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타나루의 툴룸에서
툴룸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카리브 해안에 있는 도시로, 국제공항이 있는 칸쿤에서는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굉장히 좋다. (듣자 하니 툴룸에도 곧 공항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오는 여행자라면 열이면 열 방문할 정도로 툴룸은 멕시코의 필수 여행지가 됐다.
툴룸이 굉장히 매력적인 여행지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휴양지’하면 떠오르는 청록빛 아름다운 바다와 언제든지 바다에 뛰어들 수 있는 일 년 내내 따뜻한 열대 기후, 대지를 뒤덮고 있는 열대 밀림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해안가의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고대 마야 유적지, 그리고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지형인 ‘세노테(cenote)’까지. 이러한 다채로운 특성 덕분에 툴룸은 멕시코의 고대 문명도 탐방하고, 다이빙, 스노클링 등 수중 액티비티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겐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고대 툴룸은 멕시코 영토의 동쪽, 해가 떠오르는 곳을 마주 보고 있기 때문에 ‘새벽의 도시’라고 불렸다. 햇빛이 강렬했던 어느 아침, 숙소에서 대여해 준 자전거를 타고 툴룸의 유적지를 향해 힘차게 발을 굴렀다. 개장 시간 전인데도 매표소 앞에는 벌써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툴룸의 인기를 실감하며 유적지에 입장하니 눈앞에 드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바다와 마주한 가파른 절벽 위에는 유적지의 잔해가 여전히 바다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 카리브해의 살아있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채 그와 대조되는 오래된 역사 뒤에 남겨진 낡은 잔해. 그 위를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역사를 듣고 걸으며, 기념사진을 남긴다.
절벽에 서서 내려다본 카리브해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뜨겁게 반짝이고 있었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내가 지금 카리브해의 뜨거운 절벽 위에 서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었다. 거대하게 일렁이는 물결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바다 한가운데 하얀 띠를 두른 듯 줄지어 부서지는 하얀 거품이 보였다. 툴룸의 바다 아래 잠자고 있는 거대한 산호초 지역, 메소아메리칸 배리어 리프였다.
메소아메리칸 배리어 리프(Mesoamerican Barrier Reef)는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와 벨리즈, 과테말라, 온두라스의 연안을 따라 뻗어나가는 메소아메리칸 리프는 무려 1,000km에 달하는, 호주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해저 산호초 지역이다. 바로 이 메소아메리칸 리프가 툴룸을 지나는 것이다.
메소아메리칸 리프는 해초와 산호초, 맹그로브, 모래 언덕, 해안 습지 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해양 생물들에게 소중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그래서 세계 각지의 모험가들이 스노클링이나 다이빙 등 수상 레저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 변화와 해안 개발, 남획 때문에 이곳의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툴룸도 피해 갈 수 없는 환경 문제로 인해 해변으로 밀려 들어오는 해초 더미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툴룸의 해변가에는 이를 보여주듯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해초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특유의 비린내가 풍겼고 일꾼들은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해초 더미들을 긁어모아 한 데 옮기고 있었지만 파도에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해초의 양에 비하면 턱없이 일손이 부족해 보였다. 끝나지 않을 걸 알면서 해내야 하는 괴로운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툴룸에서 해안가를 따라 차로 약 30분 떨어진 곳에는 아쿠말이라는 작지만 아름다운 해변 마을이 있다. 아쿠말(Akumal)은 마야어로 ‘거북이의 장소’를 의미하는데, 그 이름에 걸맞게 멕시코에서 바다거북과 함께 수영하기 가장 좋은 장소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툴룸의 시내에서 콤비를 타고 아쿠말에 도착해 정류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 루이스를 만났다. 루이스는 당연한 듯 우리를 락커룸으로 안내했다.
“자, 여기. 키 받아. 중요한 물품은 락커에 넣고 나오면 돼.”
“아, 우리는 짐을 안 맡겨도 될 것 같아. 가방 들고 가도 되지?”
“…응? 그럼 짐을 모래사장 위에 둬야 하는데... 우리는 보트를 타러 가는 게 아니야. 알고 있는 거지?”
“?!?!? 전혀 몰랐어. 그럼 우선 짐을 넣고 올게.”
“응. 여기는 바다 생물 보호구역이기 때문에 선크림은 바르면 안 돼!”
알고 보니 우린 당연하게도 보트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 스노클링을 하는 줄 알고 짐을 보트에 두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었고, 루이스는 혹시나 우리가 오늘 보트를 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확인시켜 준 것이었다. 일단 알겠다고는 했지만 투어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온갖 궁금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보트를 안 타면…? 직접 걸어 들어간다는 거야? 그럼 거북이는? 거북이가 바로 앞에 있다고? 그렇게 얕은 곳에?’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물음표를 지우지 못한 채 우선 루이스의 안내에 따랐다. 락커룸은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아쿠말을 찾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락커에 짐을 보관하고 나오니 루이스가 구명조끼와 스노클 장비를 나눠 주었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바다를 향해 난 길을 따라 걸어가 드디어 모래를 밟았다. 그리고 곧 우리의 궁금증은 말끔하게 해소되었다.
하얗게 빛나는 백사장 너머 넘실거리는 청록빛 바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와 대비되는 쨍한 주황빛 등껍질을 입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얼른 고글을 착용하고 바닷물에 들어가 머리를 박자 사람들의 둥둥 떠다니는 다리 사이로 커다란 등껍질을 입은 바다거북들이 보였다. 우리도 루이스를 따라 이동하며 바닷속을 누비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 바다거북과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많고 많은데 왜 꼭 아쿠말에서 스노클링을 해야 하느냐고? '아쿠말 바다거북 스노클링'이 다른 스노클링과 구별되는 특별한 점은 바로 보트를 타고 먼바다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해안과 바로 접한 바다가 바로 바다거북의 자연 서식지로, 바다거북과 함께 수영을 하려면 그저 뭍에서 걸어서 바닷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쿠말의 맑고 투명한 물아래에는 바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가 있었다. 대왕 가오리가 흙바닥에 코를 박고 헤엄치고, 바다거북은 둥둥 떠다니는 해초를 낚아채 우물대면서 또 다른 식사 거리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대고 있었다. 바닷속 주인들은 자신의 집에 놀러 온 불청객들을 곁눈질로 흘끔 대다 가뿐히 무시한 채 자신들의 일에 집중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