이오버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항공권을 사자마자 남은 3박의 숙소를 알아보니 이미 80퍼센트 이상 예약되어있어서 꽤 난감했다. 전에 저렴한 호텔을 예약해놓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북유럽 현지인 집에서 생활해보고 싶은 마음에 에어비앤비를 열심히 서치 했다. 몇 남은 집이 없었지만 마음에 드는 집과 위치를 가까스로 골라 호스트에게 예약 의사를 보내 놓았다. 하지만 다음날 호스트의 일정으로 예약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고 낙심했다. 출발 5일 전 적당한 위치에 쾌적한 환경의 집을 찾기는 너무 어려웠다. 다른 집을 찾아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예약이 취소된 것인지 못 보던 집이 떡하니 올라왔는데 좋은 위치는 물론, 인테리어까지 마음에 들었다. 망설임 없이 바로 예약 메시지를 보냈고 몇 시간 뒤 호스트에게 허락 메시지가 왔다! 결국 이 집으로 가기 위해 돌아온 거였나 싶었다. 숙소를 해결하니 꽉 막힌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했다. 급하게 잡은 것 치고는 너무 완벽했다. 출발이 좋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게 된 여행인 만큼 평소처럼 서두르거나 빡빡한 일정 계획은 하지 않기로 했다. 심지어 전혀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게다가 난 해외 자유여행 경험이 다수라 여행에 관해선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라는 말을 무시했다. 그저 구글맵에 저장해둔 초록색 깃발도 밟아보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가기. 이게 나의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여행에서 완벽히 겸손을 갖출 수 있는 계기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