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이 좋아 프랑스로 떠난 여자의 샹파뉴 여행기-6
크룩(KRUG)은 내가 와인을 잘 모르던 시절부터 막연히 대단한 샴페인으로 기억하던 브랜드다. 여타의 샴페인 병과는 달리 목이 가느다랗고 몸통이 뚱뚱한 모양, 은은한 펄감을 뽐내는 금색 레이블은 무언가 특별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딱 좋았다. 어쩌면 'KRUG'이라는 짧고 굵은 이름 덕에 더 쉽게 인상에 남은 듯도 하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한 와인샵 사장님으로부터 들은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이날 나와 남자친구는 아버지 생신 기념으로 샴페인 한 병을 사고자 와인샵을 들렀다.
"사장님. 오늘 아버지 생신인데, 어떤 샴페인이 어울릴까요?"
"...크룩!"
사장님은 한 3초 정도 생각하시더니 아주 단호하게 대답하셨다. 이어 그는 "샴페인의 최고봉은 역시 크룩이죠"라고 덧붙였다.
사장님이 가리키는 와인 아래에 적힌 가격을 보고는 뒷목이 뻣뻣해지는 걸 느꼈다. 와인 한 병에 20만 원이 훌쩍 넘는다고? 와인 초심자에게는 권하기 어려운 가격대라, 와인덕후이던 남자친구의 안목에 맞춘 추천이 분명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무튼, 이렇게 확신에 찬 추천으로 인해 크룩은 내게 '최고의 샴페인'이라는 첫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이 샴페인을 마셔보고는 왜 그토록 그 와인샵의 사장님이 단호한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을 떠나 크룩은 감탄을 자아내게 할 만큼 잘 만들어진 샴페인이었다.
크룩을 방문하는 날에는 하필이면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차를 타고 경비가 삼엄한 문 앞에 다다랐더니 경비원이 이름과 방문 목적을 물었다. 살짝 긴장한 마음으로 대답하니, 잠시 후 반듯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자주색 우산을 들고 마중 나왔다. 그는 나를 주차장까지 안내하고는 우산을 건네주고 접객실로 안내했다. 안내해주는 분의 절제된 말과 행동, 깨끗하게 정돈된 정원과 건물을 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귀족 저택에 초대받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건물 내부는 크룩의 대표 색상인 짙은 자주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가 이 샴페인 하우스의 큰 지분을 갖고 있는데, 과연 일관된 색채와 정제된 서비스에서 대기업의 힘이 느껴졌다.
앞서 들른 개인 생산자와 이런 대규모 샴페인 하우스의 차이를 생각하며 접견실을 천천히 둘러보던 중, 방문 및 교육을 담당하는 밀렌느 술라(Mylène Soulas)씨가 들어왔다. 역시 이 공간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와 잠시 인사를 나눈 후, 본격적으로 크룩 하우스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그는 크룩 하우스의 샴페인 간에는 등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 이곳에는 6종류의 샴페인이 생산되는데, 가격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품질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는 거다. 흥미로운 말이었다. 보통은 가격이 높을수록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기에 품질이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질문을 바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술라씨는 '희소성'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크룩의 단일밭 샴페인인 클로 뒤 메닐(Clos du Mesnil)의 경우 포도밭 크기가 1.84헥타르고, 클로 당보네(Clos d’Ambonnay)는 0.68헥타르다. 이곳에서 와인을 만들어서 수출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규모다. 이 두 개의 단일 밭 샴페인이 전 세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으니, 수요를 따라잡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자연히 희소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이어 술라씨는 크룩 샴페인 간의 차이를 악기에 빗대어 설명했다. 크룩의 모든 포도밭은 각각 서로 다른 '악기'이고, 샴페인은 그 악기가 연주하는 '음악'이다. 그래서 여러 밭과 빈티지를 혼합해 만든 그랑 퀴베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합주고, 단일 밭 샴페인은 솔로의 연주다. 합주와 독주 사이에 등급을 매길 수 없는 것처럼, 단일밭 샴페인과 넌 빈티지 샴페인 사이에는 서열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악기 연주의 비유야 최근에 도입된 개념이지만, 샴페인 간의 서열을 부정한 철학은 설립자 조셉 크룩때부터 시작되었다.
크룩의 설립자는 조셉 크룩(Joseph Krug)이다. 그는 예상외로 프랑스 출신이 아닌데, 1800년 리슬링 와인으로 유명한 독일 모젤 지역에서 태어났다. 모젤은 독일의 대표 와인 산지이기에 그 역시 어려서부터 와인 생산 방법을 습득했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여 24살이 된 후에는 프랑스로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프랑스에 간 그는 처음에는 무역일을 했으나, 당시 유명 샴페인 하우스였던 자크송(지난편에 등장한 그 샴페인 하우스다)에 들어가 경력을 쌓고, 마침내 42세의 나이가 된 1843년에야 자신만의 샴페인 하우스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그는 매년 작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일정한 품질의 샴페인을 만들고자, 백여 개가 넘는 리저브 와인(reserve wine, 셀러에 저장해 놓는 와인)을 만들었다. 술라씨는 이 리저브 와인이 저장된 공간을 '도서관'이라고 표현했다. 도서관처럼 빈티지 별, 포도밭 별로 와인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년간 리저브 와인을 준비한 끝에 처음 세상에 내놓은 샴페인이 바로 그랑 퀴베다.
동일한 품질의 추구는 와인 간에도 적용되었다. 이후 크룩 가문은 빈티지, 로제, 클로 뒤 메닐, 클로 당보네 등을 출시하며 서열이 아닌 각 샴페인의 특징을 살리는 데 주목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