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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피 Sep 24. 2023

비틀스도 다녀간 멕시코 산골짜기 환각 버섯 마을

와하까의 우아우틀라 데 히메네즈에서

멕시코 환각 버섯 마을로 가는 길


와하까에서 우아우틀라 데 히메네즈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가야 하는 험난하고, 또 지난한 길이었다. 그래도 떠나기 며칠 전 부지런히 표를 미리 끊어둔 덕분에 다행히 12인승 봉고차의 운전석 바로 뒷자리를 사수할 수 있었다. 운전석 바로 뒷자리는 바람이 통해 멀미가 덜하고, 상대적으로 발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넓은 자리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5시간이 넘는 거리를 졸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딴생각을 했다가. 점점 짓눌려오는 엉덩이를 자꾸 들썩이면서 이 시간도 결국엔 다 지나가게 되어있다며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잠시 정차했을 때, 얼른 차에서 뛰어내려 아린 엉덩이를 퉁퉁 두들겨 주는 수밖에.


우아우틀라 데 히메네즈의 풍경 @숲피


마지막 구간은 끝판왕이었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은 별 것 아니라는 듯 길이 내 속도 모르고 속절없이 구불치고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도 어플을 열고 길을 살폈다. 지도상에 표시된 위치 마크는 얄궂게도 마치 땅거북이 기어가듯이 아주 천천히 움직일 뿐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틀 뒤면 이 길을 다시금 겪어야 할 것이란 사실이었다. 


산골짜기 중의 산골짜기 @숲피


실은 당연한 일이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 험준한 산악 지형의 둘레를 따라 낸 길이었다. 심지어 큰 버스는 다니지도 못할 만큼 좁고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 속 시원하게 터널을 쭉 뚫어버렸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유가 분명 있었겠지. 그렇다. 우리는 정말 산골짜기 중의 산골짜기, 접근성이 바닥을 치는 산악 마을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진작 눈치챘어야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이킥 '마리아 사비나'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왜 현지인들조차 '환각 버섯' 하면 다른 마을을 제일 먼저 떠올렸는지. 접근성이 문제였다. 멕시티에서도 와하까에서도 접근이 쉽지 않은 동떨어진 위치와 험준한 지형 때문에 점차 '환각 버섯 마을'이라는 타이틀을, 그 영광의 자리를 다른 엄한 마을에 내어 주고야 만 것이다. 그 합리적이고 당연한 이유를 우리가 함께 겪어낸 고난의 여정이 비웃듯 말해주고 있었다.


우아우틀라 데 히메네즈의 풍경 @숲피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을씨년스러운 버섯 마을


첫인상은 침침했다. 흐린 날씨와 더불어 쌀쌀한 기온, 곧이라도 바닥날 것 같은 체력이 합쳐져 기분이 다운되었다. 심지어 숙소에는 눅눅한 기운이 맴돌았다. 물먹은 솜이불마냥 축 쳐지는 무거운 몸을 침대에서 겨우 일으켰다. 이럴 때일수록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카페라도 갈 참이었다.


우아우틀라 데 히메네즈 마을 전경 @숲피


'오스톡 카페(Ostok Caffe)'는 이런 작고 외진 마을에 있을 것이라곤 상상하기 힘든 분위기의 카페였다. 깊숙한 산골 마을에서 홀로 '도시'의 분위기를 풍겼다. 테이블에 다가온 인상 좋은 종업원 아저씨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페레로 로쉐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했다. 따뜻한 머그잔에 차가워진 속을 녹이며 달콤한 케이크(맛있다는 뜻은 아니다)로 여독을 풀고 있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짙은 콧수염이 인상적인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테이블 너머로 짧은 대화가 오고 갔다. 금방 끊어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대화가 점점 이어지자 그도 우리도 서로를 향해 몸을 돌려 앉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점차 몸이 점점 앞으로 숙여지고 덩달아 마음의 거리가 한 번 가까워졌다. 베라크루스 주 오리사바에서 온 루이스는 의사로, 현재 이 마을의 병원에서 2주가량의 짧은 파견 근무 중이라고 했다. 


"와, 어째 멕시코 사람보다 멕시코 여행을 많이 한 것 같아. 그런데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그는 우리에게 어떤 이유로 이런 외딴 마을까지 찾아오게 된 건지 물었다. 방문객이 많이 없는 마을이었으니까 궁금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여기가 환각 버섯으로 알려진 마을이라고 해서 와 봤어요. 근데 지금은 철이 아니라 쉽게 볼 수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음... 맞아. 지금은 채집 시기가 아니야. 아, 지금 아마 차에 있을 텐데... 내가 가지고 있는 거라도 보여줄까?"


그는 마침 보관해 둔 버섯이 있다며 흔쾌히 보여주겠다고 했다. 곧이어 그는 종이 포장지에 싸인 버섯을 들고 나타났다. 포장지를 열자 제각기 다른 모양의 버섯이 몇 송이가 들어 있었다. 


환각 버섯 @숲피


'겉보기에는 일반 버섯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이 버섯에 든 어떠한 성분이 환각 작용을 일으키다니. 신기하다...' 


루이스는 기꺼이 우리를 마리아 사비나 박물관까지 태워다 주었다. 안개가 잔뜩 낀 구불한 산길을 돌고 돌아 한참을 올라가던 차는 마리아 사비나의 생가이자 박물관의 대문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앞장서서 차에서 내리더니 두툼한 손바닥으로 굳게 닫힌 박물관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얼마 뒤, 자그마한 체구의 한 사내가 안개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마리아 사비나의 후손으로부터 듣는 환각 버섯 이야기


사내는 마리아 사비나의 후손이자 가이드였다. 마리아 사비나의 증손자인 그의 말에 따르면 환각 버섯을 섭취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시기는 7월부터 9월로, 우기에 비가 많이 내리면 숲이 우거진 비옥한 토양에 다양한 색상과 질감의 버섯들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버섯을 섭취하고, 옛 마야 인들이 자기 탐구, 치유 및 계시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을 경험하기 위해 이 마을을 찾는다고 한다.


우리는 버섯 시즌을 한참 벗어난 2월에 방문했기 때문에 실제 환각 버섯을 보는 게 쉽지는 않았다. 철에 맞춰 방문한다면 갓 채집한 신선한 버섯을 손쉽게 구할 수가 있고, 그 외에는 말려서 보관해 둔 버섯을 우려낸 차를 마셔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두 방식 모두 버섯의 효능은 동일하다고 덧붙였다.


마리아 사비나 생가의 건물 @숲피


환각 버섯은 “Niños Santos(성스러운 아이들)”이라고 불린다. 버섯의 생김새가 꼭 아이들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버섯을 섭취하면 치유의 효과는 물론 영적인 체험까지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신을 찾기 위해, 종교적 체험을 위해 버섯을 찾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실제 버섯에 포함된 어떠한 물질이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환각을 일으킨다고...) 후문에 따르면 우리가 아는 유명인 중 밥 딜런, 비틀스도 영적인 버섯을 먹기 위해 멕시코의 이 작고 외딴 산골 마을까지 찾아왔었다고 한다.


짧은 투어가 끝나고 사내가 불러준 택시를 타고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자욱한 안개가 낀 어둡고 꿉꿉한 날씨. 택시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뿌연 안개에 가려 우리가 얼마나 높이 있었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택시를 보고 우리가 꽤나 높은 지점까지 올라갔었다는 걸 지레짐작했을 뿐이다.


택시가 어느덧 익숙한 시내에 다다랐다. 우리는 칙칙라고 침침한 거리에 유일하게 빛나는 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스톡 카페가 우리 여행의 시작점과 끝점이 될 거란 걸 이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한 채. 따뜻한 분위기만큼이나 따뜻한 사람들이 맞아주는 곳. 루이스도 한 켠에서 노트북을 켜고 한창 작업 중인 게 보였다.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치 동네 주민이 된 것처럼 식당 직원들과 자연스레 인사를 나눴고, 종업원 아저씨는 다 떨어진 잔에 따뜻한 커피를 몇 번이고 리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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