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21
"대한민국의 많은 분들이 메달을 원했지만 개인적으론 만족스럽다...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100점을 주고 싶다."
스포츠부 기자일 때 손연재 선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쑥쑥 자라나는 유망주인 중3 학생이었습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26/2009062601652.html
그때 손연재 선수가 몸을 둥그렇게 꺾는 포즈를 취하면서 울었습니다. 몸이 안 풀려서 자세가 안 나온다는 이유였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미 동그라미였음) 리듬체조가 좋아서 남친도 필요 없다는 중3 소녀를 보면서 뭔가 일을 내기는 내겠구나 했습니다. 사실 아시안게임 1위 정도 생각했지만 올림픽에서 4위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인터뷰하면서 근성에 한번 깜놀, 올림픽 성적에 두 번째 깜놀했습니다.
결정타를 날린 건 4위로 경기를 마친 후 인터뷰 내용입니다. 은메달 동메달을 따도 땅을 치며 우는 보통의 우리나라 선수들의 반응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스스로에게 100점을 주고 싶다고까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저 정도로 잘 준비된, 정리된, 성숙한 말을 하는 운동선수는 드뭅니다. 그리고 인생의 레이스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한 번도 스스로에게 100점을 주지 못하는 우리의 인생들을 떠올리며 한번 더 손연재 선수가 얼마나 스스로를 잘 다스려왔는지, 그래서 세계 4위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와 같은 성숙한 마음가짐 덕분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손연재 선수가 은퇴를 합니다. 주변의 시선을 피할 수 없는 길을 걸어야겠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스스로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합니다.(참고로 저는 손 선수와 싸이월드 1촌입니다ㅎㅎ)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 은퇴한 스포츠스타 선수들의 모습을 참고했으면 합니다. 홍명보 박지성 장미란 최경주 김연아...
이 선수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받은 것을 진심으로 감사해하며 사회와 후배들에게 나누고 베푼다는 것입니다. 동시대에 활약하고 저들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던 스포츠스타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고 사회에서 꾸준히 존경받으며 활동하는 스포츠스타는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결과는 현역 시절의 성적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무수한 올림픽 금메달을 대한민국 선수들이 거머쥐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애정을 갖고 기억하는 스타가 꼭 금메달리스트인 것은 아닙니다. 손연재 선수는 이미 인생의 금메달을 땄습니다. 남은 것은 금메달이 바래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지금처럼 계속 그렇게 스스로에게 100점을 줄 수 있으면 합니다.
아래는 리우올림픽 손연재 인터뷰 전문.
Q : 소감은.
A : "예선에서 실수가 있었지만 오늘은 완벽하게 해낸 것 같아 만족한다. 대한민국의 많은 분들이 메달을 원했지만 개인적으론 만족스럽다. 런던 올림픽 때 5위하고 리우에서 4위할 수 있었던 것도 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4년 동안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Q : 어떤 부분이 가장 성장했나.
A : "어제 긴장을 너무 많이 했다. 내 인생 경기 중에 제일 긴장을 많이 했다. 결과에 대한 부담이 없다고 해도 있더라. 어젯밤부터 결과 생각하지 말고 매트에 올라서 있는 힘 다해서 연습했던 것 보여주자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을 해낸 것 같다.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기쁘다."
Q : 연기 후 리자트디노바의 점수를 기다리면서 어떤 생각했나.
A : "네 종목 치르는 동안 내 점수를 보지 않았다. 그 선수가 잘 하는 것에 대한 초조함보다 모든 걸 마쳤다는 감정이 북받쳐서 정신 없었다. 리자트디노바도 정말 노력을 많이 하는 선수다. 모든 선수가 노력을 한 거기 때문에 결과를 받아들인다. 얻은 것들도 있기 때문에 감사하다."
Q : 항상 웃으려고 하던데.
A : "경기 나가기 전에 루틴을 만들어서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배웠다. 나는 심각할 때보다 웃으면서 할 때 더 좋아한다.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고 생각했다. 노력했던 걸 보여주자고 해서 최대한 웃으면서 하려고 했다."
Q :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A : "사실 주변에선 알겠지만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운동을 그만두려 했다. 어떻게 보면 슬럼프였다. 올림픽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많이 힘들었는데 끝까지 놓지 않고 잡아주신 부모님과 주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은 혼자 한 것이 아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 경기할 때부터 진심으로 응원해줬기 때문에 힘이 나서 하려고 했다. 리우 올림픽에 온 건 정말 잘한 것 같다(웃음)."
Q : 경기 끝나고 니표르도바 코치와 무슨 얘기를 나눴나.
A : "고맙다고 했다. 6년 동안 함께 있으면서 밉기도 하고 다신 보기 싫다고도 했었다. 그래도 너무 감사하다. 코치님이 없었으면 이 자리에 없었다. 2010년 세계선수권에서 32등 했던 선수를 올림픽 4등까지 만들어줬다."
Q : 런던 올림픽, 리우 올림픽에서 도전이 즐겁거나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A : "런던 올림픽 준비하면서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벅차고 들떴다. 리우는 정말 힘든 것밖에 없었다.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만 하고 싶은 생각도 하루에도 수십 번 들 정도였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그 작은 하나하나와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오늘 결과에 관계없이 리듬체조를 통해 너무 많은 걸 배웠다. 이런 경험들이 앞으로 많이 남은 인생 동안, 살아가는 동안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Q : 브라질 땅 벗어나서 뭐하고 싶나.
A : "마음에 있는 부담감을 떨치고 싶었다. 너무 무거워서 조금은 평범하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Q : 향후 계획은.
A : "다들 궁금해할 텐데 일단 마지막 올림픽이라 생각했다. 죽기살기로 준비했고, 런던 올림픽 때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올림픽 이후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좀 더 쉬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Q : 지금의 손연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A : "중학교 때부터 일기장에 세계대회나 월드컵, 올림픽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손연재가 되고 싶은 생각을 많이 했다. 항상 적었고 그게 꿈이었다. 지금은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건데 꿈을 이뤘더라.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걸 이뤄 너무 기쁘다."
Q : 4년 전 5등에서 4등이 됐다. 한 단계 상승의 의미는.
A : "어떻게 보면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대한민국에 금메달리스트도 많다. 그런 거에 비해 많은 주목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 자신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건 좀 느려도, 천천히 계속해서 노력해왔다는 점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Q : 한국으로 돌아가면.
A : "사실 한국에 있던 시간이 최근 6년 동안 1년도 안 된다. 거의 러시아인이 다 됐다. 좀 한국인처럼 살고 싶다."
Q : 눈물이 안 났나.
A : "아까 울었는데… 끝나니까 눈물이 나긴 했다. 러시아 선수들을 축하해주는데 같이 고생했기 때문에 눈물 나더라. 우크라이나 선수도 울고 있어서 같이 눈물 났다. 모두 경쟁하지만 끝나면 같이 고생한 선수들이다. 후련하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다."
Q : 한국 최초 올림픽 메달에 대한 부담감도 컸을텐데.
A : "운동하기 싫을 정도였다. 아시안게임 이후로 내가 즐거워서 운동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원하는 기대를 채워주기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아시안게임 이후엔 힘들기만 했다. 그래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잘 참아왔다. 그 과정들이 나한텐 모두 내 안에 하나하나 있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Q :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A : "사실 예선 땐 '이러다가 결승도 못 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뒤에서는 정말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이겨냈다. 내가 주는 점수니까 100점을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