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보폭을 무시한 채 세상의 보폭에 발맞추느라 나는 가랑이가 찢어졌다
나는 한 발짝씩 늦다. 끓는 주전자를 만져보고서야 뜨거운 줄 아는 아이처럼, 항상 겪고 나서 깨달았다.
매번 그랬다. 지나고서야 그 순간이 아무리 떼를 써도 다신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인 줄 알고, 온갖 걱정들로 수일의 밤을 지새우고서야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무엇이든 일단 해보고 나서야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중간쯤은 되어야지. '메이저 그룹' 안에는 들어야지.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정도로 성공한 사람은 되어야지. 남들이 다 하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하고 살 정도는 되어야지.
남들이… 남들이. 내 성공과 행복의 기준은 온통 남이었다. 남들이 생각하는 나. 성공한 나. 행복한 나. 기준이 밖에 있다 보니 흔들리는 일이 많았다. 이 사람의 기준, 저 사람의 기준. 그 모든 기준에 나를 맞추려다 보니 온통 흔들리고 마는 내가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정작 헷갈렸다.
남들이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대기업, 높은 연봉, 비슷한 수준의 배우자…. 그것들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대다수의 사람들이 좇는 꿈을 좇았다. 옆사람을 곁눈질로 열심히 살피면서. 남들이 필요하다기에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았다. 학점, 영어 점수, 대외 활동, 인턴, 자격증 등등. 시장에서 잘 팔리기 위해 나를 표현하는 숫자를 높여나갔다.
내 이력서를 채워줄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했던 그 순간들이 전부 불행했던 건 아니지만 딱히 행복하지도 않았다. 내가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하는 모든 일들은 내게 행복도 불행도 주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버린 시간만 있을 뿐이다. 남들 다 한다는 이유만으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했던 모든 것들은 '입사'라는 그 목표를 이뤄낸 순간 의미를 잃었다. 해야 하는 이유, 내게 갖는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막연히 좇는 것들은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 보니 취업 준비에만 매달렸던 시간들에는 실리는 감정이 없다. 색깔로 치자면 회색, 숫자로 따지면 0 정도의. 다채롭지도 않고 고저도 없다. '아, 그때? 힘들었었지.' 정도에서 끝나버린다. 힘들었지만 색깔이 없고, 그렇다고 해서 '-(마이너스)'도 아니다.
첫 직장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에도 왜인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아, 내가 취업을 했구나. 그럼 이제 일 년의 며칠을 제외하고는 일을 하면 되는 건가.' 정도의 생각이 스쳤다. 남들이 들으면 알만한 기업에 다니게 되었지만 공허했다. 내가 좇던 목표를 이루어 냈지만 허공에 붕 떠버린 기분이었다.
기계처럼 일을 하면서도 함께 일하는 좋은 사람들 덕분에 웃기도 많이 웃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들이 다 걷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증명되고 단정한 길을 따라가는 게 과연 인생에 정해진 해답 같은 걸까?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살아오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었다.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질문이었는데도 '해야만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질문할 겨를도, 필요도 없었다. 자신을 탐색하고 알아가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은 사치일 뿐이었다.
고등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당연하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엔 '좋은'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취업 준비를 하는 게 당연하다. 취업을 하고 나서는 내 생활을 포기한 채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주변엔 온통 당연한 일들 투성이다. 이제껏 당연하다고 믿어 왔던 것들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던가. 의구심은 정체를 낳을 뿐이고, 흔들리는 것은 곧 나약한 것이었다. 방황하는 순간 뒤에 남겨진 자신을 마주할까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해야 한다'라고 당연시되는 모든 일들을 '왜' 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은 던지지 않은 채 남들이 하기에 일단 하고 봤다. 나를 돌아볼 여유와 이유 따위는 없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해야 하는 것을 했는데도 어째서 개인은 행복하지 않은지 의구심이 들었고 그 이유가 사무치게 궁금했다.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은가. 해야 하는 일을 해냈음에도 만족스럽지 않은가.
그때 나는 책에서 답을 구하려 했다. 실제로 많은 책들을 읽었다. 일이 끝나면 교보문고에 달려가 손이 가는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고 있었다. 귀를 기울여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말한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다 해도 그리 큰일이 생기지는 않더라고. 그러니 각자가 원하는 삶을 잘 살길 바란다고.
이제 내 인생의 제1 목표는 원하는 삶을 찾아내고 살아내는 것이 됐다. 그리고 세상엔 내가 소망하는 바를 진즉 이루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도 수두룩하다는 걸 알았다. 누가 뭐라고 하든 주위의 시선이 어떻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못 먹어도 고!"를 외칠 수 있는 사람들.
나는 믿는다. 내가 유별나고 특별하지 않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들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내가 동경하는 그 누군가들,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패를 과감히 던져버리고 세상에 뛰어든 그 누군가들도 사실은 나만큼이나, 어쩌면 나보다 더 전전긍긍하고 걱정과 두려움 몸서리쳤을지도 모른다.
결국 원하는 삶을 이루어 내는 한 끗 차이는 바로 실행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다. 생각만 하고 실현하지 않는 것은 후회만 남길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몇 번을 더 흔들린 끝에 고생 끝에 들어간 첫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나이가 들어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20대의 순간들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는 결심을 더욱 단단히 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그 뻔하고도 고루한 프레이즈에 적극 공감한다.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도 봤고 피해도 봤고 숨어도 봤지만 막상 선택하고 나면 별 것 아닌 것. 중요한 것은 선택 그 자체가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내가 내린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 되게끔 노력하고, 그 결과에 끝까지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그저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떠난다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모른다.
떠나지 않는다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결코 아니다.
이제껏 그랬듯, 나는 겪고서야 깨닫는 사람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내가 익숙한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졌을 때 오히려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떠나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한 발짝 늦게 깨닫고 마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깨닫는 것이 있을 거란 사실에 감사하며. 당시가 아니라면 후에 수백 번을 되새기고 곱씹고서라도 어떠한 의미를 찾을 수 있길 기도한다.
그리고 그해 12월, 나는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땅을 두 발로 밟고 섰다.
미국의 시인 사무엘 울만은 그의 시 <청춘>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하고 싶고 기필코 해내고 싶은 것,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이상과 열정이 있는 그때 비로소 청춘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