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무언가가 -그 무엇이 됐든- 항상 많고, 또 높다. 도시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진하고 촘촘한, 아마도 검정에 가까운 회색일 거다.
대학교에 가기 위해 처음 상경했을 때, 이 곳은 그야말로 별세계였다. 이 밀도 높은 도시 위에 해가 고개를 디밀기도 전에 단장을 마친 사람들이 복작대며 하루를 시작했고, 밤늦게까지 지치지도 잠들지도 않는 도시였으니까.
처음에는 촌스럽고 어리숙하기만 했던 나도 차츰 이 도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서울을 제외한 다른 어딘가에서 산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는 내가 있다. 그렇게 나는 그 좁지만 단단했던 '10대'와 '고향'이라는 우물에서 벗어났으니 세상을 다 알아버린 줄 알았다.
그러던 중 나는 전공이었던 영어를 보다 영어 사용이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익히기 위해 꼬박 한 학기를 미국에서 보내게 된다. 나와 같은 교환학생들, 유학생들, 이민자들, 현지인들, 여행자들….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각기 다른 색깔의 얼굴들, 거리를 걸으면 숱하게 들려오는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언어, 그들의 생각, 각자의 세계. 전 세계가 그 안에 있었다.
그곳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엔 다양한 삶이 있음을 알았다. 어쩌면 머리맡의 별만큼이나. 그때의 신선한 충격은 한국에 돌아온 지 반년 만에 다시금 짐가방을 싸들고 떠나는 계기가 됐다.
수개월간 일했었던 호주의 한 회사는 나를 포함한 한국인 7명을 제외하고는 약 50명의 호주 현지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광고 회사라는 특성도 있었겠지만 호주인들의 일하는 방식은 무척 자유로웠다. 일하는 시간에 문득 신나는 댄스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며 흥을 돋우기도 했고 일주일에 하루는 맥주를 마시면서 일을 하는 게 허용되기도 했다.
자유로운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그들은 그 자체로 자유로웠다. 일을 하는 시간에는 일에 온 힘을 쏟으면서도 근무 시간을 제외하고는 취미 생활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온 힘을 쏟았다. 마치 온오프 스위치를 달고 있는 사람들처럼 일하는 시간과 개인 시간엔 각각 다른 불이 켜졌다. 내가 이제껏 한국에서 봐오고 들어왔던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사람들이 직장을 대하는 방식과는 사뭇 달랐다. 호주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내 생활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그 둘은 결코 같은 말이 될 수 없었다.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 가족 중심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무능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과 가족, 일과 취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도 아니다.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종종 한국에서는 이것이 선택의 문제처럼 여겨지곤 한다.
호주 사람들에게 일이란 사회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일이 끝난 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더욱 소중한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 이토록 큰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같은 팀의 매니저님은 한국에서의 대기업 생활을 정리하고 호주에 정착했다. 그는 가정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분으로, 지난 주말에는 가족들과 어디를 갔다 왔는지, 아이들에게 어떻게 생긴 그네를 새로 만들어 주었는지, 일이 끝난 후에는 친구네 가족들과 다 함께 모여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를 나에게 종종 말해주곤 했다.
그런 그가 한국에 갈 때마다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는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회사와 상사를 욕하고, 신세를 한탄하고, 저마다의 힘듬을 토로하며 술 한잔에 한숨을 씻어 보낸다. 그 어려운 취업이라는 문턱을 넘었지만 일은 생각 같지 않고 결혼, 출산, 육아, 내 집 마련 등 사라지지 않는 걱정의 다음 단계들이 어느새 눈앞을 가린다.
계절이 바뀌면 철 지난 옷은 정리하고 계절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듯이, 우리는 나이가 차면 '나이에 맞는 옷'을 자연스레 꺼내 입어야만 한다. 사회가 정해준 데드라인에 맞춰 일련의 모든 과업들을 완수해야 한다. 그래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수 있고 남들의 걱정을 가장한 무시의 눈초리를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은 계절이 오는 것처럼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는다. 저마다의 속도와 방식이 다른데 남들의 보편적인 속도에 맞춰서 걷다 보니 자신에 대한 이해가 없다. 계속해서 남 눈치가 보이고 하나의 과업을 완수해도 기쁘지가 않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들 속에 매몰되고 그 안에서 개인은 탈이 난다.
그렇기에 이 땅에 왔다가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성큼 이해가 됐다. 여행, 워킹 홀리데이, 학교 진학 등 각자만의 사정과 이유로 호주에 왔다가 호주의 자연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 그들은 정해진 길을 걷기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말한다. 비록 불안하지만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고. 과연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
살아가는 방식이 어느 하나 같은 게 없을 정도로 다른 이들이 내게 전해 주는 메시지는 같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어.
내가 미국과 호주 두 나라에서 보낸 시간들로 얻은 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들-예를 들면 영어, 이력서에 쓸 만한 한 줄짜리 스펙-과는 좀 다르다. 물론 영어도 조금 늘었고 취업 준비 당시 이력서에 한 줄 써넣긴 했다. 당시에는 나도 내가 얻은 가장 큰 것들은 그것들인 줄 착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것은 그런 객관적인 지표들이 아니었다.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나가는 내가 만난 수십수백의 사람들. 그 건강한 생기가 넘치던 사람들로부터 나는 내가 모르던 세상을 간접 경험했고,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가슴으로 알았다.
그렇게 쌓인 경험들은 기폭제이자 도화선이 되어 이제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아내어 살아내고 싶은 게 인생의 제1 목표가 됐다. 도합 1년의 그 시간들이 알게 모르게 내 안에서는 경험이라는 글자로 새겨졌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 위한 도전의 자양분이자 힘이 된다.
혹시 지금 타인의 인정과 기대에 맞춰 살아가는 것에 짙은 허무를 느끼고 있다면. 사회가 정해 놓은 계단을 밟아오는 것에 지치고 신물이 난다면. 어쩌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하는 일은 남을 이해시키는 일이 아니라, 나를 이해시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