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 지니는 힘에 대하여

혼자라서 얻게 되는 것들

by 숲피

고독력은 혼자 있을 수 있는 힘이라 했다.


나는 혼자서도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얼마 전, 가까운 친구와 어느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다 문득 이런 말이 내뱉어졌다. 취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다.


간혹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무의식에 떠다니던 말들이 문득 내뱉어지는 순간이 있다. 나에게만 나타나는 메커니즘일런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내뱉어진 ‘말’은 어떤 힘을 얻어 더 깊게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되고, 생각을 통해 더 센 힘을 지닌 ‘글자’로 적어 내려진다.




혼자인 것만큼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것이 또 있을까.


어렸을 적 나는 마냥 밝고 웃음이 많은 아이였다. 기억이 허락하는 순간보다 훨씬 이전부터 낡고 커다란 2층 집에서 열 명이 넘는 식구들과 복작거리며 자랐던 탓인지 혼자보단 여럿이 내게 어울리는 편한 옷이었다.


하지만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하고부터는 혼자인 것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내가 지내는 공간은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크기로 줄어들었고 내가 만들어 내는 소리만이 좁은 방 안을 메우는 유일한 소리일 뿐이었다.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지낸 첫 일 년 간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들떠 우글거리고 북적거리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연 순간 엄습해 오는 어둠과 적막은 아직까지도 몸서리쳐질 만큼 나를 힘들게 하던 것들이다.


당시 내가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내린 처방은 단순했다. 최대한 밖에서 보내는 시간을 많이 만들자. 강박을 가지고 다이어리의 빈 공간에 어떤 말이라도 욱여넣듯, 매일을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해 애썼고 그만큼 나는 타인에게 의존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억지로 남들과 시간을 보낼수록 나의 빈 시간들은 채워졌지만 속은 더욱 공허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Photo by Matthew Henry on Unsplash



외로움은 그때의 나에겐 ‘나쁜 감정’이었다.


외로움은 독이 되어 불만과 억울함으로 표출되었다. ‘왜 우리 집은 서울에 있지 않아?’, ‘우리 집이 만약 서울에 있었더라면 나는 매사에 덜 전전긍긍하고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등과 같은.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이 없듯, 쓸 데 없이 어두웠던 시간은 없다. 가장 어두운 밤 어딘가에는 항상 빛나고 있는 작은 빛이 있으며, 그 빛을 통해 신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을 필요에 따라 처방하기 위해서.


이십 대 초입의 어렸던 내가 그토록 외로움이란 감정 때문에 힘들었기에 지금의 나는 홀로 있는 시간이 전혀 두렵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유약했던 내가 조금이나마 단단하고 진해질 수 있었던 건, 지난한 밤을 건너왔기 때문이다.




사실 외로움은 ‘좋은 감정’이다.


독일어로 외로움을 뜻하는 'Einsam'은 '자기 자신과 하나 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외로움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힘을 주기 때문이다.


Photo by Vidar Nordli-Mathisen on Unsplash



이제는 오히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달갑기까지 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반길 줄 알게 되었고 그 시간을 위한 자리를 미리 내어 두는 습관마저 생겼다. 그리고 자연스레 혼자서도 무슨 일이건 자연스럽게 할 줄 알게 됐다. 혼자서 어떤 주제이든 글을 써내려 가고, 책을 읽고, 막연히 멀리 했던 시를 접하고, 그림을 그리고, 보고 싶었던 전시회를 가고,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다 보니 내 성향과 가치관, 성격, 어떤 상황에선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지 등과 같은 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혼자 있음'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지 차곡차곡 알아가는 중이다. 이것은 자취가 내게 남긴 것들이다.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리고 힘들었던 이십 대 초입의 나에게는 미안한 말일지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혼자 있길 참 잘했다.


당신도, 나도. 혼자 있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