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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사람 Mar 12. 2020

새로움의 메커니즘

새로움에 대한 사유

현대사회에서 새로움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가 있을까?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한다. 새로운 기술, 정치, 철학, 과학적 발견... 그리고 새로운 예술까지. 심지어 오늘도 우리들의 상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라고 닦달한다. 나 또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원하고, 새로운 무언가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 그것이 누구보다 내가 먼저 고안한 것이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동안 새로움 자체에 대해서 사유할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무엇이 새로움인가? 사람들은 왜 새로운 것을 원하는가? 모든 분야에서 새로움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미술에서 새로움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등에 대한 고민이다. 비평가 보리스 그로이스의 저서 <새로움에 대해여>는 순수하게 새로움이라는 철학적 사유 대상을 탐구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책이다.


먼저 새로움을 창조해야 한다는 강박적 욕구는 근대 이후에 생겨난 현상이라고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행위가 인간의 본질적 행위가 아니라, 사회와 시대에 따라 외부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욕망이라는 것이다. 내가 알던 새로움 추구는 어떤 강요가 없어도 자유롭게 발현되는 인간의 기본 특성 같은 것이었는데, 실제로 새로움은 시대적, 사회적으로 강요되어 탄생되었던 것이다. 새로움 추구가 인간의 본질적 행위가 아니라니? 새로움을 추구하는 행위의 가치 자체가 절하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로이스는 강요된 새로움 추구 즉.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 추구는 근대 이후에 발명된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유효한 인간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새로움은 무엇인가? 새로움은 가치가 전도되는 것이다. 가치가 없던 대상이 가치 절상되거나, 가치가 높던 대상이 가치가 절하되는 것이 새로움이다.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이 좋은 예이다. 담배꽁초, 알약, 해골, 부패한 사체 등 이전에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대상을 가지고 작품을 제작하며 그 대상을 새로운 차원의 위치로 승격시킨다. 이 새로움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서는 이 세계의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는 세속적 공간(무가치한 대상들이 존재하는 공간)과 문화적으로 전통적으로 아카이브 된  가치 공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두 공간을 구분하는 것이 "가치 경계"이다. 문화적 아카이브 공간은 이미 과거에 가치를 인정받아 차곡차곡 쌓여있는 역사와도 같은 것이다. 이런 전통적 가치들이 잘 보존되어있고, 손쉽게 접근이 가능할 때, 즉 아카이빙이 잘 되어있을 때 새로운 가치가 요구되고 그 새로움이 환영받는다. 그렇게 시대마다 새로움과 그 이전의 전통적 가치를 갖는 대상이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지로부터 새로움이 측정되고 수용된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다시 아카이브 되어 문화적 가치 공간에 편입된다.


The concept is illuminated by 숲사람

새로움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새로움은 문화 경제적 현상이다. 새로움은 순전히 개인의 능력과 기억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카이브 된 문화 자체와의 관계에서 탄생한다. 새로움은 개인이 임의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 문화적 콘텍스트 전체가 선택하는 행위인 것이다. 아카이브 된 가치 공간과 세속적 공간 속에서 새로움이 탄생하는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인간에 의해서 세속적 공간 속의 오브제가 선택이 된다. 그것이 그 두 공간을 구분하는 가치 경계를 넘으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카이브 공간으로 포함되도록 수용 및 선택이 되면 그것이 새로움이 된다. 과거 무가치한 세속적 대상이 가치를 얻었을 때 그 대비가 강할수록 긴장감은 커지고 이것은 곧 그 가치의 강한 영향력을 나타낸다. 뒤샹의 변기가 대단한 이유가 그것이다.


예술가는 어떻게 새로움을 탄생시는가? 예술가는 세속적 공간의 오브제를 선택하고 이것이 새로움이다 라고 선언한다. 그때, 특정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천명하기 위해서 자격이 필요할까? 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자격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편이다. 자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게 이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가치 경계의 틈을 더욱 단단히 메워서 새로움이 탄생할 여지를 차단한다. 반면 과거의 권력이 파괴될 때 가치 경계는 유연해진다. 세속 공간 속의 대상이 가치 경계를 넘어 새로움의 가치를 부여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미 명백히 예술인 것은 만들기 쉽다. 누가 봐도 예술작품인 대상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단지 테크닉의 문제일 뿐이다. (작품의 제작이 아닌 아이디어의 선택과 작품 이면의 철학적 탐구가 중요해지는 현대미술에서는 그 표면적인 테크닉의 중요도마저도 사라지고 있다.) 이미 아카이브 된 전통 속에서 만드는 예술은 안전하고 쉽고 간편하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움이 될 수 없다. 독창적이고 혁신적 가치는 탄생할 수 없다. 결국 미술에서 새로움은 명백히 예술이 아닌 것이 예술의 경계로 침입하려고 할 때 발생다. 따라서 자격이 있던 없든 간에, 예술가는 실패하더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이런 침투(가치 경계 횡단)를 실험하고 그 가능성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References:

새로움에 대하여, 보리스 그로이스, 현실문화

사진: The Void, 데미언 허스트, 2000,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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