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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피 Jul 23. 2023

요즘 멕시코 원주민의 삶

치아파스의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서

멕시코 중부의 아름다운 식민 도시,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San Cristóbal de las Casas)'는 고도 2,200m에 위치한 멕시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민 도시 중 하나로, 많은 여행객들이 고산지대가 갖는 특성 중 하나인 연중 온화한 날씨와 값싼 물가에 이끌려 계획보다 오래 머물게 되는 마을로 유명하다. 우리는 이곳에서 장장 열흘을 머물렀다.


우리의 발길을 예상보다 오래 잡아 둔 것은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아 반질반질해진 폭이 좁은 자갈길과 얼핏 보면 타조 같아 보이기도 하는 털북숭이 치마를 입은 원주민들. 작은 체구의 원주민들이 독특한 의상을 입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고원 지대의 선선하고 다소 침침한 날씨와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쏘칠(Tzotzil)은 멕시코 치아파스 주의 고원 지대에 살고 있는 마야 원주민으로,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도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검은 양털로 만든 복슬복슬한 전통 의상을 입는데, 치마의 소재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비싼 양모로 만든 치마는 높은 계급이, 값싼 천으로 만든 치마는 낮은 계급이 입는다. 


쏘칠 원주민들과 그들의 양모 전통 의상 @숲피


신비로운 원주민 자치 마을, '산 후안 차물라'


우리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주변 원주민 마을들을 몇 군데 방문해 보기로 했다. 산 크리스토발 외곽의 원주민 마을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약 10km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산 후안 차물라(San Juan Chamula)'라는 곳으로, 쏘칠(Tzotzil)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차물라는 원주민으로만 구성된 다소 폐쇄적인 마을인데, 이 마을이 유명해진 이유는 다름 아닌 범상치 않은 한 교회 때문이다. 마야 문명이 스페인 침략 이후 가톨릭과 혼합되어 탄생한 독특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감히 단정하건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일 것이다. 


차물라 교회 외관 @숲피


가이드는 교회에 들어가기에 앞서 내부 사진은 절대로 찍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고 당부를 했다. 몰래 사진을 찍다가 걸리면 벌금을 물게 될 뿐만 아니라 카메라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등의 폭력적인 대응이나 심하게는 신체적인 공격도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부 사진은 절대로 찍어서는 안 됩니다. 몰래 찍다 걸리면 맞을 수도 있어요. 실제로 발차기당한 사람들이 많아요.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고 사람에게 위해를 가해도 된다는 말인가요?


- 어쩔 수 없어요. 이곳은 마을 사람들끼리 자치적으로 법률을 정하고 운영하기 때문에 멕시코 경찰도 개입할 수 없답니다. 여기는 여기만의 룰이 있고, 우리는 그걸 따르는 수밖에 없어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변에서 소란이 일었다. 한 관광객이 교회 안에서 사진을 찍는 걸 본 마을 사람이 다가와 공격적으로 위협을 가한 모양이었다. 많이 놀랐던지 그 관광객은 광장 바닥에 주저앉아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가이드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자 혹여나 괜한 오해라도 사고 싶지 않아 져서 모든 전자기기를 가방 안에 쑤셔 넣어 버렸다.


원주민 교회에서 목격한 기묘한 의식


교회 내부는 암전이라도 된 듯 어두웠다. 어둠 속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바닥 여기저기와 제단 위에 흩뿌려지듯 놓인 촛불 수백 개였다. 천장을 가로질러 매달아 놓은 색색의 천과 양초에서 피어나는 자욱한 연기 사이로 몇 줄기 빛이 비치고 있었고, 바닥에는 솔잎과 그 가지가 흩뿌려져 있었다. 교회 가장자리의 제단에는 작은 거울을 목에 매단 수십 개의 수호성인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다. 원래 내가 알던 가톨릭 교회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위압감마저 드는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전통 복장을 한 원주민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어울리지 않게 살아있는 닭과 코카콜라가 놓여 있었다. 닭이 꽥꽥거리며 우는 소리와 의미를 알 수 없는 마야어(Tzotzil)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한 데 뒤섞였다. 기이한 풍경에 신기하면서도 겁이 났다.


우리는 곧이어 의식을 치르던 한 남자가 닭의 목을 비트는 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살아있는 닭의 목을 비틀어 죽인 후 환자의 환부에 죽은 닭을 가져다 대고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주문을 외우면 몸의 악한 기운이 빠져나간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종의 치유 의식이자 정화 의식인 것이다.


충격에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자 가이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우리가 본 것에 대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 이 의식에서 닭은 제물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코카콜라를 마시는 이유는 탄산으로 인해 나오는 트림과 함께 악한 것들이 빠져나간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믿기 힘들겠지만 실제로 그렇답니다.(하하)


- 그럼 죽은 닭은 나중에 먹나요?


- 아니요. 의식에 사용된 닭은 악한 기운을 흡수했기 때문에 먹지 않아요. 나중에 가져가서 집 앞마당에 묻는답니다. 


그들은 아직 오랜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그들의 의식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도 아닐뿐더러 여러 면에서 폭력적이고 괴이하기까지 했다. 아픈 사람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애먼 닭을 죽이고 코카콜라를 마시는 행위를 통해 치유 의식을 한다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이해받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외세에 의해 강제로 개종당하면서도 마야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그러한 고집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날 목격한 것은 유례없는 것이었다. 마야 신앙 체계와 가톨릭이 섞여 탄생한 새로운 문화이자 전통이자 종교였다. 나는 그날 내가 본 것을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이곳을 방문할 땐 열린 마음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 의상을 입은 원주민 소녀 @숲피


전통적인 원주민 수공예 직조 마을, '지나칸탄'


차물라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이웃 쏘칠 마을인 '산 로렌조 지나칸탄(San Lorenzo de Zinacantan)'은 그들만의 전통 직물로 잘 알려져 있다. 마을에 들어서자 화려한 꽃이 수 놓인 보라색 블라우스와 망토를 입은 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골목을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들어선 곳은 한 가족의 작업장이었다. 한 직공이 나와 무릎을 꿇고 앉아 허리에 벨트를 매고 베틀을 짊어지고 전통 직조 기술을 직접 시연해 주었다. 직공이 말하길 어떤 작업물은 완성하는 데 적게는 수개월에서부터 많게는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만큼 사람이 직접 한 땀 한 땀 작업해야 하는 아주 세밀하고 정밀한 과정이었다.


다양한 디자인과 사이즈의 지나칸탄 전통 직물 @숲피


안타까운 건 요즘 이런 전통 직조 기술로 만든 수공예품이 없어지는 추세라는 것이다. 디자인 카피 이슈도 있거니와 과테말라나 중국의 공장에서 기계를 이용한 싼 공정 과정을 통해 훨씬 싼 가격으로 역수입해서 들여오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 원주민들이 아무리 오랜 시간 공을 들이고 열심히 일을 해도 중국이나 과테말라의 공장에서 값싸게 대량으로 들여오면 당해낼 수가 없어요. 우리의 전통이 기술에 밀려 사라지는 걸 막으려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죠.


빠르고 효율적인 기계를 사람의 손이 따라갈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러면서 가이드는 손으로 만든 것과 기계로 만든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제대로 알고 구매하자는 취지였다. 이러한 실정을 몰랐다면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더 저렴한 것을 구매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저렴한 가격과 빠른 생산 속도에 밀려 고유한 전통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이대로라면 세대를 거쳐 가업으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인 직조 기술도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효율적인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더 가치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덜 합리적인 선택을 내려야 할 때도 있지 않을까···.


지나칸탄의 전통 의상 (좌) 화려한 꽃이 수 놓인 최신 버전 (우) 다소 간소한 디자인의 예전 버전 @숲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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