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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숲 Mar 16. 2024

세상에 불쌍한 척을 해볼까 1

Who am I?

 '우리의 특별한 오늘에게 전합니다. 먼 훗날 지금 이 순간을 되돌아보았을 때 분명 아름다운 빛을 띠고 있을 것이라고.' 


책상에 앉아 벽을 바라보면 저 글귀가 적힌 엽서가 팔랑팔랑 붙어있다. 새해가 시작되고 나는 하루하루를 열심히도 버리고 있다. 다이어리 첫 장에 쓴 글도 '하루를 살고, 하루를 버리자'이다. 그러니까, 저 글에 반항하듯이 특별한 오늘은 없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인 걸까, 아니면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살고 미련 없이 뒤를 돌아보지 말자였을까. 처음 다이어리에 쓸 때는 후자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버려도 미련이 없을 정도로 온 마음을 다해 하루를 살아내자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두려움에 어쩌지 못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버려내고 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버려낸다. 억지로.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죽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하지 않을 때, 그러니까, 요가 수련을 하지 않거나 수업을 하지 않거나, 책을 읽지 않거나, 그런 상태일 때, 공허하게 죽음을 동경한다. 어느 것 하나 똑똑하게 살아내지 못한 것만 같은 내 삶을 자책하며 왜 계속 살아야 하는가 의문을 가지고 그렇다고 스스로 어떻게 이 삶을 등지는 법은 몰라서 그저 계속 눈동자를 멍하게 두고 그저 가야 하니까 걸으면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현재 왜 그리도 괴로워하는 것인가?


사실은 엄청 단순하다. 열심히 살고 싶지 않은데 열심히 살아야만 하고, 그냥 알아서 척척 이루어지면 좋겠는데 그저 바람만으로는 안 되는 법이니까. 지나친 간섭은 싫지만 또 외로운 건 싫어서 자꾸 많은 사람들에게 애정을 원하니까.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한 그 마음. 버겁다. 더불어, 계속해서 나를 증명해야 하는 날들이 지치게 한다. 관성처럼 돌아가게 되는 무기력함. 


나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자꾸 돌아가봐야 진부한 반복일 텐데 어김없이 또 돌아보고 만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며 배우를 꿈꿨다. 그러니까, 사랑받고 싶었던 거겠지. 그러니까, 내가 어딘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 그렇게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지만 "연극을 해요" 혹은 "제 직업은 배우입니다"라고 하면 갑자기 사람들 앞에 모습이 드러나는 효과 같은 것을, 그러니까, 그 마법의 말 같은 것을 내뱉어야 내가 조금 특별해지는 것 같아서. 이 마법의 말은 효능이 좋아서 나이가 들고 들어 또래들에 비해 거지 같은 금액을 벌어도 이해가 되고, 친구들이 불편해할 만한 이슈를 꺼내도 이해가 되고("우리 중에 그런 생각하는 사람 너밖에 없어", 실제로 친구에게 들었던 말), 조금 튀는 행동을 하거나 목소리가 커도 바로 이해를 받는다. 그냥 사람들 앞에서 멋진 옷을 입고 싶은 것처럼, 딱 그 정도의 마음으로 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더 자세히 내 삶을 들여다보면 진짜 이것만은 이유가 아닌 것은 맞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배우를 통해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은까. 그럼에도 최근에 나는 연기를 향한 나의 나태함의 이유를 쫓다가 연기가 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못하겠어"라고 뱉는 순간 명치끝에 불편하게 자리 잡은 것들이 터져 나왔다. 진심으로 하고 싶지가 않아 졌다. 근데 막연하게 그런 순간이 오면 개운할 줄 알았는데 이상한 두려움과 좌절과 슬픔이 뒤섞이며 눈물이 터졌다. 복합적인 감정이었겠지만 그 미련함을 오래도 끌고 왔다는 사실과 이제 정말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가 주였을 것이다. 


나는 정말 무엇을 해야 하는가.

티브이에서 열심히 Who am I를 노래하는 장발장을 보면서, 저 작품이 저렇게 짜증 나는 작품이었나를 생각하면서, 뮤지컬로 저 작품을 보니 저들의 고통이 갑자기 너무 한가로워 보여서, 아 한때는 뮤지컬을 사랑했는데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생각하면서, 그래서 이 대한민국에서, 지구에서 나는 어떤 먼지라는 것이란 말이냐. 어차피 너무 자그마한 존재라는 것도 알겠고, 매일 고민을 해봤자 해결되는 건 없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서 그 작고 작은 일상을 내가 무엇으로 견뎌내야 한다는 것일까. 그저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건데 나는 그 돈을 무엇으로 벌 수 있느냐 말이다. 어차피 배우를 꿈꾸면 벌지 못하는 돈인데, 이제 배우를 하지 않으면 돈이라도 잘 벌 궁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다가 돌고 돌아 아, 왜 계속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통으로 돌아온다. 어차피 나의 선택은 늘 좋지 않았고, 불평은 늘어놓지만 결국 그것을 반복할 뿐이고, 나의 최측근들은 내가 어딘가 한심해 보이지 않을까? 라며 또 타인이 바라보는 나를 생각한다. 


이렇게 괴로워 하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이 세상아, 라며 걸어보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냉혹한 현실의 맛. 그래서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다시 또 하루를 버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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