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물건백써 #24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by 숲일생활


팬티를 새로 샀다. 속옷에 관심이 많은 편도, 특별히 애호하는 브랜드가 있는 것도 아닌 내가 팬티를 샀다는 건, 낡아서 구멍이 났거나 도저히 입지 못할 상태가 되었단 뜻이다.

하지만 팬티는 멀쩡하다. 상태가 변한 건 오히려 내 쪽이다.

하루는 여느 날처럼 새벽 조깅에 나섰는데 바지춤이 영 불편했다. 몇 번이나 조거팬츠의 끈을 다시 동여매도 그 불편함이 사라지질 않았는데, 알고 보니 팬티가 헐렁해져 내려가 있었다.

아마 매일 새벽 꾸준히 달리기를 하고, 가공식품을 확연히 줄인 최근의 식단이 결정적이었겠지만, 딱히 체중감량을 목표로 하지 않았던 데다가 신축성이 탁월한 것만 입어 온 나로서는 꽤 충격적이었다.(구체적으로 말하기엔 남사스럽지만 봉제라인이 최소화된 드로즈형 제품이라 헐렁해지기가 쉽지 않은 속옷이었다.)

왠지 낭비인 것 같아 바로 새 팬티를 사진 않았다. 평소 일상생활에서는 흘러내릴 정도는 아니라서 옷매무새에 주의를 하며 그냥 입었는데, 문제는 매번 아침 조깅 때였다. 조거팬츠든, 반바지든, 품이 넉넉하든, 딱 달라붙는 것이든, 사이즈와 무관하게 조금만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면 이내 팬티가 흘러내렸다.

이미 여러 벌의 속옷이 있는데 새 걸 사고 싶진 않다는 생각에 어느 날 나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어차피 한 시간도 안 뛰는데, 그냥 생략하자.’

그렇게 나의 속옷 없는 아침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몇 주를 줄줄 흘러내리는 팬티를 부여잡고 뛴 탓인지, 처음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쾌적함이 몰려왔다. 내딛는 걸음걸음이 한결 자유롭게 느껴졌고, 지면을 치고 나가는 하반신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저 가벼울 따름이었다. 나는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근소한 차이지만 페이스까지 앞당겨졌다.)

어떤 사람들은 평소에도 속옷을 잘 입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럼 그들은 평소에도 이런 기분인 건가 싶었다. 수십 년을 으레 속옷이란 당연하게도 몸과 하나인 것처럼 여기며 살아왔는데, 한 시간 남짓을 입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해방감을 느낀다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한편으론 내가 그러한 상태로 뛰고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몹시 부끄러우면서도 묘하게 통쾌한 기분이 드는, 이를테면 ‘길티 플레저’와 비슷한 감정마저 들었다.

어느 날 새벽에도 그렇게 팬티 없이 뛰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늘 곁에 있다 어느 날 벗어던진 팬티처럼, ‘원래 그렇다,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무신경하게 행하고 곁에 두었던 것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 싶었다. 벗어던지기 전까지는 그 해방감을 알 수 없는 것들, 또 해보거나, 혹은 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무수한 선택과 행동들이 내가 겪어보지 못한 어떤 세계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마 내 행동과 습관의 거의 대부분은 이제까지 살면서 내가 누군가로부터 배우고 전수받은 것들일 것이다. 그 하나하나가 몸에 익은 후로는 그것들을 의심하거나 부정해 본 적도 별로 없다. 심지어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거부하고, 무언가 의문스럽게 여기는 이들을 나는 또 얼마나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무례히 쳐다보았었는지, 그런 생각을 하니까 새삼 얼굴이 화끈거렸다.

민음사 김민경 편집자가 어느 콘텐츠에 나와서, 자신은 ‘대충 알고 좋아하고 다 알고 싫어하자’는 주의라고 하던데, 돌이켜보니 난 내가 낯설어 하는 것에 대해선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팬티 하나로 너무 심각해진 듯하지만, 수십 년을 그렇게 무신경하게 살아왔으니, 앞으론 가능하다면, 특히나 습관처럼 행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선 직접 해보고, 또 충분히 겪어본 후에 최종적인 판단을 내려야겠다는 나름의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그냥 헐렁해진 팬티들을 차곡차곡 접어 장롱에 넣어놓고, 서두에 이야기한 것과 같이 새로운 팬티를 주문했다. 전에 입던 것들보다 한 치수가 작은 것이었다.

물론 팬티 없는 아침 달리기는 할 만했다. 하지만 막상 아침에 입고 있던 팬티를 벗고, 다시 운동복 바지를 갈아입고 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결정적으로, 새로 산 작은 치수의 팬티를 입고 뛰자, 몸에 잘 맞는 덕분인지 팬티 없이 뛰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운동복 바지에 허벅지 살이 덜 쓸려서 오래 뛴 뒤에는 차라리 그 편이 더 쾌적하게 느껴졌다. 개인차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했다.

어쩌면 나는 그저 한 치수 작은 팬티를 샀으면 금방 해결됐을 일을, 먼 길을 돌고 돌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해방감을 결국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나 혼자만의 배덕감에 끝내 져 버린 것일지도.

그래도 그 미련한 깨달음의 과정 덕분에 나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할 수 있었고, 어떤 물건의 유무가 주는 차이를 몸소 경험해 봤다는 것에 보람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늘 쓰던 물건은 이따금 왜 쓰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자신한테 어떤 의미인지를 잘 잊어버리곤 하니까.

혹시 매일 쓰는 물건 중에, 내가 이걸 왜 샀지, 나는 도대체 이걸 왜 쓰지 싶은 것들이 있다면, 하루 이틀 정도 써 보지 않는 것도 제법 괜찮은 방법이 될 듯싶다. 아, 물론 특정하긴 어렵지만 그런 의심을 결코 해선 안 되는 물건들도 있을 테니, 주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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