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하면서 생긴 뿌듯한 변화

2018.08.22

by 수빈 Soobin

나는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하는 편이다. 일찍 도착해서 하는 일은 주로 2가지,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글을 쓰거나), 근처 서점에서 읽을 책을 사거나. 서점에서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한 번에 1-2권만 살 것, 평대에 놓인 책은 제일 나중에 구경할 것 등등. 지킬 때보다 지키지 못할 때가 많아 사실상 허울뿐인 규칙이다. 지키지 못했을 때는 나름 일탈했다고 좋아하고, 지켰을 때는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한다. 이건 뭐, 자기합리화의 끝판왕이다.


매번 책을 사면서 느끼는 거지만, 점점 책을 고르기가 힘들어진다.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예산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문학 코너에만 가면 늘 머리를 쥐어 싸맨다. 사고 싶고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돈이 없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문학 코너에서 한참을 고민 중이었다. 첫 번째로 집은 책은 이상 작가의 《권태》라는 작품이었다. 학창 시절, 《날개》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기에 무작정 집었다. 스르륵 훑어보니 날개에서 봤던 특이한 문체가 있었다. '일단은 이거 픽!'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옆으로 즐비한 수많은 책들이 눈에 띄었다. 같은 시리즈의 다른 책들이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은 물론, 내가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의 저서도 있었다. 헤르만 헤세라니, 바로 구매를 결심했다. 이제 단 한 권의 책이 남았다.



우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회색 노트》를 집었다. 찾아보니 알라딘 별점은 9.2점으로 높은 편이었고, 성장소설이라는 점과 알베르 카뮈가 극찬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옆에 있는 책은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으로, 헤르만 헤세가 추천한 책이다. 무엇보다 '불확실한 삶과 죽음의 그림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문구가 인상 깊었다. 최근 들어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아져서 그런 듯했다. 그 옆으로는 헤밍웨이의 《깨끗하고 밝은 곳》, 프란츠 카프카의 《법 앞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 등이 있었다. 한 권 한 권 탐나지 않는 책이 없었다. 이 책은 카뮈가 추천했고, 이 책은 헤세가 추천했고, 이 책은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고르니 끝이 없었다. 결국 약속 시간이 다 됐고, 친구가 골라준 끝에 서점에서 나올 수 있었다.


예전의 나라면 그럴 일이 없었다. 책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평소에 서점을 별로 가지 않았을뿐더러, 가더라도 이미 살 책을 정해놓고 가는 편이었다. 책 덕후가 된 지금은 내 집 드나들 듯 서점을 간다. '이번에는 어떤 책이 나왔을까' 기대하며 신간 코너를 구경하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저장해 둔 책을 찾아보며 살지 말지를 결정한다. 오히려 책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책 고르는 게 어려워졌다. 세상엔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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