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 = 한감독
주변인: 어? 네가? 네가 말이야?
나는 꽤나 완벽주의자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 누가 그것을 눈치채는 것은 싫어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어느 한 면에서는 꼭 똑부러지고 싶었고, 완벽하고 싶었다. 하지만 또 어딘가에선 굉장히 어리광스럽고, 무언가 엉성하기를 좋아했다. 왜냐면 나는 어딘가에 내가 완벽해지는 것을 들키는 게 부끄럽기도 하였고, 그리고 티내는 완벽함은 굉장히 멋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최선을 다했음에도 최선을 다한 티를 절대 내지 않았다. 워낙 티 내는 것을 싫어하는 내적 성향도 있겠지만, 또 티 내는 사람 치고 멋진 사람을 많이 못 보았다. 그게 이유라면 나의 이유였다.
나의 완벽주의자의 성향은 힘들기도 했었다. 항상 무언가를 도전하거나 이루어야 할 때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나, 주변 친구들에게 그리고 부모님에게 응원을 받을 법도 했지만 무언가 완벽한 결과값을 전하지 못하게 될까봐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서 끙끙 앓으며 해내기 위해 이를 악물었었다.
그렇게 나는 이상한(?) 나를 한참을 데리고 살게 되었다. 꽤나 무탈하게 말이다.
무려 황금연휴의 시작이었다. 2020년 5월 5일 어린이날은 화요일이었고, 5월 4일 월요일은 일명 징검다리 휴일의 날로 각 회사가 전사 휴무를 권장했던 날이었다. 나도 쉬고 싶었지만, 당시 혼자 팀의 업무를 전부 다 하고 있어 오랜 휴일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쉰다고 하여 해야하는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밀리는 것'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날 아침 이불 속에서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출근을 하였고,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사무실에 한두 명씩 익숙한 얼굴을 비추자 반가운 마음도 들고 적잖이 위안을 삼기도 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타 회사의 매니저님과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며 카톡을 이어갔다. 이게 나의 공황 장애 자각에 대한 대망의 날이었다.
" 매니저님 잘 지내시나요? "
" 아니요. 그럴 리가요! "
" 어째서요? "
" 저 요즘 잠을 잘 못 자요. 그래서 너무 졸려요. 집에 가서 자고 싶네요! "
" 잠을 왜? "
" 글쎄요. 한 달 됐나? 수면유도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네요! 식욕도 없어요. 그래서 너무 신기해요! 무기력하고 몸에 힘도 없고 아! 가끔 심장도 뛰고 생각에 잡아먹는 느낌에 잠에서 자꾸 깨요. 그래서 맨날 피곤하죠 뭐. "
이런 대화가 오고 갔고 그 매니저님은 "그거 공황이네요"라는 짧은 말을 뱉었다. 당황스러웠다 뭘 안다고 공황이라고.. 나는 단칼에 아니라고 말했고, 매니저님은 차분하게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찬찬히 듣고 있는데 내가 겪고 있는 증상과 비슷한 점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에이~ 내가?' 내가 무슨 공황장애란 말인가. 그저 잠 좀 못 자서 피곤한건데... 그리고 평소에도 나는 마음 관리를 꽤나 잘 해왔다고 누구보다 자부하고 살았었다. 그래서 이 말은 정말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결국 오 분 뒤 포털사이트에서 공황장애를 검색했고, 정말 많은 글들을 보았다. 증상 테스트 문항을 보니 전부 한 달여간 지속된 나의 증상이었다. 아직까지도 나는 내가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인정하기가 싫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 공황을 그렇게 맞닥뜨렸다.
매니저님과 이야기 후 몇 시간 뒤 회사에서 감정 없이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그 후 당혹스러워서 더 눈물을(?) 흘렀다. 재빨리 화장실에 가서 당혹감을 떨치려고 진정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곤 일찍 퇴근을 해버리곤 차를 탔다. 타는 순간 혼자의 공간이다라는 안도감 때문인지 최근 몇 년간의 가장 많은 눈물을 그날 자정까지 흘렸다.
감정 없이 눈물만 흐른다는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했던 점은 단연코 슬프지도, 우울하지도 무언가 속상하지도 않았다. 그날 감정과 눈물샘은 정말 별개 중 별개였다. (여기에 올리긴 부끄럽지만 나는 눈물 셀카라는 것을 찍으며 친구들에게 보내고 장난을 칠 정도로 감정에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진짜 눈물만 계속해서 흘러내릴 뿐이었다.) 아! 그중 하나 느꼈던 감정이 있긴 있다. 충격감. 내가 공황이라니? 나보다 스스로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봐. 할 정도로 내가 나를 참 잘 안다고 자신했는데, 이렇게 몸에 반응이 올 정도로 가깝게 찾아온 공황장애를 스스로 몰랐다고?의 배신감도 포함. 그 이상 그 이하 그 어떤 감정은 섞이지 않았었다.
그날은 그렇게 어지러이 울고 끝이 났다. 그때부터 나는 공황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나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고 싶었다.
"당신이 직관에 반응하지 않으면, 어린 아들의 어머니처럼 당신의 목덜미를 잡아당긴다. 그리고 공황을 일으켜 당신의 삶에서 어떤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강요한다."
"당신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 강렬한 신체적 반응이 '왜' 갑자기 나타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책을 읽고서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나 같은 둔한 사람에게 담담하고 정확하게 설명을 해준 글이다. 그니까 한마디로 "너는 너의 생활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너 이거 지금 한번 관리하고 다시 되돌아봐. 그 시간을 보내기 위해 너의 신체에 반응을 좀 줄게. 그러니 눈치를 제발 좀 채!"라고 말하는 것이다.
원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작년 10월부터 한 회사, 한 매체에서 혼자 업무를 떠맞게 되었다. 당시에도 많은 인원이 진행했던 업무는 아니었고, 팀 리더와 나 그리고 근근히 인턴들이 스쳤었던 타이트한 인력 구조였다. 그때부터 나는 갑작스레 리더 역할의 업무까지 전부 책임을 떠안고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또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힘듦을 내색하지 않았고, 내 능력에 저하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여유 있는 척했지만 버거웠고, 팀의 성과가 이제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될까 성과 올리기에 급급해서 머릿속을 과부하 만들어 나를 졸라맸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을 지내자 나는 이제 내가 스스로 부담을 느끼고 힘이 든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와버리게 되었다. 그동안 혼자 해왔기에 그냥 일이 손에 익어 그냥 잘하게 된 줄만 알았다. 그럴 때마다 주변인들은 내게 항상 놀라움을 전하며 "혼자서 일 힘들지 않아요?", "그렇게 많은 일을 혼자서 어떻게 해"라고 말할 때. 그냥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웃었다. 그렇게 8개월 동안 내 입으로 힘들다, 부담된다, 사실 혼자서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라는 마음을 들켜본 적이 없었다. 근 8개월 동안 말이다.
1. 당당하게 약해지기
2. 생활 패턴 리셋하기
일단 나는 내가 공황장애에 걸려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시간을 조금 보냈고, 그 후 대책 방안에 대해 생각했다. 힘듦을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 부담감에 지쳐가는 나를 이제는 제대로 꺼내어 부담에서 멀어지게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장 동료들에게 처음으로 '대표님께 채용을 부탁해봐야겠다', '이번 프로젝트 혼자 하기 너무 버겁다' 등 나의 증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언제나 강하고 현명한 대응책을 가지고 있는 당당한 내 모습을 버리고 친구들에게도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인들이 엄청나게 놀랄 줄만 알았다. 그런데 "당연히 그럴 만해"라는 반응이었다. 그러곤 덤덤히 나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주변인들의 심리상태에 관심이 많았고 위로를 해주면서 동시에 위로를 받는 편이었다. 불과 엊그제에도 친구에게 책을 찾아 보내주었고 항상 걱정되는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반대로 친구에게 내가 보호받게 되었다는 생각이 조금은 부끄럽고, 조금은 낯설었지만 나의 약함에 당당해지기로 하고 눈을 돌려보니 모든 게 다정히 나를 감싸주었다.
어느 한 친구는 임신 막달에 배가 불러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는 몸을 하고선 내가 제일 소중히 생각하는 장문의 손편지와 내가 제일 사랑하는 색의 과일(오렌지)을 택배로 보내주어 따뜻한 밤을 만들어 주었고, 미술 학원을 하는 바쁜 친구는 나를 당장에 보러 오겠다며 나올 채비를 하곤, 갑자기 잡힌 학부모 상담에 몸 둘 바를 모르며 속이 타는 심정을 나에게 들키기도 하였다. 그뿐일까. 갑자기 자취를 시작해 힘들게 독립 생활에 적응을 해나가던 친구는 나에게 손수 밥을 해주겠다며 한참을 주방에서 쿵쾅쿵쾅 거리던 귀여운 뒷모습을 보여주었고, 또 회사 동료는 말없이 자주 내 자리를 찾아 등을 쓰다듬어 주던 따스한 손길까지 전해주었다.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약함을 인정해버리니 전부가 따뜻한 잔상으로 변모되었다.
그리곤 나의 생활 패턴을 재정비하였다. 무언가 변화가 분명해야 몸도 새롭게 적응할 것이고, 정신도 몸에 따라와 줄 것 같았다. 잠을 못 자는 게 가장 큰 고통이었기에 나는 새벽 5시 30분에 기상했고, 대망의 아침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침 운동의 장점은 내가 그날 하루의 시작을 선택할 수 있고, 나의 하루를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퇴근 후 하루를 마감하는 운동도 물론 좋지만, 일단 기력이 다 한 상태에서 사람이 붐비는 헬스장을 가는 것조차가 스트레스로 연결될 때가 많다. 퇴근 후의 어쩔 수 없는 약속, 갑작스러운 야근, 그날의 컨디션의 정도에 따라 운동 참석의 변동의 이유가 생겨버린다. 그 말은 내가 나의 하루를 제대로 통제하기 더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어지간한 미묘한 변화로는 몸과 정신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가장 충격적인 상황을 나에게 던져주는 것이다. 나에게 충격은 아침잠 줄이기였고, 나는 3주간 성공해내고 있다. 나의 선택이 매일매일을 성공적인 하루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내가 나의 하루를 통제할 수 있다는 그 느낌은 정말 단단한 자존감을 선물해 주기도 한다. (추가로 밤 9시만 되어도 졸린 몸 상태를 내게 선물해준다.)
그렇게 그날 이후로 삼주가 흘러갔고, 나는 이 밤 어지러웠던 공황장애의 극복기를 쓰고 있다. 나처럼 힘드신 분들이 있다면, 꼭 자신의 하루를 제대로 통제해보길 추천한다. 그리고 완벽함보단 자신의 마음에 몸 상태에 집중해보시길 바라본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