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축소된 곳, 그리고 고양이!
매일 오후 여섯 시가 되면 공원 한구석으로 이모가 온다. 고양이들 밥 주는 이모다. 내가 그를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라, 그가 고양이들에게 자신을 이모라고 소개한다. “이모가 밥 줄게, 이리 와.” 이모는 양손에 검은 봉지를 들고 나타난다. 봉지 안은 가득 차 있다. 사료들일 것이다. 한참을 부스럭거리지만 정작 내놓는 건 밤색 동그라미들을 담은 그릇뿐. 인간이 먹는 초코볼과 비슷한 생김새다. 다른 사료들도 있다면 뭐가 있을지 궁금하다. 저 아이들도 같은 마음일 테지. 동물들은 봉지 곁을 지나 각자의 그릇 앞에 자리를 잡는다. 나란히 사료에 코를 박는다. 옆에 누가 지나가는 것도 모르는 채로. 혹은 무시하면서. 이모는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줬고, 나는 그들의 이름을 안다. 라테, 삼색이, 나비. (삼색이는 오늘 나타나지 않았고, ‘나비’라는 이름은 예전에 옆을 지나가다 들은 거라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을 부르는 문장에서 아이들이 반응하는 단어는 오직 ’밥‘뿐이다. 라테라는 이름에도, 이모라는 소개에도 무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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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과 눈을 맞추고 싶어 그들의 높이까지 쭈구려 앉는다. 사료를 우걱우걱 씹어 먹고 핥아먹는 모습. 구부정한 등의 모양.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뜨린 꼬리의 각도. 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도 고개의 움직임은 일정하다. 무방비한 시간. 배고픔은 무아지경을 부르네. 나 또한 무언가를 잊은 상태로 그들을 구경하다 저려오는 다리를 편다. 아이들의 행복한 몰두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부러 길을 돌아간다. 사랑은 세상을 잠시 축소시켰고, 나는 다시 무한해진 공원을 어슬렁거린다. 짧은 시간 생략되었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망가진 티브이 화면 같은 윤슬과 근원을 잊고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 형광색 민소매티셔츠를 입고 달리는 남자. 주둥이가 초록색으로 물드는 것도 모른 채 풀을 쪼아대는 비둘기. 길을 잃고 어디에나 군집을 이루는 하루살이 떼. 체스판의 말들처럼 띄엄띄엄 서있는 자전거들. 그래 이런 것도 풍경이었지. 그들로 축소된 세상도 사랑이겠지. 아름다운 범위겠지. 공원은 사랑의 집약체고, 나는 혼잣말을 할 때면 이곳에 온다. 사랑에 닿으려고.
어제 본 아이들. 쌍둥이 듀오 가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