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이유

by 수빈 Soobin

작은 책을 하나 집는다. 정신없이 집을 나선다. 책을 가방 속으로 넣는다. 역에 도착하면, 문 앞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린다. 가만히 있자니 심심하다. 가방에 넣어둔 책이 생긱난다. 꺼내서 표지를 본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좋은 책을 고른 것 같다. 속지를 슬쩍 만져보고, 훑어본다. 저 멀리 지하철이 들어온다. 신경 쓰지 않는 듯, 빠르게 눈을 움직인다. 문이 열리면 천천히, 빠르게 들어간다.



오, 자리가 있다. 기쁜 마음을 감추고 천천히, 신속하게 앉는다. 약간의 소음 차단을 위해 이어폰을 낀다. 이제,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펼친다. 지하철인데도 불구하고 꽤 집중이 잘된다.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페이지를 넘긴다. 25분에서 30분 간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정신이 들 때가 있다. 그때쯤 목적지에 도착한다. 읽고 있던 책에 북마크를 끼우고, 가방에 다시 넣는다. 할 일이 끝나면 카페로 간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그 날 지하철에서 읽은 책을 다시 훑어본다. 미처 적지 못한 메모 거리들을 독서노트에 옮겨 적는다.



나는 지하철 독서를 좋아한다.


버스도 아니고, 자동차도 아니고, 지하철에서만 유일하게 독서가 잘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런 게, 지하철은 멀미가 안 난다.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서서 갈 수 있을 정도로 흔들리지 않는다. 열차 안이 그렇게 시끄럽지도 않다.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 또각또각, 뚜벅뚜벅, 터벅터벅.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소리, 이번 역을 알려주는 친절한 언니 목소리 등. 여러 잡음이 섞인 소리를 들으며 읽다 보면 은근히 집중도 잘된다.


지하철에서는 주로 종이 책을 읽는다.


지하철에서는 주로 종이책을 읽는다. 그 이유는 2가지가 있는데, 일단 전자책에 아직 적응을 못했다. 작심하고 어플을 켜야 읽는다. 전자책 어플을 이용하면 메모도 할 수 있고 하이라이트 표시도 할 수 있지만, 뭐랄까. 종이책처럼 아무 생각 없이 꺼내서 읽게 되진 않는다. 아직 습관이 안됐다.


두 번째 이유는 종이책을 읽는 게 있어 보인다(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내가 책을 읽는다는 것이 티가 난다(다시 말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면 괜히 신경 쓰여서 잠도 안 오고 핸드폰도 안 하게 된다. E북은 전용 단말기가 아닌 이상 카톡도 하고 별스타그램도 할 수 있지만, 종이책은 아니니까(읽었던 곳을 접어놓고 가방 속에 들어있던 핸드폰을 굳이 꺼낼 만큼 바쁘진 않다). 그래서 전자책 보다 더 많은 양을 읽게 되는 거 같다. 마음 한 편으로는 내가 책을 읽는 것을 사람들이 보고 따라 했으면 좋겠다. 책 덕후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20180720_181954_Original_100.jpg 북마크가 잔뜩 붙은 책. 가끔 지저분해보인다ㅠㅠ

지하철에서는 아무래도 풀 집중이 힘들다 보니, 주로 내용이 가벼운 책을 읽는다.(무게도 최대한 가벼운 걸로..) 또 평소에 책을 읽을 땐 따로 메모를 하거나 줄을 긋는 편이지만, 지하철은 필통을 꺼내서 메모를 하기엔 불편하다. 그래서 도서관 책은 인덱스용 메모 스티커를 살짝 붙여 그 위에 짧게 적어놓고, 내 책이면 페이지 끝을 살짝 접어 놓는다. 그런 다음 편한 장소에서 접어둔 곳을 펼쳐 독서노트에 옮긴다.


책을 읽기엔 무척 피곤한 날도 있다. 가방에 늘 책을 들고 다니지만 오늘은 눈꺼풀이 너무 무겁다거나, 책을 읽기 싫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땐 팟캐스트를 듣거나, 전자책을 음성으로(Text To Speech, 줄여서 TTS) 듣곤 한다. 신기하게도 매번 빠져든다. 그렇다고 매일 들으면 가끔 듣는 것만큼 집중이 잘 된다거나, 흥미를 느끼진 못한다(지극히 내 생각이다). 이상한 일이다. 전자책을 음성으로 처음 들으면 적응이 안될 수도 있다. 어색한 띄어쓰기와 숫자 읽기, 무미건조하고 기계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거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벼운 책이나 에세이 종류를 듣다 보면, 눈으로 읽는 것보다 더 깊은 여운을 받기도 한다. 어쨌든 활자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술이 나온 만큼,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자.




어떤 곳에서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카페, 집, 지하철 등, 다양한 장소에서 독서를 하다 보면 그 공간의 분위기를 알게 되고, 그에 어울리는 책 또한 알게 되니 말이다. 오늘 내 기분과 상황에 따라 집을 나서기 전, 지하철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빠르게 판단할 수도 있다(전자책만 읽는다면 이런 고민은 나중에 해도 되겠지만). 매일 집에서나 도서관에서만 책을 읽어봤다면, 한 번쯤은 지하철에서 읽어보자.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소리, 안내원의 목소리, 덜커덩하는 소리와 함께 활자를 읽어보자. 집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독서의 매력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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