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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사람 Mar 16. 2020

동시대와 미술관 이해하기

책 <래디컬 뮤지엄>을 읽고

동시대 미술관에서 무엇이 동시대적(contemporary)일까? 그리고 이상적인 동시대 미술관은 어떠해야 하는가? 책, 래디컬 뮤지엄은 미술사학자이자 비평가인 클레어 비숍이 그것에 대한 생각을 기술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의 미술관은 지나치게 사유화, 신자유 주의화되었다. 미술관이 내적인 콘텐츠보다는 건축물이라는 외피에만 집중한다. 또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블록버스터 전시에만 치중한다. 저자는 이렇게 자본주의적 층위에서 상연되고 있는 미술관의 동시대성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에서 "변증법적 동시대성에 입각한 전시"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나는 지난 글 <미디어와 역사가>에서 동시대 미술은 미디어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고 그런 동시대 미술을 하는 미술가는 역사가와 같다고 주장했다. 동시대적인 미술은 미학적 가능성의 탐구를 넘어서 사회적 담론이나 어떠한 메시지가 담긴 미술이며, 보이는 미술이 아닌 읽히는 미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에서 그 생각을 뒷받침할만한 재료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동시대적 미술은 시대의 어둠에 시선을 고정하고, 소외되고 억압받고 주변화된 과거의 역사를 선택해 현재에 다시 담론화 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나는 이 책의 주제가 <미디어와 역사가>의 주장과 매우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역사를 바라보는 상반된 두 가지 관점이 등장한다. 역사주의와 현재 주의이다. 역사주의는 역사를 객관적 사실로 보는 관점이고, 현재 주의는 역사를 역사가가 선택한 주관적 해석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역사는 재편집되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책의 주제 키워드인 변증법적 동시대성은 철저하게 현재 주의적인 역사관을 기반으로 한다. 변증법적 동시대성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작품(기억, 역사)이 만들어진 시기와 양식에 관계없이, 현재 주장의 담론과 맥락에 입각해 선택된 작품(기억, 역사)은 그것이 지난 과거의 것일지라도 동시대성 즉, 현재의 시간성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역사가가 주관적으로 선택하고 재구성하여 의미를 부여한 역사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동시대란 무엇인가? 동시대는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양식이나 시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현재에 대한 "주장"을 의미한다. 동시대는 더 이상 시대적 범주가 아니다. 동시대는 담론적 범주가 되어야 한다. 즉 동시대 미술관은 표현이 아닌 담론이 전시되어야 하는 곳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이 결국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동시대적인 전시는 과거 소장품의 나열이 아닌, 주장과 담론에 따라 적극적으로 선택된 작품과 역사를 재구성하여 변증법적으로 동시대적인 전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전시는 단순히 관람자의 새 경험 목록에 추가될 만한 전시나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에 추가될 전시 만은 아니다. 관람자가 역사가이자 미술가인 작가에 의해 선택된 주제 그리고 예술 작품과의 심도 있는 만남을 경험하게 될 전시가 될 것이다.


가볍고 짧은 책이었지만 심도가 깊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저자가 어떤 입장을 가진 것인지조차 헷갈렸다. 하지만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다루는 주제가 대단히 깊고,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은 동시대라는 시간성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여지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어떠한 전시가 좋은 전시인지 안목을 조금 더 높여준 것 같다. 아직 저자의 언어를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지만, 언젠가 미술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욱 두터워졌을 때 다시 보면 또 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을 책이라 기대한다.




References:

래디컬 뮤지엄(동시대 미술관에서 무엇이 동시대적 인가?), 클레어 비숍, 현실문화

미디어와 역사가, 숲사람 (https://brunch.co.kr/@soopsaram/4)

사진: <김순기: 게으른 구름> 전 신작 퍼포먼스 <시간과 공간 2019>, 국립현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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