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진 않지만 나의 하루는 꽤 번거로운 일들로 구성되어 있다. 장을 볼 땐 성분표를 보며 동물성 성분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레토르트 식품이나 배달 음식을 먹으면 편하지만 밥을 직접 해 먹는다. 햇반을 쓰면 내가 좋아하는 흰 쌀 밥을 1분 만에 먹을 수 있지만 이제는 햇반을 쓰지 않는다. 대신 엄마가 미리 해 놓은 잡곡밥을 3분 정도 데워 밥그릇에 덜어 먹는다. (어무니 감사해유..) 라면을 먹을 땐 냄비에 라면 수프를 탈탈 털어 넣은 후, 수프 봉지를 물에 한 번 헹궈 버린다. 식물성 두유 팩에 붙은 플라스틱 입구 부분은 일일이 가위로 도려내 따로 버린다. 팩은 종이에, 입구 부분은 플라스틱에.
외출을 할 땐, 면으로 된 파우치를 들고 부엌으로 가 수저와 다회용 빨대를 집어넣는다. 방으로 들어가려다 "아, 깜빡할 뻔했다"라며 텀블러도 챙겨 준다. 그런 다음 베란다로 가 지난번에 쓰고 빨아 놓은 손수건과 마스크를 챙긴다. 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 쓴 면 마스크와 손수건을 빨고 빨대와 텀블러를 싱크대에 놓는다. 텀블러에 물을 가득 담고 식초를 3방울 넣는다. 빨대는 전용 솔로 슥삭슥삭 닦는다.
내 일상에 번거로운 일은 끝이 없다. 가끔은 이 모든 것들이 내 몸을 타고 올라와 어깨를 짓누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번거로운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이 모든 번거로움이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유의미한 일들은 대체로 번거롭다.
나는 재작년부터 '편리'를 버리고 번거로움을 자발적으로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 시작에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왜 편함을 추구하는가? 나는 어째서 편하게 살아야 하는가? 사실 편함에는 딱히 큰 이유가 없었다. 그냥, 편하면 좋았다. 그렇다면 왜? 왜 편하면 좋지? 내 소중한 시간을 벌어주니까. 편의가 벌어준 시간으로 뭐하는데? 그러게... 유튜브 보기?
제대로 분리배출을 하지 않아 쓰레기가 쌓이고, 땅이 오염되고, 무고한 동식물이 죽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다치고 과로하는 게 유튜브를 보는 것보다 중요할까? 비단 유튜브가 아니라 무엇을 하든 그 어떤 것도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그때부터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는 세상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편리에 집착하게 된 건 아닐까. 나는 스마트폰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리라 생각했지만, 지금의 난 스마트폰 없이는 1분도 채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기술은 소중한 우리의 시간을 더 나은 곳에 쓰라면서, 정작 또 다른 제품과 서비스로 다시 돌아오게 만든다. "편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비효율적인 건 딱 질색이야"라는 말은 순전히 내 생각에서 비롯된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생각일까?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세상은 탄탄대로지만 반대로 누군가에게 세상은 낭떠러지다. 오르고 올라야지만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곳. 이미 세상이 불공평하고 불합리한데 모두가 빠르고 편하게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잊은 채 느린 이들에게 역정을 낸다. 빠름의 기준도, 느림의 기준도 전부 우리 멋대로 정한 일인데 그로 인해 차별과 소외가 발생한다.
그러니 부디, 우리들의 일상이 지금보다 더 번거로워지기를 바란다. 우리가 누려온 편리의 진실을 깨닫고 시스템에 저항하기를 바란다. 세상은 딱 그만큼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