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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아씨 Jul 30. 2018

윈스턴 처칠이 사랑한 샴페인, 폴 로저

와인이 좋아 프랑스로 떠난 여자의 샹파뉴 여행기-8

윈스턴 처칠은 폴 로저 샴페인의 굉장한 애호가였다.

샴페인은 와인 중에서도 유명인사와 관련한 이야기가 특히 많은 와인이다. 매일 아침 파이퍼 하이직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마릴린 먼로부터 영화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가 마신 볼랭저, 미국 셀럽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아르망 드 브리냑까지 유명인과 함께 언급된 샴페인은 다양하다. 폴 로저도 여기서 빠지면 섭섭할 만큼 중요한 인물과의 이야기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그가 매일같이 마신 와인이 바로 폴 로저의 샴페인이다.


작지만 단정하게 꾸며진 정원, 경쾌한 분위기의 주황색 벽과 그 앞의 에메랄드색, 검은색으로 칠해진 건물이 세련미를 뿜어내며 나를 맞이했다.

폴 로저 하우스는 샴페인의 도심인 에페르네의 심장부에 있다. 이 핵심지에 폴 로저가 한 곳도 아니고 두 곳이나 있다. 방문 계획을 짜며 둘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으나, 왠지 모르게 이번에는 직접 하우스 측에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구글 지도에 올라온 사진을 보며 한 곳이 본사일 거라 추측하고 무작정 가버렸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불확실성은 때때로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주지만, 아쉽게도 이날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폴 로저 본사일 거라 믿고 간 곳에는 곧 해외로 나가려는 듯 튼튼하게 포장된 샴페인 상자들만 잔뜩 쌓여 있었다. 잠시 그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그곳에서 일하시던 분을 만났더니, 이곳은 하역장이고 하우스는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다행히 걸어서 5분이 채 안 되어 진짜 하우스에 도착했다. 하역장이 폴 로저와 가까이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폴 로저 하우스의 응접실

작지만 단정하게 꾸며진 정원, 경쾌한 분위기의 주황색 벽과 그 앞의 에메랄드색, 검은색으로 칠해진 건물이 세련미를 뿜어내며 나를 맞이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폴 로저의 색채가 물씬 풍겼다. 홀의 왼편에 있는 응접실은 19세기에 쓰였을 법한 가구로 장식되어 있었고, 응접실 오른편의 벽면에는 구리로 만들어진 윈스턴 처칠 동상이 서 있었다. 하우스에 발을 들인 순간 이곳의 당당하면서도 기품있는 분위기에 이끌려 '과연 젠틀맨과 어울리는 샴페인 하우스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옛날 처칠이 마신 샴페인 하우스를 둘러볼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젊은 청년이 만든 샴페인, 그리고 윈스턴 처칠과의 우정

훤칠한 키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온 매튜 블랑(Matthieu Blanc)씨가 나를 반겼다. 매튜씨는 폴 로저에서 무려 8년간 근무했으며, 현재 마케팅 부서를 담당하고 있다. 그와 함께 본관에서 빠져나와 와인 양조장으로 이동하여 폴 로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폴 로저 하우스는 1849년, 우리나라로 치면 이제 갓 대학생이 될 무렵의 젊은 청년 폴 로저가 지은 와이너리다. 당시 최초로 지어진 하우스는 아이(Aÿ)에 있었는데, 2년이 지난 1851년에 현재의 하우스가 있는 이곳, 에페르네로 하우스를 옮겼다. 이후 폴 로저는 30년 만에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명성을 지닌 샴페인 하우스로 성장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이 하우스에도 언제나 햇빛만이 들지는 않았다. 1900년에 일련의 자연재해로 하우스가 무너져 무려 500개의 오크통과 150만 병이 유실되었다. 당시 운영을 책임지던 폴 로저의 두 아들은 힘을 합쳐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해냈다. 그리하여 다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쯤에는 샹젤리제 거리의 최고 레스토랑에 폴 로저가 판매될 정도로 명성을 이어갔다.


1975년부터 윈스턴 처칠의 이름을 따서 '퀴베 서 윈스턴 처칠(Cuvée Sir Winston Churchill)' 샴페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는 판매는 어려워졌으나, 1900년도 초부터 이어진 윈스턴 처칠과의 관계는 지속됐다. 처칠은 1908년부터 폴 로저 샴페인을 마시기 시작했고, 1944년에는 오데트 폴 로저(Odette Pol Roger)를 만나 우정을 쌓았다. 처칠은 굉장한 폴 로저 애호가여서 그가 타고 다니던 말의 이름까지 폴 로저라고 지을 정도였다. 그와 폴 로저 하우스의 우정은 처칠의 사망 이후에도 이어졌는데, 폴 로저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자 영국으로 수출되는 넌빈티지 샴페인의 라벨에 검은색 테두리를 넣었다. 또 1975년부터는 그의 이름을 따 매그넘 사이즈의 '퀴베 서 윈스턴 처칠(Cuvée Sir Winston Churchill)' 샴페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10년을 숙성하여 이 샴페인을 내놓은 해는 1984년이다. 현재 이 와인은 폴 로저의 최상급 샴페인이고, 블렌딩 비율은 대대로 폴 로저 구성원의 일부에게만 전해지고 있다. 매튜씨에게 윈스턴 처칠의 블렌딩 비율을 아느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저으며 폴로저 내에서도 오직 셀러 마스터만 아는 비밀이라고 대답했다. 비밀이라니 더 알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특성인가. 집에 돌아와 여러 책을 뒤적이다 힌트 하나를 찾았다. 내게 도움을 준 책은 피터 리엠의 『Champagne』이었는데, 그에 따르면 윈스턴 처칠 샴페인에는 피노 누아가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처럼 처칠과 관련된 일련의 이야기와 비밀스러운 마케팅으로 폴 로저는 '처칠의 샴페인'이라는 분명한 이미지를 획득했다.


에페르네에서 자라는 포도로만 만드는 샴페인

폴 로저는 에페르네에서 생산한 포도로만 와인을 만든다.

샴페인 생산자 중 직접 재배한 포도로 샴페인을 생산하는 사람은 레콜탕-마니퓔랑(Récoltant-Manipulant), 줄여서 'RM'이라고 불린다. 반면 포도 재배자들로부터 포도를 사서 샴페인을 만드는 생산자는 네고시앙-마니퓔랑(Négociant manipulant), 즉 'NM'으로 불린다. RM과 NM 중 어느 한 편의 샴페인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RM은 포도밭까지 정성스레 돌보기 때문에 테루아를 살리는 쪽을 선호하고, NM은 여러 포도 생산자로부터 포도를 구매하기 때문에 하우스의 일관된 개성을 유지하는 쪽을 선호한다. 규모가 큰 샴페인 생산자 대부분이 NM에 속하며, 폴 로저 역시 NM으로 분류된다. 현재 폴 로저는 92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이 포도밭에서 나오는 포도는 전체 샴페인 생산에 사용되는 포도의 55%를 차지하고, 나머지 45%는 에페르네에 있는 포도밭에서 포도를 사 온다. 매튜씨는 폴 로저가 소유한 포도밭과 포도를 구매하는 포도밭이 모두 에페르네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빠르게 양조장으로 옮김으로써 포도의 신선도를 최상으로 유지할 때 폴 로저만의 스타일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오크통 숙성의 전통을 버리고 포도의 순수함을 살려내다

반듯하고 나란히 놓인 스테인리스 통들은 폴 로저 하우스의 현대화와 생산 규모를 보여주었다.

윈스턴 처칠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후, 우리는 거대한 스테인리스 통이 죽 늘어서 있는 양조장으로 들어갔다. 반듯하고 나란히 놓인 통들은 폴 로저 하우스의 현대화와 생산 규모를 보여주었다. 연간 샴페인 생산량이 약 20,000hL나 된다고 하니, 과연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와인이 발효하고, 숙성 및 블렌딩 과정을 거치는 이 방은 온도가 철저하게 관리된다. 발효 이후에는 유산발효를 진행하여 와인에 부드러운 맛을 더해주고, 12월 초에 테이스팅을 하고, 1월 중순에 당해의 블렌딩 비율을 최종으로 결정한다.


폴 로저는 하우스에 남은 역사와 이야기는 소중히 지키지만, 양조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하게 현대화를 추구하고 있었다. 이곳은 오크통 발효나 오크통 숙성을 생산과정에서 아예 배제한다. 오직 스테인리스 통에서 포도와 효모가 만들어내는 모습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폴 로저 샴페인은 한 모금만 마셔도 입안에 신선한 청량감이 가득해진다.


폴 로저의 지하 저장고에는 약 2천 7백 명의 사람들이 10년간 매일 하루 한 병씩 마실 수 있는 만큼의 샴페인이 저장되어 있다.

양조장을 나와 이번에는 계단을 내려가 카브로 들어갔다. 용도가 샴페인 보관용이어서 카브라고 부르지만, 샴페인을 빼놓고 보면 그냥 동굴이다. 에페르네의 카브는 보통 랭스의 것보다 더 어두운색을 띄었다. 샴페인이라는 지역 내에 있는 백악질인데도 색이 참 다른 걸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샴페인에 미칠 테루아의 영향이 짐작간다. 매튜씨가 백악질 토양에 만들어진 이 카브의 전체 길이는 7.5km이며, 현재 천만 병의 와인을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만 병이면 약 2천 7백 명의 사람들이 10년간 매일 하루 한 병씩 마실 수 있는 양이다. 한반도 절반의 인구가 10년 동안 매일 마실 수 있다는 거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다. 이 많은 와인 병들을 모두 사람이 직접 손으로 돌리며 숙성시켰고, 지금도 여전히 수작업으로만 리들링을 진행하고 있다.


손으로 병을 직접 돌려가며 샴페인을 숙성시킨다.

여기서 병을 돌리는 인부를 리들러(riddler)라고 하는데, 한 명당 매일 5만 병에서 6만 병 정도를 돌린다고 한다. 기계를 쓴다고 해서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데 왜? 현대화한 스테인리스 양조장을 본 후여서인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확한 내부 사정을 알 수 없어 푸피트르는 폴 로저가 이어가고 싶은 소중한 유산일 거라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카브에서 만난 리들러 분들은 이곳에서 27년의 리들링 경력이 있었다. 한 직장에 무려 27년이나 있다니, 폴 로저의 복지 혜택이 대단한가보다.


폴 로저 테이스팅

왼쪽부터 브뤼 NV, 퓨어 엑스트라 브뤼 NV, 블랑 드 블랑 2009, 빈티지 2008, 서 윈스터 처칠 2006

브뤼(Brut) NV

샴페인의 대표적인 NM중 한 곳인 만큼 무려 30개의 크뤼 밭에서 자란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 피노 뫼니에가 같은 비율로 블렌딩 되며, 2012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 75%와 25%의 리저브 와인으로 만들어진다. 리저브 와인은 3개 빈티지를 혼합하여 만드는데, 이날 마셨던 샴페인의 리저브 와인은 2010, 2009, 2008년 빈티지의 혼합이었다. 카브에서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숙성과정을 거쳤고 도자주는 8g을 넣었다. 복숭아 향이 많고 달콤한 벌꿀 향도 난다. 높은 산도에 탄산은 공격적으로 톡톡 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 덕에 전체적으로 경쾌하고 섬세하다.


퓨어 엑스트라 브뤼(Pure Extra Brut) NV

앞서 마신 폴로저 브뤼와 아예 같은 와인으로 만들었는데, 마지막에 병입되기 전에 도자주를 넣지 않아 '퓨어 엑스트라 브뤼'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샴페인이다. 와인과 설탕 시럽만 넣지 않았을 뿐인데도 폴 로저 브뤼와는 꽤나 다른 인상을 준다. 달콤한 꿀 향은 사라지고 침샘을 자극하는 새콤한 과일향과 꽃향으로 가득하다. 역시 산도가 높고 향과 맛, 후미까지 이름처럼 깨끗하다. 도자주를 넣지 않는 유행에 발맞춰 폴 로저도 제로 도자주 샴페인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산미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 샴페인을 마실 때는 꼭 음식과 함께하길 추천한다.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 2009

코트 데 블랑에서 자란 샤르도네 100%로 만들었다. 화사하면서 섬세하다. 레몬과 라임 등의 상큼한 감귤 향에 살짝 쌉싸름한 레몬 껍질 향이 스친다. 전체적으로 포도의 순수함이 잘 드러나 있다.


빈티지(Vintage) 2008

피노 누아 60%, 샤르도네 40% 블렌딩으로 만들어졌으며, 8년간 카브에서 숙성했다. 피노 뫼니에는 오래 숙성하면 좋지 않은 향을 더하기 때문에 빈티지 샴페인에는 보통 뫼니에를 넣지 않는다고 한다. 오래 숙성해서인지 구수한 누룩 향이 가득하다. 신선한 복숭아, 살구 향이 나며, 역시 산도가 높다. 다채로운 향이 매력적이다.


퀴베 서 윈스턴 처칠(Cuvee Sir Winston Churchill) 2006

경작이 좋았던 해에만 생산되는, 처칠처럼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는 풀바디 샴페인이다. 정확한 블렌딩 비율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피노 누아의 비율이 높다. 구수한 효모, 꿀, 아주 잘 익은 복숭아, 흰꽃 등 향이 굉장히 복합적이고 가득 차 있다. 후미도 길고 달달하면서 견과류, 요거트 향이 많다. 이미 십 년을 숙성했으나, 더 기다리면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듯 하다.


폴 로저 하우스를 떠나며

젠틀맨의 샴페인을 만드는 곳, 폴 로저 하우스

샴페인을 찾아 떠나왔지만, 막상 내가 마신 샴페인의 맛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건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다. 카브와 공장을 돌며 만난 여러 직원분들, 그리고 나를 안내해준 매튜씨. 특히 매튜씨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이곳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으스대거나 거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상대방이 편안함을 느끼도록 끊임없이 배려해주었다. 자긍심과 배려심이 자연스럽게 묻어난 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젠틀맨'이라는 이미지는 이 하우스의 마케팅뿐 아니라 오랫동안 지켜온 폴 로저의 정신 그 자체임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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