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소식지

물건백써 #25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by 숲일생활


모교 소식지의 에디터를 맡게 되었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학교도 다녀왔다. 회사가 10년 가까이 수주해 온, 꽤 익숙한 프로젝트라 새삼스럽진 않았지만, 인터뷰나 원고 작성 외에 해당 소식지의 메인 에디터를 직접 맡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에는 주로 후배들이 담당해 왔었는데, 내가 이미 다른 매거진이나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서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내가 대학교 소식지를 담당한다는 것이 뭔가 어색한 느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어깃장이 의미가 없는 것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꼭 맡지 못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 생활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심지어 모교이고), 정기간행물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소식지나 매거진 제작은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진행해 본 업무이다.). 물론 최근에 회사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꽤 많은 인원 감축이 이뤄져서, 나 외에는 딱히 담당할 사람이 없다는 게 결정적 요인이었지만.

여하튼 실로 오랜만에 ‘대학교 소식지’라는 것을 담당하게 되면서, 그동안 비슷한 부류의 작업물을 하며 들었던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를테면 내가 바라보는 ‘대학교 소식지’에 대한 어떤 인상들이다. 여기엔 어떤 해결책이나 깊이 있는 고찰은 없다. 그저 일개 대행사의 직원으로서 제작 현장에서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의 나열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걸 어떤 ‘징후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먼저 첫 번째로, 대학교 소식지는 대학생들이 보지 않는다. 여러분은 혹시 각자가 다녔던 대학교의 소식지를 읽거나, 보거나, 아니면 적어도 만져본 적이라도 있는가? 아마 지금쯤 대부분이 그런 게 있었나, 싶은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맞다. 나 또한 그러했다. 난 내가 다닌 4년 동안 단 한 번도 우리 대학교의 소식지를 읽어본 적이 없다. 대학생 시절, 엄청난 장서량을 자랑하는 모교의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가 아닌 독서로 보냈음에도, 나는 내 학교의 소식지를 열어 본 적도, 찾아서 읽은 적도 없다.(소식지의 이름은 물론, 발간이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조차도 대학 졸업 후 잡지 제작일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건 꽤 흥미로운 점인데, 예나 지금이나 대학생들은 책이나 잡지를 읽지 않는다는 낭설만으로는 결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물론 소식지 자체가 재미가 없고, 제대로 된 읽을거리가 추호도 없다면 당연히 재학생은 물론이거니와 그 누구도 읽지 않는 매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문제는 기본적인 독자 설정에 있다. 그렇다. 두 번째로 포착된 징후는 대학교 소식지의 핵심 독자는 대학생, 엄밀히 말해 ‘재학생’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대학교 소식지는 교내 부서인 대외홍보팀에서 제작을 주관하고, 실질적인 콘텐츠와 인쇄 제작 등은 외부 업체인 출판사나 디자인 회사, 기획사 등에 외주 용역을 주는 형태로 이뤄진다. 그러니까 제작된 내용의 1차적인 독자는 우선 홍보팀인 셈인데, 알다시피 홍보팀은 입학팀과 함께 주로 학교 바깥의 누군가에게 학교를 긍정적으로 알리고, 선전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 보니, 소식지 내용은 결국 교외의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고, 알리고 싶은 내용들로만 구성되게 된다. 그리고 그 바깥의 사람들이란 우리 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키라고 독려하고 싶은 학부모들이나 전국 고등학교의 진학 담당자, 또 그 외에 학교를 뽐내 보이고 싶은 장학 관련 기관, 교육 관련 정부 부처, 기타 경쟁 관계라 할 수 있는 타 대학들을 아우른다고 할 수 있겠다.(재학생들이 학교 소식지를 잘 읽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애초에 그걸 문제의 소지로 보는 경우도 드물다.)

보통의 대학 소식지들이 용비어천가 일색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보는데, 읽고 싶은 내용보다 보여주고 싶은 내용들이 구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계절이나 학기만 바뀔 뿐, 학교 생활이나 성과, 현황 등을 바라보는 관점도, 톤과 어조도 엇비슷한 기사와 사진들이 루프물 마냥 반복될 뿐이다.(비단 대학교 소식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김영란법 이후 무수히 폐간된 사기업 사보와 달리 아직도 대다수 공공기관들은 남들이 하니까, 그동안 해왔으니까 라는 이유로 저마다 다른 방식의 자가복제를 하고 있으니.)

끝으로, 일종의 셀프 저격에 가까운 징후를 하나 얘기하자면, 만드는 사람이 대학생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 중의 문제다. 대학마다 학보나 비정기적인 형태의 학과 소식지 같은 것들이 재학생이 주축이 돼 만들어지기도 하는데(요즘은 학교 SNS를 학생회에서 운영하거나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건 정말 긍정적인 변화다.), 그 외의 정기간행물이나 단행본, 기타 콘텐츠들은 아무래도 대외적으로 나가는 것들이다 보니 전문적인 제작사나 나와 같은 편집자, 디자이너의 손에 제작을 맡기게 된다.

꼭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거냐고? 그렇다. 교육 ‘비즈니스’를 근간으로 운영되는 요즘 대학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내용이 좋다고 하더라도, 보기에 별로인 건 쉽사리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의 안목과 기준은 과거의 그것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높아져서, 어설프게 무언가를 만들었다가는 비싼 대학 등록금을 도대체 어디다 쓴 거냐는 비아냥을 듣기 십상이다.

물론 기업과 마찬가지로 대학의 풍부한 재정이 ‘외연적’으로 퀄리티가 좋은 홍보 콘텐츠를 만드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대학 홍보 콘텐츠 제작 용역은 최저가 입찰로 이뤄진다.(이 부분은 할 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최소한 지금의 계약이 종료된 후나 이 업계를 떠난 후에 가감 없이 떠들어 보고 싶다.)

어쨌든 본질은 (현재 독자와 기대 독자 포함) 핵심 독자를 누구로 두느냐, 그리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만드느냐다. 제작비용이나 제작 주체와 무관하게 최소한 학생들이 읽었으면 하는 소식지를 지향한다면, 적어도 제작회의나 편집회의에 학생들을 참석시키는 성의라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지금은 아마 은퇴를 하셨을 텐데, 내가 10여 년 전에 뵈었던 한참 선배이신 에디터는 대학이나 기관, 혹은 어떤 공동체의 간행물을 담당하게 되면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사적으로 그곳을 방문하곤 했다.

심지어 평일에도 가고, 주말에도 가셨다. 단순히 대상에 익숙해지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평일과 주말에 각기 다른 뉘앙스를 나타내는 현장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자신이 홍보를 대행해 줘야 하는 어떤 대상의 정체성을 조금이나마 입체적으로 느끼고, 또 거기에서 파생되는 어떤 아이디어를 자연스레 수집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문제는 이렇게 열정적이고 치밀하게 업을 대하는 분조차도, 자신은 언제나 피상적인 원고밖에 쓸 수 없다며 자책하는 걸 여러 차례 목격하곤 했다.

그만큼 어떤 바운더리 바깥의 사람이 그 중심을 이해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한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회상이 좀 길었는데, 여하튼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학교를 말하고, 학교의 미래상을 논하는 건, 교수와 교직원도 가능은 하겠지만, 결국에는 학생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세상 모든 인프라와 비즈니스가 고객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학교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말한들, 그 대단함을 누리고 하루하루 경험하는 사람들의 피드백만큼 진솔하고 값어치 있는 콘텐츠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아, 물론 지금도 대부분의 대학 소식지가 성공한 졸업생과 고액의 장학금을 기부한 독지가, 그리고 지금 학내에서 조명을 받음직한 선남선녀들을 다루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들을 인터뷰이로 선정하고, 또 어떤 대답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결국 학생들이 아니다.

나도 여러 매체를 제작하면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봤지만, 본인이 자발적으로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선발’되거나 ‘추천’된 사람들이 진솔한 발화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은 보통 정해진 범주 안에서 충분히 고려된 대답만을 할 뿐이고, 그 일종의 ‘박제’된 내용들은 다시 어떠한 형식 안에서 편집과 조정을 거쳐 ‘전시’될 뿐이다. 다분히 이쁘고 보기 좋게 말이다.



대학교 소식지를 마냥 비판하고자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특히 내가 이번에 맡은 업무를 부정하거나 비관적으로 보고 있지도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모교에 좋은 추억이 무척이나 많다. 그런 곳의 소식지를 직접 제작하면서 종종 학교를 찾게 되는 일도 적지 않은 기쁨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대학교 소식지는 비록 ‘플랫’할지언정, 재학생과 졸업생, 교수와 교직원 등 학교와 연결된 다수의 사람들을 두루 다룬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의를 지닌다.

단지, 어떤 공전주기처럼 늘 해왔던 일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내가 느끼는 원심력에 비해 이 일의 구심점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는 데서 오는 어떤 안타까움 같은 것이 마음 언저리에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길게 주절거리는 거 말곤 딱히 변화를 위한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런 소식지를 한번 읽어보고 싶다. 보여주고 싶어서 만드는 게 아니라, 같이 얘기하고 싶어서, 같이 나누고 싶어서, 또 또래끼리, 같은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끼리 그저 낄낄거리는 재미로 한번 신명 나게 만들어 본, 마치 서툴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대학 시절 같은 그런 페이지들을 말이다.

내가 행여나 올해 그런 소식지를 만들진 못하더라도, 다음의 누군가는 꼭 한 번쯤 그래 봤으면 좋겠다.


미리,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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